"키워드 : 비파형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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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高興) 운대리(雲袋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4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고인돌 부근에서 돌널이 조사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조각이 출토되었다. 1999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운대리 중대마을 입구에 있는 고인돌 24기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13호 고인돌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고흥 운대리 고인돌 (高興 雲袋里 고인돌)
고흥(高興) 운대리(雲袋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4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고인돌 부근에서 돌널이 조사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조각이 출토되었다. 1999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운대리 중대마을 입구에 있는 고인돌 24기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13호 고인돌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에 사용된 청동제 검자루.
동제검자루 (銅製劍자루)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에 사용된 청동제 검자루.
금릉 송죽리 유적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회곽무덤이 발굴된 복합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바닥에 화덕자리가 나타난다. 바리 모양과 단지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갈판, 갈돌, 돌낫 등의 생활 용구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바닥에 기둥구멍이나 주춧돌을 놓여 있으며 내부에 저장구덩이와 냇돌을 세워 돌린 화덕자리도 확인되었다.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가락바퀴와 그물추, 화살촉과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통일신라시대의 주거지와 고려시대 구덩식 돌덧널무덤, 조선시대 회곽묘가 조사되었다.
금릉 송죽리 유적 (金陵 松竹里 遺蹟)
금릉 송죽리 유적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회곽무덤이 발굴된 복합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바닥에 화덕자리가 나타난다. 바리 모양과 단지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갈판, 갈돌, 돌낫 등의 생활 용구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바닥에 기둥구멍이나 주춧돌을 놓여 있으며 내부에 저장구덩이와 냇돌을 세워 돌린 화덕자리도 확인되었다.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가락바퀴와 그물추, 화살촉과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통일신라시대의 주거지와 고려시대 구덩식 돌덧널무덤, 조선시대 회곽묘가 조사되었다.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송리형토기 (美松里型土器)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비파형동검·도끼거푸집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부여 송국리 고분 (扶餘 松菊里 古墳)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비파형동검·도끼거푸집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다.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돌널무덤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총 25차에 걸친 학술 발굴이 진행되면서 대지 조성 흔적, 대지 구획 시설, 목주 열, 대형 굴립주 건물지와 같은 특징적인 유구 및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찾은 집터와 무덤, 토기와 석기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 (扶餘 松菊里 先史 聚落址)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다.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돌널무덤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총 25차에 걸친 학술 발굴이 진행되면서 대지 조성 흔적, 대지 구획 시설, 목주 열, 대형 굴립주 건물지와 같은 특징적인 유구 및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찾은 집터와 무덤, 토기와 석기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돌검은 청동기시대에 돌을 갈아서 만든 단검(短劍) 형태의 석기이다. 간돌검, 마제석검이라고도 한다. 세형동검, 오르도스(Ordos)식 동검, 비파형동검, 중국식 동검[桃氏劍]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적인 집단이 단단하고 결이 발달해 있는 혼펠스(hornfels)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목제 자루를 결합하여 사용하는 슴베달린 형식과 돌검 자체에 자루가 달린 형식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독특한 형태로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석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돌검 (돌劍)
돌검은 청동기시대에 돌을 갈아서 만든 단검(短劍) 형태의 석기이다. 간돌검, 마제석검이라고도 한다. 세형동검, 오르도스(Ordos)식 동검, 비파형동검, 중국식 동검[桃氏劍]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적인 집단이 단단하고 결이 발달해 있는 혼펠스(hornfels)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목제 자루를 결합하여 사용하는 슴베달린 형식과 돌검 자체에 자루가 달린 형식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독특한 형태로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석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동검을 만드는 거푸집. 주형(鑄型)·용범(鎔范).
용인 초부리 유적 (龍仁 草芙里 遺蹟)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동검을 만드는 거푸집. 주형(鑄型)·용범(鎔范).
요령 정가와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정가와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검·쌍뉴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이다. 이 유적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정가와자 마을에 위치한다. 무덤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선양 일대 요양 평원 지역을 관할하던 고조선의 최고지배자 또는 예맥계 정치집단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고인돌 분포지역과의 일치 및 서북한 세형동검 문화와의 연계성으로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요령 정가와자 유적 (遼寧 鄭家窪子 遺蹟)
요령 정가와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정가와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검·쌍뉴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이다. 이 유적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정가와자 마을에 위치한다. 무덤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선양 일대 요양 평원 지역을 관할하던 고조선의 최고지배자 또는 예맥계 정치집단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고인돌 분포지역과의 일치 및 서북한 세형동검 문화와의 연계성으로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도유적(中島遺蹟)은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규,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도 확인되었다.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그리고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중도 유적 (中島 遺蹟)
중도유적(中島遺蹟)은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규,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도 확인되었다.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그리고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칼자루끝장식은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 거쳐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것을 비파형동검이나 세형동검의 칼자루 끝에 장착한 장식이다. 동검의 찌르는 힘을 키우는 역할을 강조해서 가중기라고도 하며, 장식성을 강조해서 검파두식이라고도 한다. 요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베개 모양, 요동과 한반도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말발굽 모양이 유행하고,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에는 기둥이 세워진 십자 모양이나 십자 모양이 많다.
칼자루 끝 장식 (칼자루 끝 裝飾)
칼자루끝장식은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 거쳐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것을 비파형동검이나 세형동검의 칼자루 끝에 장착한 장식이다. 동검의 찌르는 힘을 키우는 역할을 강조해서 가중기라고도 하며, 장식성을 강조해서 검파두식이라고도 한다. 요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베개 모양, 요동과 한반도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말발굽 모양이 유행하고,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에는 기둥이 세워진 십자 모양이나 십자 모양이 많다.
청동으로 만든 도구를 모두 가리키는 역사용어.
청동기 (靑銅器)
청동으로 만든 도구를 모두 가리키는 역사용어.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1000년 대 전반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무문토기와 함께 청동기, 마제석기를 제작 사용한 시대이다. 마을은 장방형 혹은 원형의 수혈 주거지로 구성되고, 무덤은 지석묘, 적석묘, 석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벼를 비롯한 곡물 농사가 시작되었고,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는 청동기로 비파형동검 등의 무기와 다뉴기하학문경[다뉴세문경] 등의 의기가 있다. 이들 청동기의 중심지는 요서 지역에서부터 요동 지역을 거쳐 길림, 한반도 지역으로 이행된다.
청동기시대 (靑銅器時代)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1000년 대 전반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무문토기와 함께 청동기, 마제석기를 제작 사용한 시대이다. 마을은 장방형 혹은 원형의 수혈 주거지로 구성되고, 무덤은 지석묘, 적석묘, 석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벼를 비롯한 곡물 농사가 시작되었고,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는 청동기로 비파형동검 등의 무기와 다뉴기하학문경[다뉴세문경] 등의 의기가 있다. 이들 청동기의 중심지는 요서 지역에서부터 요동 지역을 거쳐 길림, 한반도 지역으로 이행된다.
중국 춘추시대에서 한대까지 제작되어 한반도에 유입된 청동검 가운데 한 종류.
도씨검 (桃氏劍)
중국 춘추시대에서 한대까지 제작되어 한반도에 유입된 청동검 가운데 한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