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빈공과"
검색결과 총 12건
남북국시대 때, 신라의 사신으로서 중국을 내왕하던 중 후백제 측에 붙잡혀 관직을 가졌으며,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에서 포로로 끌려가 고려의 수병부령 등을 역임한 신라 말 고려 초의 관리.
김악 (金岳)
남북국시대 때, 신라의 사신으로서 중국을 내왕하던 중 후백제 측에 붙잡혀 관직을 가졌으며,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에서 포로로 끌려가 고려의 수병부령 등을 역임한 신라 말 고려 초의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를 쓴 관리. 서예가.
김언경 (金彦卿)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를 쓴 관리. 서예가.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김윤부 (金允夫)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숙위학생으로서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한 관리.
김이어 (金夷魚)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숙위학생으로서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한 관리.
남북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장 (金裝)
남북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학은 통일신라시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서 선진학술과 사상을 배우고 익히던 행위이다. 서학이라는 용어는 신라 하대에 최치원이 처음 사용했으며 ‘서(西)’는 중국을 가리킨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나 송나라로 신라 하대에는 서학이 크게 유행하였다. 서학활동은 선종을 공부하려는 구법승과 골품제로 사회적 진출에 제약을 받던 6두품 출신의 도당유학생이 많았다. 신라는 서학을 통해 음양학·병법·기술학 등을 익혔다. 신라의 정치·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신라의 문화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분야로 성립하지는 못하였다.
서학 (西學)
서학은 통일신라시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서 선진학술과 사상을 배우고 익히던 행위이다. 서학이라는 용어는 신라 하대에 최치원이 처음 사용했으며 ‘서(西)’는 중국을 가리킨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나 송나라로 신라 하대에는 서학이 크게 유행하였다. 서학활동은 선종을 공부하려는 구법승과 골품제로 사회적 진출에 제약을 받던 6두품 출신의 도당유학생이 많았다. 신라는 서학을 통해 음양학·병법·기술학 등을 익혔다. 신라의 정치·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신라의 문화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분야로 성립하지는 못하였다.
중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빈공과(賓貢科) 과거시험의 응시자.
빈공 (賓貢)
중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빈공과(賓貢科) 과거시험의 응시자.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으며, 훗날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의 발단이 된 통일신라의 학자.
이동 (李同)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으며, 훗날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의 발단이 된 통일신라의 학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문인.
최광유 (崔匡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문인.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대견훤기고려왕서」, 「경호」 등을 저술한 문인.
최승우 (崔承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대견훤기고려왕서」, 「경호」 등을 저술한 문인.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최이정 (崔利貞)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종남산 신라 김가기 석각은 중국 섬서성 서안시 장안구 종남산에 있는 당나라에서 활동한 신라인 김가기 관련 암각문이다. 김가기전마애각문 또는 흥륭비라고 한다. 김가기는 836년 당나라에 건너가 빈공과에 급제하고 장안현위를 지냈다. 그는 노자의 도덕경 등을 읽으며 도교를 수련하여 신선에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종남산에 은둔하여 신선으로서 살다가 승천한 그를 기리기 위해 낭떠러지 바위에 글을 새겼다. 이 자료는 당나라에 건너간 신라 유학 지식인들의 중국에서의 실제적 활동과 중국인들에 미친 영향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종남산 신라 김가기 석각 (終南山 新羅 金可紀 石刻)
종남산 신라 김가기 석각은 중국 섬서성 서안시 장안구 종남산에 있는 당나라에서 활동한 신라인 김가기 관련 암각문이다. 김가기전마애각문 또는 흥륭비라고 한다. 김가기는 836년 당나라에 건너가 빈공과에 급제하고 장안현위를 지냈다. 그는 노자의 도덕경 등을 읽으며 도교를 수련하여 신선에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종남산에 은둔하여 신선으로서 살다가 승천한 그를 기리기 위해 낭떠러지 바위에 글을 새겼다. 이 자료는 당나라에 건너간 신라 유학 지식인들의 중국에서의 실제적 활동과 중국인들에 미친 영향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