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를 쓴 관리. 서예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글씨를 잘 써 당대의 명필이라 불렸으며, 특히 행서(行書)에 능했는데 필법은 저수량(褚遂良)을 본받았다고 한다.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는 김원(金遠)과 함께 쓴 것인데, 처음에 김원이 머리에서 7행까지 해서(楷書)로 쓴 뒤 그만두자, 이어서 그가 7행의 선(禪)자 이하를 행서로 썼다. 그 필세는 “철근(鐵筋)과 같고 운치(韻致)가 횡일(橫溢 : 물이 가로 넘쳐흐르는 것)하는 신품(神品)이다.”라고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 『서예(書藝)』(임창순, 한국미술전집 11, 1973)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상(上)(葛城末治, 조선총독부, 1919)
- 「나말선초(羅末麗初) 근시기구(近侍機構)와 문한기구(文翰機構)의 확장(擴張)」(이기동, 『역사학보』 77, 1978)
- 「나말금입택고(新羅金入宅考)」(이기동, 『진단학보』 45, 1978)
- 「선종구산(禪宗九山)의 성립(成立)과 하대불교(下代佛敎)」(최병헌,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8)
- 「숙위학생고(宿衛學生考)」(신형식, 『역사교육』 11·12합집, 1969)
- 「한국(韓國)의 금석(金石)과 서예(書藝)」(임창순, 『백산학보』 3,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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