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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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함락 당시의 장수. 문장가.
김양도 (金良圖)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함락 당시의 장수. 문장가.
백제는 삼국의 하나로서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했으며 660년에 멸망한 고대국가이다. 서기전 18년에 부여족 계통인 온조 집단에 의해 현재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 한인·예인 등의 토착민을 부여족이 지배하는 형식이었다. 건국 후 고구려·신라와 동맹과 공방을 되풀이하면서 영역을 영산강·섬진강 유역까지 확장하여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지정학적인 이점을 최대한 이용해 중국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백제화하고, 다시 왜나 가야에 전수해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신라와 군사동맹을 맺은 당에 의해 멸망했다.
백제 (百濟)
백제는 삼국의 하나로서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했으며 660년에 멸망한 고대국가이다. 서기전 18년에 부여족 계통인 온조 집단에 의해 현재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 한인·예인 등의 토착민을 부여족이 지배하는 형식이었다. 건국 후 고구려·신라와 동맹과 공방을 되풀이하면서 영역을 영산강·섬진강 유역까지 확장하여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지정학적인 이점을 최대한 이용해 중국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백제화하고, 다시 왜나 가야에 전수해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신라와 군사동맹을 맺은 당에 의해 멸망했다.
길나는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뒤 660년 9월 3일 낭장 유인원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잔여 세력으로부터 사비성을 지킬 때 왕자 인태 및 사찬 일원과 함께 7천 명의 군사를 통솔하여 보좌한 장수이다. 당시 관등은 급찬이었다.
길나 (吉那)
길나는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뒤 660년 9월 3일 낭장 유인원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잔여 세력으로부터 사비성을 지킬 때 왕자 인태 및 사찬 일원과 함께 7천 명의 군사를 통솔하여 보좌한 장수이다. 당시 관등은 급찬이었다.
부소산(扶蘇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산이다. 해발 고도는 96m로, 산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있다. 부소산은 구릉성 산지로 금남정맥의 마지막 산지이기도 하다. 금강의 침식으로 인해 북쪽 사면에 하식애가 발달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삼국시대 백제 후기에 현재의 부여읍인 사비성으로 천도하면서 부소산 일대에는 부소산성, 낙화암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있다. 현재는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부소산 (扶蘇山)
부소산(扶蘇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산이다. 해발 고도는 96m로, 산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있다. 부소산은 구릉성 산지로 금남정맥의 마지막 산지이기도 하다. 금강의 침식으로 인해 북쪽 사면에 하식애가 발달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삼국시대 백제 후기에 현재의 부여읍인 사비성으로 천도하면서 부소산 일대에는 부소산성, 낙화암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있다. 현재는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남천대감으로 사비성에서 백제군을 토벌한 관리.
욱천 (旭川)
삼국시대 신라의 남천대감으로 사비성에서 백제군을 토벌한 관리.
삼국시대 백제의 구마노리성에서 활약한 부흥운동가.
여자신 (餘自信)
삼국시대 백제의 구마노리성에서 활약한 부흥운동가.
삼국시대 신라의 낭당장군, 낭당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의광 (義光)
삼국시대 신라의 낭당장군, 낭당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의자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함락시켜 신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데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당이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공격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의 결사대로 분전했으나 대패하고 항복 후 왕자·대신·장병·백성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다가 며칠 뒤 사망했다.
의자왕 (義慈王)
의자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함락시켜 신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데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당이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공격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의 결사대로 분전했으나 대패하고 항복 후 왕자·대신·장병·백성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다가 며칠 뒤 사망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품일 (品日)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천복은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의 대신이다. 백제 멸망 시까지 핵심적인 정치 세력인 사씨(沙氏) 출신으로서 대좌평을 역임하였다.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 도성이 함락될 때 항복하여 의자왕과 태자, 대신 및 장수, 일반 백성과 함께 당에 포로로 잡혀갔다.
천복 (千福)
천복은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의 대신이다. 백제 멸망 시까지 핵심적인 정치 세력인 사씨(沙氏) 출신으로서 대좌평을 역임하였다.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 도성이 함락될 때 항복하여 의자왕과 태자, 대신 및 장수, 일반 백성과 함께 당에 포로로 잡혀갔다.
삼국시대 백제 북방령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예식진 (禰寔進)
삼국시대 백제 북방령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
흑치상지 (黑齒常之)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