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 ()

자연지리
지명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산.
지명/자연지명
높이
96m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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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부소산(扶蘇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산이다. 해발 고도는 96m로, 산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있다. 부소산은 구릉성 산지로 금남정맥의 마지막 산지이기도 하다. 금강의 침식으로 인해 북쪽 사면에 하식애가 발달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삼국시대 백제 후기에 현재의 부여읍인 사비성으로 천도하면서 부소산 일대에는 부소산성, 낙화암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있다. 현재는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산.
개설

부소산(扶蘇山)의 높이는 96m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북쪽에 위치하며, 금강에 잇닿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부여의 진산(鎭山)이며 동쪽 작은 봉에 비스듬히 올라간 곳을 영월대라 부르고, 서쪽을 송월대라 이른다.

명칭 유래

부소산이 언제부터 부소산으로 불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소나무를 뜻하는 ‘풋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부소’라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솔뫼’가 되는 것이다.

자연환경

부소산은 금강 남쪽의 산줄기인 금남정맥이 남쪽의 주화산에서부터 대둔산, 계룡산을 거쳐 이어지는 마지막 산이다. 하지만 다른 금남정맥의 주요 산들이 해발 주1 800m 이상인 것에 비해 부소산은 해발 고도가 100m가 안되어 주2 산지로 볼 수 있다. 부소산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며 산지를 주3 주4가 발달하였는데, 이 절벽이 낙화암이다. 산지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부소산성(扶蘇山城)의 성곽이 쌓아졌다.

부소산은 산이라기보다는 평지에 솟아있는 주5)에 가깝다. 토양은 사질 주6 토양으로 주7을 띄며 주8 함량, 유효 주9 함량, 치환성 주10 등은 우리나라 산림 주11에 비해 현저히 낮아 주12가 낮은 편이다. 식물분포구계상 북대 식물계의 중일구계(Sino · Japanes region)에 속하며 전형적인 온대 중부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중부산지 및 저산지형의 식생이 발달한 곳이다. 2004년 부여군의 기후값으로 부소산의 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데, 평균 기온은 12.6℃, 평균 최고 기온은 19.3℃, 평균 최저 기온은 7.2℃, 강수량은 1,494㎜이다.

부소산에는 소나무 군락, 상수리나무 군락, 졸참나무 군락이 있으며 소나무가 주13이다.

현황

현재 이곳에는 둘레 2.2㎞에 이르는 부소산성이 있고, 성내에는 서복사지 · 영월대지(迎月臺址) · 영일루(迎日樓) · 군창지(軍倉址) · 송월대지(送月臺址) · 사비루(泗沘樓) · 낙화암(落花巖) · 백화정(百花亭) · 고란사(皐蘭寺) · 삼충사(三忠祠) · 궁녀사(宮女祠) 등 많은 사적지와 문화유산이 있다.

낙화암은 부소산 북쪽의 절벽으로서, 나당 주14에 의해 백제가 멸망할 때 삼천 주23백마강(白馬江)에 몸을 던졌다는 고사로 유명하다. 낙화암 아래 백마강에 고란사가 있다. 이 절 뒤편의 암벽에서 솟아나는 약수는 백제 왕들의 어용수(御用水)로서 사용되었다고 전해오며, 약수터 주변의 고란초는 고사리과에 속하는 다년생 주15로 그늘진 바위 틈에 자생하는 희귀식물이다. 낙화암 아래의 백마강 주16에는 주17 소정방(蘇定方)의 일화로 유명한 조룡대(釣龍臺)가 있으며, 낙화암의 위쪽에는 백제의 여인들을 추모하며 이름지은 백화정이 있다.

부소산 동쪽에는 영월대(迎月臺)가, 서쪽에는 송월대(送月臺)가 있었다. 백제 왕들은 영월대에서 떠오르는 달을 맞으면서 주18을 하였고, 송월대에서 지는 달을 보며 즐겼다고 한다. 영월대는 영일대라고도 하였는데, 1964년 부여군 흥산에 남아 있던 조선 시대의 관아문루(官衙門樓)를 이곳에 옮겨 ‘영일루’라 하였다. 영월대지 부근에는 백제 시대에 주24을 비축하였던 군창지가 있어서 지금도 1,300여 년 전의 주19 곡식의 알갱이가 나온다.

부소산의 정상인 서쪽 봉우리에는 1919년에 임천현의 주20인 배산루(背山樓)를 이전한 누각식 건물인 사비루가 있다. 이곳에서 낙화암 · 백마강 · 고란사 · 수북정 등을 두루 볼 수 있다. 부소산의 남쪽에 있는 삼충사는 성충(成忠) · 흥수(興首) · 계백(階伯) 등 백제의 세 충신의 주21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1980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주22. 부소산의 남쪽 기슭에 국립부여박물관이 있다.

부소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고 각종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현진상, 『한글 산경표』 (풀빛, 2000)
『전통문화의 고장 부여』 (부여군, 1982)
『부여군지(扶餘郡誌)』 (부여군, 2003)
『한국의 산지(山誌)』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논문

김동석, 「부여 부소산의 산림구조분석과 토양의 이화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공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주석
주1

평균 해수면을 기준으로 하여 잰 어떤 지점의 높이. 우리말샘

주2

땅이 약간 언덕진 특성. 우리말샘

주3

비, 하천, 빙하, 바람 따위의 자연 현상이 지표를 깎다. 우리말샘

주4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언덕. 우리말샘

주5

준평원 위에 남아 있는 굳은 암석의 구릉(丘陵). 우리말샘

주6

진흙이 비교적 적게 섞인 보드라운 흙. 공기와 물의 유통이 좋고 비료의 분해가 빨라 농작물을 심기에 알맞다. 우리말샘

주7

수용액에서 이온화할 때 수산 이온의 농도보다 수소 이온의 농도가 더 큰 물질의 성질. 수소 이온 농도 지수(pH)가 7보다 작고 물에 녹으면 신맛을 내고, 푸른색 리트머스 시험지를 붉은색으로 변화시키며, 염기를 중화시켜 염을 만든다. 수소 이온의 농도가 순수한 물의 경우보다 크다. 우리말샘

주8

생체를 이루며, 생체 안에서 생명력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물질. 우리말샘

주9

오산화 인에 물을 작용시켜 얻는 산을 통틀어 이르는 말. 수화되는 정도에 따라 오쏘인산, 메타인산, 파이로인산 따위가 있다. 화학식은 H3PO4, HPO3, H4P2O7. 우리말샘

주10

토양의 입자나 교질물에 흡착되어 있는 양이온. 토양 용액에 있는 양이온과 치환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칼륨 이온, 칼슘 이온, 마그네슘 이온, 나트륨 이온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1

산과 숲의 흙. 넓은 의미로는 산림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토양을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는 현재 산림 식생을 유지하고 있는 토양을 말한다. 우리말샘

주12

땅이 걸고 기름진 정도. 우리말샘

주13

식물 군집 안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종. 전체의 성격을 결정하며 군집의 분류에도 쓴다. 우리말샘

주14

삼국 통일 전쟁 시기에,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구성한 군대. 우리말샘

주15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식물의 이대(二大) 분류의 하나로 조류(藻類), 선태식물, 양치식물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6

강물이나 바닷물이 굽이지어 흐르는 곳. 우리말샘

주17

618년에 중국의 이연(李淵)이 수나라 공제(恭帝)의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통일 왕조. 도읍은 장안(長安)이며,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문화가 크게 융성하였으나, 안사(安史)의 난 이후 쇠퇴하여 907년에 주전충(朱全忠)에게 망하였다. 우리말샘

주18

예전에, 궁중 의식이나 잔치 때에 연주하던 모든 음악.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時調) 등 정악(正樂)을 궁중 무용에 맞추어 연주한다. <여민락>, <현악 영산회상>, <만년장환지곡#GT#등 193곡과 <처용무>, <가인전목단>, <포구락#GT#등 54종이 전한다. 우리말샘

주19

유기 화합물이 열분해나 화학적 변화에 의하여 탄소로 변하게 되다. 우리말샘

주20

관아의 출입문. 우리말샘

주21

단(壇), 묘(廟), 원(院), 절 따위에 모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 우리말샘

주22

집이나 축조물 따위가 허물어지거나 낡아서 새로 건축되다. 우리말샘

주23

백제가 멸망할 때 왕족과 함께 부여의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 우리말샘

주24

군대의 양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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