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회주의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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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파 조직인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서울신파이다. 고려공산청년동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활동하였다.
김철 (金哲)
김철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파 조직인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서울신파이다. 고려공산청년동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활동하였다.
김철산은 일제강점기 중국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7년 중국 광저우에서 소비에트 건립을 목적으로 발생한 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왕우구지부, 연화현위원회, 의란구위원회, 화룡현위원회 등의 서기를 지냈다.
김철산 (金鐵山)
김철산은 일제강점기 중국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7년 중국 광저우에서 소비에트 건립을 목적으로 발생한 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왕우구지부, 연화현위원회, 의란구위원회, 화룡현위원회 등의 서기를 지냈다.
박윤세는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분열된 만주의 조선인 사회주의운동을 통일할 목적으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윤세 (朴允世)
박윤세는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분열된 만주의 조선인 사회주의운동을 통일할 목적으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박진순 (朴鎭淳)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박창은은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에서 활동하고 대한의용군 결성에 참여하고 대한국민의회 비서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명은 박이반이며, 1920년 12월부터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 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초에 러시아령에서 소집된 전한의병대회와 대한의용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박창은 (朴昌殷)
박창은은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에서 활동하고 대한의용군 결성에 참여하고 대한국민의회 비서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명은 박이반이며, 1920년 12월부터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 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초에 러시아령에서 소집된 전한의병대회와 대한의용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김규면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기독교도로 개종하였지만, 포교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탈퇴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중국 관내로 건너가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양분된 민족운동의 통합을 시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김규면 (金圭冕)
김규면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기독교도로 개종하였지만, 포교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탈퇴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중국 관내로 건너가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양분된 민족운동의 통합을 시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김립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구한말에 서북학회와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을사늑약 후 블라디보스토크와 북간도를 오가며 간민교육회, 권업회 등을 조직하였다. 한인사회당을 창당하였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모스크바에서 임시정부로 보낸 자금을 감추고 당파적으로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암살당하였다.
김립 (金立)
김립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구한말에 서북학회와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을사늑약 후 블라디보스토크와 북간도를 오가며 간민교육회, 권업회 등을 조직하였다. 한인사회당을 창당하였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모스크바에서 임시정부로 보낸 자금을 감추고 당파적으로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암살당하였다.
김사국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과정에서 국민대회 준비를 주도하다 투옥되었다. 조선노동대회, 조선노동공제회 등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에 힘썼다. 서울청년회 내에서 상해파 국내부와 동아일보계를 축출함으로써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분화를 낳았다. 서울파 공산주의그룹 고려공산동맹을 조직하여 이끌었다. 만주에 동양학원, 대동학원을 세워 교육운동을 벌였다. 통일 조선공산당 결성을 위해 노력했으나 화요파에 의해 배제되었다.
김사국 (金思國)
김사국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과정에서 국민대회 준비를 주도하다 투옥되었다. 조선노동대회, 조선노동공제회 등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에 힘썼다. 서울청년회 내에서 상해파 국내부와 동아일보계를 축출함으로써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분화를 낳았다. 서울파 공산주의그룹 고려공산동맹을 조직하여 이끌었다. 만주에 동양학원, 대동학원을 세워 교육운동을 벌였다. 통일 조선공산당 결성을 위해 노력했으나 화요파에 의해 배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