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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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1937), 해방 이후 「한 알의 밀알」, 「영광」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백남순 (白南舜)
「낙원」(1937), 해방 이후 「한 알의 밀알」, 「영광」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이종우는 일제강점기 「모부인상」, 「인형이 있는 정물」, 「독서하는 우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18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추억」이 양화부 3등상에 입상하면서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약 3년간 체류하면서 그린 작품 「모부인상」과 「인형이 있는 정물」이 1927년의 살롱 도톤에 출품, 입선되었다. 1934년에는 한국인 서양화가들만의 모임인 목일회를 구성하고 작품을 발표하였다. 1974년 동아일보사는 이종우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화집도 출판하였다.
이종우 (李鍾禹)
이종우는 일제강점기 「모부인상」, 「인형이 있는 정물」, 「독서하는 우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18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추억」이 양화부 3등상에 입상하면서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약 3년간 체류하면서 그린 작품 「모부인상」과 「인형이 있는 정물」이 1927년의 살롱 도톤에 출품, 입선되었다. 1934년에는 한국인 서양화가들만의 모임인 목일회를 구성하고 작품을 발표하였다. 1974년 동아일보사는 이종우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화집도 출판하였다.
해방 이후 「동양의 풍경」, 「허물어진 제단」, 「역사의 흔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남관 (南寬)
해방 이후 「동양의 풍경」, 「허물어진 제단」, 「역사의 흔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종우가 1927년에 제작한 유화.
모부인 초상 (某夫人 肖像)
서양화가 이종우가 1927년에 제작한 유화.
살롱사진은 일제강점기 공모전에 출품된 예술사진 일반 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공모전 출품 사진 일반에 대하여 해방 이후에 지칭한 용어이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은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930~40년대까지 각종 공모전을 통해 확산되었던 사진 조류였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살롱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살롱사진 (―寫眞)
살롱사진은 일제강점기 공모전에 출품된 예술사진 일반 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공모전 출품 사진 일반에 대하여 해방 이후에 지칭한 용어이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은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930~40년대까지 각종 공모전을 통해 확산되었던 사진 조류였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살롱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전조선사진연맹은 1934년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조직한 사진 단체 연맹체이다. 1920년대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주도하는 예술사진의 경향이 중요한 문화적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예술 사진에 대한 열기를 식민지배의 정당성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를 교두보로 하여 조선내 사진을 연구하는 단체들을 통합하는 연맹체로서 전조선사진연맹가 결성되었다. 연맹에 참여한 단체의 수는 50여 개에 달했고 조선사진전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전조선사진연맹 (全朝鮮寫眞聯盟)
전조선사진연맹은 1934년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조직한 사진 단체 연맹체이다. 1920년대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주도하는 예술사진의 경향이 중요한 문화적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예술 사진에 대한 열기를 식민지배의 정당성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를 교두보로 하여 조선내 사진을 연구하는 단체들을 통합하는 연맹체로서 전조선사진연맹가 결성되었다. 연맹에 참여한 단체의 수는 50여 개에 달했고 조선사진전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조선사진동맹은 1947년 6월 좌익 성향의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던 살롱사진의 경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진예술의 발전을 도모했던 사진인 약 100여명이 동참하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실현 및 노동자의 해방과 전인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삼고 사회주의자로서 사진가의 역할을 제시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을 내세워 좌익 계열 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회원들의 월북과 함께 와해되었다.
조선사진동맹 (朝鮮寫眞同盟)
조선사진동맹은 1947년 6월 좌익 성향의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던 살롱사진의 경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진예술의 발전을 도모했던 사진인 약 100여명이 동참하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실현 및 노동자의 해방과 전인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삼고 사회주의자로서 사진가의 역할을 제시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을 내세워 좌익 계열 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회원들의 월북과 함께 와해되었다.
인간가족전은 1957년 4월, 경복궁미술관에서 개최된 1955년 뉴욕근대미술박물관의 「The Family of Man」의 국내 유치 사진전시회이다. 1957년 4월 3일부터 5월 5일까지 진행된 대규모 전시회였는데, 이 전시를 통해 리얼리즘 사진이 한국 사진의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
인간가족전 (人間家族展)
인간가족전은 1957년 4월, 경복궁미술관에서 개최된 1955년 뉴욕근대미술박물관의 「The Family of Man」의 국내 유치 사진전시회이다. 1957년 4월 3일부터 5월 5일까지 진행된 대규모 전시회였는데, 이 전시를 통해 리얼리즘 사진이 한국 사진의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