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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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이서 (李潊)
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일제강점기 규수서화연구회 부회장을 역임한 서화가.
방무길 (方戊吉)
일제강점기 규수서화연구회 부회장을 역임한 서화가.
김진민은 일제강점기 「유란부」, 「독서락」, 「누실명」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이다. 1912년 정읍 태인에서 태어나 9세부터 부친의 권유로 김돈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예를 익혔다. 11세부터 전남 영광의 불갑사의 「불갑사」와 백양사의 「우화루」 등의 현판 글씨를 쓰면서 소녀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12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수차례 특선을 하면서 천재 여류서예가로 주목을 받았다. 불심이 깊어 백양사, 금산사, 내장사 등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겼다. 김진민은 행서·해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으며, 강건하고 웅대한 서풍을 구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진민 (金瑱珉)
김진민은 일제강점기 「유란부」, 「독서락」, 「누실명」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이다. 1912년 정읍 태인에서 태어나 9세부터 부친의 권유로 김돈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예를 익혔다. 11세부터 전남 영광의 불갑사의 「불갑사」와 백양사의 「우화루」 등의 현판 글씨를 쓰면서 소녀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12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수차례 특선을 하면서 천재 여류서예가로 주목을 받았다. 불심이 깊어 백양사, 금산사, 내장사 등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겼다. 김진민은 행서·해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으며, 강건하고 웅대한 서풍을 구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김충현 (金忠顯)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해방 이후 청남묵연회대표, 동명서예원장 등을 역임한 서예가. 환속승.
오제봉 (吳濟峰)
해방 이후 청남묵연회대표, 동명서예원장 등을 역임한 서예가. 환속승.
해방 이후 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서예가.
배길기 (裵吉基)
해방 이후 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