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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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범종.
성덕대왕신종 (聖德大王神鐘)
통일신라시대의 범종.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경덕왕 (景德王)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김대문은 신라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이다. 성덕왕 때 한산주를 다스리는 도독으로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樂夲)』, 『한산기(漢山記)』,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불교 및 신라의 전통문화에 관한 지식이 깊었다. 관리로서의 경력은 한산주 도독을 지냈다는 사실만 전하는데, 이것을 김대문의 최후이자 최고 관직으로 본다면, 그는 문무왕대에 출생하여 신문왕대부터 관료가 되었고 성덕왕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대문 (金大問)
김대문은 신라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이다. 성덕왕 때 한산주를 다스리는 도독으로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樂夲)』, 『한산기(漢山記)』,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불교 및 신라의 전통문화에 관한 지식이 깊었다. 관리로서의 경력은 한산주 도독을 지냈다는 사실만 전하는데, 이것을 김대문의 최후이자 최고 관직으로 본다면, 그는 문무왕대에 출생하여 신문왕대부터 관료가 되었고 성덕왕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3대 성덕왕의 능. 왕릉.
경주 성덕왕릉 (慶州 聖德王陵)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3대 성덕왕의 능. 왕릉.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김윤중 (金允中)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신라의 제30대 문무왕의 손자로, 대아찬의 관등으로 당나라에 파견되었으나 도중에 사망한 종실.
김상 (金相)
신라의 제30대 문무왕의 손자로, 대아찬의 관등으로 당나라에 파견되었으나 도중에 사망한 종실.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김개원 (金愷元)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의 아들인 왕자.
김사종 (金嗣宗)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의 아들인 왕자.
신라시대의 관서.
경성주작전 (京城周作典)
신라시대의 관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아찬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관리.
배부 (裴賦)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아찬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아찬으로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관리.
김사양 (金思讓)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아찬으로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중시, 상대등, 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수.
김사공 (金思恭)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중시, 상대등, 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수.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의 동생으로, 당나라에 입조사로 가서 낭장의 관직을 받은 왕족.
김흔질 (金釿質)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의 동생으로, 당나라에 입조사로 가서 낭장의 관직을 받은 왕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아찬으로 중시를 역임한 관리.
신정 (信貞)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아찬으로 중시를 역임한 관리.
봉덕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이다. 성덕왕이 태종무열왕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경덕왕이 성덕왕을 위하여 대종을 만들려다 죽자, 아들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선 세종 대에 봉덕사는 수몰되었고, 종도 함께 하천에 버려졌다. 속칭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 이 종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봉덕사는 신라 불교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사찰 중 하나였다.
봉덕사 (奉德寺)
봉덕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이다. 성덕왕이 태종무열왕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경덕왕이 성덕왕을 위하여 대종을 만들려다 죽자, 아들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선 세종 대에 봉덕사는 수몰되었고, 종도 함께 하천에 버려졌다. 속칭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 이 종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봉덕사는 신라 불교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사찰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