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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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전주판관, 임천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황일호 (黃一皓)
조선 후기에, 전주판관, 임천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가성직제도란 1786년 가을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집행하기 위해 구성했던 제도이다. 신자 교계제도, 모방 성직제도, 평신도 성직제도라고도 한다. 1786년 일반 신자임에도 이승훈은 스스로 성직자단을 구성하여 신부를 임명하고 미사와 성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평신도가 신부를 임명하고, 또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은 독성죄(瀆聖罪)에 해당된다. 1789년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湯士選) 주교는 신자들의 무지(無知)로 돌리고 책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1794년 말에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가성직제도 (假聖職制度)
가성직제도란 1786년 가을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집행하기 위해 구성했던 제도이다. 신자 교계제도, 모방 성직제도, 평신도 성직제도라고도 한다. 1786년 일반 신자임에도 이승훈은 스스로 성직자단을 구성하여 신부를 임명하고 미사와 성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평신도가 신부를 임명하고, 또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은 독성죄(瀆聖罪)에 해당된다. 1789년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湯士選) 주교는 신자들의 무지(無知)로 돌리고 책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1794년 말에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교육자·신부 한기근이 번역하여 1910년에 간행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번역서.
요리강령 (要理綱領)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교육자·신부 한기근이 번역하여 1910년에 간행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번역서.
조선후기 형조좌랑, 훈련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최효일 (崔孝一)
조선후기 형조좌랑, 훈련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충봉성사와 관련된 노비.
신충 (信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충봉성사와 관련된 노비.
1926년 1월 16일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한인 아나키스트들이 만든 사상단체.
조선인신진회(오사카) (朝鮮人新進會(Osaka[大阪]))
1926년 1월 16일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한인 아나키스트들이 만든 사상단체.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사위로, 삼사사, 권서정동행성사 등을 역임한 종실.
왕숙 (王淑)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사위로, 삼사사, 권서정동행성사 등을 역임한 종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봉성사 성전 (奉聖寺 成典)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미사(missa)는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중심이 되는 종교 의례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단 한 번 자기 자신을 바친 봉헌 행위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봉헌하는 피 흘림 없는 제사이다.
미사 (missa)
미사(missa)는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중심이 되는 종교 의례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단 한 번 자기 자신을 바친 봉헌 행위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봉헌하는 피 흘림 없는 제사이다.
대한성공회는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한국 관구이다. 1890년 9월 29일 고요한 주교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성공회의 신학과 역사를 따라 신약 성서와 구약 성서, 니케아 신경과 사도 신경, 세례와 성찬례, 역사적 주교직을 교회의 근간으로 삼는다. 또한 한국 근현대사로부터 교회 일치, 사회 정의, 평화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大韓聖公會)
대한성공회는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한국 관구이다. 1890년 9월 29일 고요한 주교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성공회의 신학과 역사를 따라 신약 성서와 구약 성서, 니케아 신경과 사도 신경, 세례와 성찬례, 역사적 주교직을 교회의 근간으로 삼는다. 또한 한국 근현대사로부터 교회 일치, 사회 정의, 평화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동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에 속하는 섬이다. 여수시 동쪽에 위치한 신항(新港) 부두에서 1㎞ 거리에 있으며, 오동나무가 많이 있어 오동도라 불리게 되었다. 해안 암벽에는 해식동과 풍화혈(風化穴)이 곳곳에 있다. 섬 주위 전체가 갯바위로 형성되어 있다. 섬 남쪽에는 오동도 등대가 있으며, 표지기지창(標識基地廠)이 있다. 오동도에 가기 위해서는 도선을 이용해야 하며 1일 14회 운행한다. 1996년부터 동백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2002년에는 관광 식물원 자리에 식물원을 철거하고 음악 분수대가 만들어졌다.
오동도 (梧桐島)
오동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에 속하는 섬이다. 여수시 동쪽에 위치한 신항(新港) 부두에서 1㎞ 거리에 있으며, 오동나무가 많이 있어 오동도라 불리게 되었다. 해안 암벽에는 해식동과 풍화혈(風化穴)이 곳곳에 있다. 섬 주위 전체가 갯바위로 형성되어 있다. 섬 남쪽에는 오동도 등대가 있으며, 표지기지창(標識基地廠)이 있다. 오동도에 가기 위해서는 도선을 이용해야 하며 1일 14회 운행한다. 1996년부터 동백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2002년에는 관광 식물원 자리에 식물원을 철거하고 음악 분수대가 만들어졌다.
『회죄직지(悔罪直指)』는 다블뤼가 저술하여 1864년에 간행된 묵상서이다. 1864년에 서울에서 조선대목구장 주교 베르뇌(Berneux, 장경일(張敬一))의 감준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회죄직지’는 죄를 회개(悔改)하도록 이끄는 올바른 지침서(指針書)라는 뜻이다.
회죄직지 (悔罪直指)
『회죄직지(悔罪直指)』는 다블뤼가 저술하여 1864년에 간행된 묵상서이다. 1864년에 서울에서 조선대목구장 주교 베르뇌(Berneux, 장경일(張敬一))의 감준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회죄직지’는 죄를 회개(悔改)하도록 이끄는 올바른 지침서(指針書)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