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송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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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데 · 제5대 국회의원 · 상공부차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 출생으로, 화순금융조합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화순군지부 총무위원, 대한국민회 화순군지부 사무국장, 화순중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1년 윤보선, 장준하가 이끄는 국민당 창당에 참여해, 정무위원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4월 9일 숙환으로 사망했으며,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박민기 (朴珉基)
제2데 · 제5대 국회의원 · 상공부차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 출생으로, 화순금융조합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화순군지부 총무위원, 대한국민회 화순군지부 사무국장, 화순중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1년 윤보선, 장준하가 이끄는 국민당 창당에 참여해, 정무위원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4월 9일 숙환으로 사망했으며,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안정석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송죽회, 대한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신도로 전도 활동을 하다가 1913년 송죽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당시 숭의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을 역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정석 (安貞錫)
안정석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송죽회, 대한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신도로 전도 활동을 하다가 1913년 송죽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당시 숭의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을 역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애시덕은 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13년 교사들과 함께 비밀결사 송죽회를 조직하였다. 1918년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고, 귀국 후에는 3·1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파리강화회의에 여성 대표를 파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김마리아 등과 함께 1919년 9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하고 총무를 맡았다. 1929년부터는 농촌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황애시덕 (黃愛施德)
황애시덕은 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13년 교사들과 함께 비밀결사 송죽회를 조직하였다. 1918년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고, 귀국 후에는 3·1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파리강화회의에 여성 대표를 파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김마리아 등과 함께 1919년 9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하고 총무를 맡았다. 1929년부터는 농촌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