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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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사립 전문계 고등학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首都電氣工業高等學校)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사립 전문계 고등학교.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3가에 있는 시립 전시관.
임시수도기념관 (臨時首都記念館)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3가에 있는 시립 전시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국가 정치·행정의 중추 기능을 가지는 신행정수도를 충청권에 새로이 건설함으로써 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이다. 2004년 1월 16일 법률 제7062호로 제정·공포 되었으나 같은 해 10월 21일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2004헌마554)으로 인해 폐기되고 이후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으로 대체된 법률이다.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新行政首都 建設 特別法)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국가 정치·행정의 중추 기능을 가지는 신행정수도를 충청권에 새로이 건설함으로써 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이다. 2004년 1월 16일 법률 제7062호로 제정·공포 되었으나 같은 해 10월 21일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2004헌마554)으로 인해 폐기되고 이후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으로 대체된 법률이다.
아시아 서남부에 있는 연방국.
미얀마 (Myanmar)
아시아 서남부에 있는 연방국.
백제이경은 삼국시대에 백제 도성의 기능을 한 양성(兩城)이다. 『구당서』 백제전에 왕은 동 ‧ 서 양성에 거주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위치는 사비와 웅진, 익산과 웅진이 언급되고 있다. 반면 사비를 포함시킬 경우 사비와 익산 혹은 사비와 웅진이 거론되기도 한다.
백제이경 (百濟二京)
백제이경은 삼국시대에 백제 도성의 기능을 한 양성(兩城)이다. 『구당서』 백제전에 왕은 동 ‧ 서 양성에 거주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위치는 사비와 웅진, 익산과 웅진이 언급되고 있다. 반면 사비를 포함시킬 경우 사비와 익산 혹은 사비와 웅진이 거론되기도 한다.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도서 (圖書)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구서당은 신라통일기에 중앙에 배치한 9개 군부대이다. 국가적 단결과 민족적 융합을 위하여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까지 포함하여 조직한 수도방비군이다. 583년에 설치한 서당을 시작으로 비금서당이 설치되는 693년까지 약 100여 년간 정비되었다. 613년에 서당을 녹금서당으로 개칭하였고, 672년에 백제민으로 구성된 백금서당을 설치하였으며, 677년에 자금서당을 설치하였다. 그 이후 고구려 유민으로 구성된 황금서당, 말갈인으로 구성된 흑금서당, 보덕국인으로 구성된 벽금서당과 적금서당 등을 설치하였다. 693년 비금서당을 설치함으로써 완성되었다.
구서당 (九誓幢)
구서당은 신라통일기에 중앙에 배치한 9개 군부대이다. 국가적 단결과 민족적 융합을 위하여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까지 포함하여 조직한 수도방비군이다. 583년에 설치한 서당을 시작으로 비금서당이 설치되는 693년까지 약 100여 년간 정비되었다. 613년에 서당을 녹금서당으로 개칭하였고, 672년에 백제민으로 구성된 백금서당을 설치하였으며, 677년에 자금서당을 설치하였다. 그 이후 고구려 유민으로 구성된 황금서당, 말갈인으로 구성된 흑금서당, 보덕국인으로 구성된 벽금서당과 적금서당 등을 설치하였다. 693년 비금서당을 설치함으로써 완성되었다.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4동에 있는 시립 박물관.
부산광역시립박물관 (釜山廣域市立博物館)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4동에 있는 시립 박물관.
경상남도 남해군에 있는 섬.
남해도 (南海島)
경상남도 남해군에 있는 섬.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인왕동·황남동 일대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 내물왕 관련 유적일원. 원림. 사적·명승.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 (奈勿王陵 鷄林 月城地帶)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인왕동·황남동 일대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 내물왕 관련 유적일원. 원림. 사적·명승.
위덕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4∼598년이다. 한강 하류지역 회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해 성왕이 전사하자 즉위했다. 태자로서 이 전쟁을 적극 주장했기 때문에 즉위 초 패전으로 인한 혼란수습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귀족세력과의 합의를 통해 체제정비에 전념했다. 불교이념을 통한 배타적인 왕족의식의 고양, 국왕의 권력기반인 22부사제의 강화, 역사서 「백제본기」 편찬 등으로 왕권기반이 강화되었다. 신라·고구려에는 적대 정책을 취하고 북제·북주·수와는 활발한 외교를 펼쳐 국제적 위상도 되찾았다.
위덕왕 (威德王)
위덕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4∼598년이다. 한강 하류지역 회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해 성왕이 전사하자 즉위했다. 태자로서 이 전쟁을 적극 주장했기 때문에 즉위 초 패전으로 인한 혼란수습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귀족세력과의 합의를 통해 체제정비에 전념했다. 불교이념을 통한 배타적인 왕족의식의 고양, 국왕의 권력기반인 22부사제의 강화, 역사서 「백제본기」 편찬 등으로 왕권기반이 강화되었다. 신라·고구려에는 적대 정책을 취하고 북제·북주·수와는 활발한 외교를 펼쳐 국제적 위상도 되찾았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군자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세종대학교 (世宗大學校)
서울특별시 광진구 군자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안견은 조선 전기 「팔준도」, 「몽유도원도」, 「대소가의장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세종 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문종과 단종을 거쳐 세조 대까지도 화원으로 활약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화들을 섭렵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는 토대로 삼았다. 북송 때의 화원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다른 화풍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수화에 가장 뛰어났지만 초상·화훼·매죽·노안·누각·말·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안견 (安堅)
안견은 조선 전기 「팔준도」, 「몽유도원도」, 「대소가의장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세종 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문종과 단종을 거쳐 세조 대까지도 화원으로 활약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화들을 섭렵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는 토대로 삼았다. 북송 때의 화원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다른 화풍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수화에 가장 뛰어났지만 초상·화훼·매죽·노안·누각·말·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석가모니의 설산수도 고행 장면을 묘사한 목판본 불화.
석가고행도 (釋迦苦行圖)
석가모니의 설산수도 고행 장면을 묘사한 목판본 불화.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선재리에 있는 섬.
선재도 (仙才島)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선재리에 있는 섬.
광복 이후 초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택상 (張澤相)
광복 이후 초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이종찬은 해방 이후 수도경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육군대학 총장을 역임한 군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83년에 사망했다. 1935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중일전쟁 이후에 조선인장교로서는 유일하게 공5급 금치훈장을 받았다. 일본군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여 뉴기니에 억류되었다가 해방 이후 귀국했다. 1949년 육군 대령으로 임관하여 1960년에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1960년 과도내각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아 3.15부정선거에 동조한 군인들을 숙청하였다. 이후 국회위원과 재향군인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이종찬 (李鍾贊)
이종찬은 해방 이후 수도경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육군대학 총장을 역임한 군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83년에 사망했다. 1935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중일전쟁 이후에 조선인장교로서는 유일하게 공5급 금치훈장을 받았다. 일본군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여 뉴기니에 억류되었다가 해방 이후 귀국했다. 1949년 육군 대령으로 임관하여 1960년에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1960년 과도내각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아 3.15부정선거에 동조한 군인들을 숙청하였다. 이후 국회위원과 재향군인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이징은 조선시대 「화개현구장도」, 「소상팔경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종실 출신 화가 이경윤의 서자이다. 왕실 및 문인 사대부층과 폭넓게 교유하며 궁중 안팎에서 활약했다. 17세기에 있었던 궁중의 중요 행사에서 도화 작업을 맡았고, 문인 관료들의 주문으로 별서도를 제작하였다. 산수화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안견파 전통을 계승하였고, 영모화에서는 절파 화풍을 따랐다. 초상도 잘 그려 태조 영정 개수 때 공을 세웠다.
이징 (李澄)
이징은 조선시대 「화개현구장도」, 「소상팔경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종실 출신 화가 이경윤의 서자이다. 왕실 및 문인 사대부층과 폭넓게 교유하며 궁중 안팎에서 활약했다. 17세기에 있었던 궁중의 중요 행사에서 도화 작업을 맡았고, 문인 관료들의 주문으로 별서도를 제작하였다. 산수화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안견파 전통을 계승하였고, 영모화에서는 절파 화풍을 따랐다. 초상도 잘 그려 태조 영정 개수 때 공을 세웠다.
해방 이후 동화사 조실, 범어사 조실,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 장로 등을 역임한 승려.
전강 (田岡)
해방 이후 동화사 조실, 범어사 조실,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 장로 등을 역임한 승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사립 대학교.
침례신학대학교 (浸禮神學大學校)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사립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