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3월 28일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 12월 21일 사적 및 명승에서 해제되었다. 과거 지정면적은 15만 1,851㎢였다. 계림월성 지역은 신라 천년 고도의 심장부다.
월성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동궁(東宮)과 동궁원(東宮苑)인 안압지(雁鴨池)가 있고, 남쪽에는 기암 사이로 흐르는 남천(南川)이 있으며, 서쪽에는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가 있는 왕궁의 상원(上苑)같은 계림이 있다. 계림 서쪽에는 내물왕릉이 있고, 계림 북쪽에는 첨성대(瞻星臺)가 있다.
월성 주위를 발굴조사한 결과, 단을 지어 연못처럼 아름답게 조성한 해자(垓字)가 동·서·북에 월성을 에워싸고 있었고, 해자 가에서는 많은 건물터가 드러났다. 이들 건물은 왕궁에 소속된 관청건물들로 보인다.
남천은 월성 남쪽에 접근을 막는 해자 구실도 하면서 어떤 곳은 여울을 이루고 어떤 곳은 깊은 소(沼)를 만들며 기암괴석과 더불어 아름다운 원(苑)의 기능도 하였다. 남천에는 유교(楡橋)·귀교(鬼橋)·춘양교(春陽橋)·월정교(月精橋)·일정교(日精橋) 등의 아름다운 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월정교 다리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4개의 교각(橋脚) 기초가 드러나고, 또 하나의 목교가 하류쪽으로 19m 거리에서 발견되었다. 월정교는 길이 63m, 너비 11m 정도의 석교였다. 이는 신라의 도로규모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계림은 원래 시림(始林)이라고도 하며, 신라의 국호가 되었던 중요한 숲이다. 서기 65년(탈해이사금 9년) 3월 이 숲에서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가 되는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났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시림조에 보면, “숲속에 쌓은 돌이 있는데 높이가 3척이나 된다.
속설에 전하기를, 알지의 태(胎)를 풀 때 가위를 놓았던 돌로서 가위의 흔적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신단(神壇)같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1803년(순조 3)에 세운 김알지 탄생비가 비각 속에 서있다.
계림은 습지여서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숲 속에는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발굴결과 이 숲 북쪽에서 드러난 큰 건물터들은 관아건물이거나 신묘(神廟)같은 건물들로 보인다.
계림은 신라 왕궁의 경역 내에 있는 후원(後苑)같은 원림(園林)이다. 계림 북쪽에 첨성대가 서있고 첨성대 주위에는 고분들이 인접해 있다. 계림과 연결된 서쪽 솔숲 속에는 내물왕릉이 있다. 내물왕이 죽은 해는 401년이므로 5세기 초의 고분이다.
곧, 신라시대에는 왕궁이 원림과 연결되고, 이 원림 속에 첨성대와 왕릉들이 자리하였던 것이다.
현세의 왕궁과 내세의 왕릉이 한 지역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곳은 신라의 아득한 풍치를 보존하고 있는 역사의 명승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