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2월 6일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 12월 9일 명승 부여구드래일원으로 재지정되었다. 지정면적 2,980만 175㎡. 이 지정구역 내에는 부소산(扶蘇山)에 접한 백마강 강역과 조룡대(釣龍臺) · 부산성(浮山城) · 나성(羅城) · 대재각(大哉閣) · 수북정(水北亭) · 자온대(自溫臺) · 왕흥사지(王興寺址) 등이 있다.
구두래는 부소산 서쪽 백마강나루터를 가리켜 부르는 지명이다. 백마강은 『삼국사기』에 사비하(泗沘河) 또는 백강(白江)이라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사자하(泗泚河)로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금강이 부여읍을 우회해 흐르는 구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사자(泗泚)는 사비(泗沘)의 오기로 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여현조에 보면, “백마강이란 소정방(蘇定方)이 백강에서 말을 미끼로 용을 낚은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산천조(山川條)에는 “고성진(古省津)은 바로 사자하(泗泚河)인데 부소산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도 사자하는 사비하를 말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부여의 지명이 고려 때는 고성진(古省津)이기도 하였다. 이 고성진이 구두래이다. 구두래나루터는 백제 도성의 포구로서 중국이나 일본의 배가 드나들던 곳이다. 백제 왕도의 포구이름이 구두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보면 백제왕이 배를 타고 왕흥사에 예불하러 갈 때에는 먼저 사비수 언덕에 있는 십여 인이 앉을 수 있는 바위에 앉아 부처를 망배(望拜)하였다고 한다. 그 때 왕이 앉았던 반석이 구들처럼 저절로 따뜻해져 돌석(突石)이라고 하였다. 이 구들돌이 구두래의 어원이 아닌가 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백제를 ‘구다라’로 부른다. 이는 백제를 내왕한 일본의 배들이 백제 왕도의 포구이름을 국명으로 불렀던 것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구두래 일원은 백제 고도 부여의 가장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백제 때는 제왕들이 뱃놀이를 하고 잔치를 벌여 춤추고 노래하던 유연(遊宴)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는 조룡대, 신선이 노닌다는 부산(浮山), 왕이 부처를 망배하던 자온대 등의 유적이 백마강과 부소산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백제 고도의 역사적 명승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