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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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1946년 4월 21일 개성에 한국 최초 한국인 사제인 방유룡이 창설한 천주교 여자 수도회이다. 1952년 서울대교구로부터 교구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으며, 2021년 9월 성좌(聖座, 교황청)로부터 성좌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다. 영성은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이다. 순교자 현양, 선교, 의료, 교육, 사회 사목, 재속 복자회 등 다양한 사도직으로 세상과 연대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韓國殉敎福者修女會)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1946년 4월 21일 개성에 한국 최초 한국인 사제인 방유룡이 창설한 천주교 여자 수도회이다. 1952년 서울대교구로부터 교구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으며, 2021년 9월 성좌(聖座, 교황청)로부터 성좌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다. 영성은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이다. 순교자 현양, 선교, 의료, 교육, 사회 사목, 재속 복자회 등 다양한 사도직으로 세상과 연대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다. 천주교 신자가 많았던 충청도는 박해의 피해도 극심했다. 특히 감영의 소재지였던 공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참수형이 집행된 황새바위는 충청도 지방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가장 참혹한 순교 현장이었다. 역설적으로 20세기 초부터 국내외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오늘날에는 순교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공주와 충청도 순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 (公州 황새바위 天主敎 殉敎 遺蹟)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다. 천주교 신자가 많았던 충청도는 박해의 피해도 극심했다. 특히 감영의 소재지였던 공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참수형이 집행된 황새바위는 충청도 지방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가장 참혹한 순교 현장이었다. 역설적으로 20세기 초부터 국내외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오늘날에는 순교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공주와 충청도 순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의 탑비이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882년에 입적한 도헌을 현창하기 위해 893년에 최치원이 비문을 작성하였고, 924년에 비를 건립하였는데 분황사 승려 혜강이 비문을 쓰고 새겼다. 이 탑비는 지증대사의 행적을 전할 뿐 아니라 신라 불교 공인 시기 및 선종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의 탑비이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882년에 입적한 도헌을 현창하기 위해 893년에 최치원이 비문을 작성하였고, 924년에 비를 건립하였는데 분황사 승려 혜강이 비문을 쓰고 새겼다. 이 탑비는 지증대사의 행적을 전할 뿐 아니라 신라 불교 공인 시기 및 선종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해방 이후 가톨릭대학 의학부장, 미리내 본당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윤형중 (尹亨重)
해방 이후 가톨릭대학 의학부장, 미리내 본당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손양원은 여순사건 당시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좌익 청년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기독교 목회자이자 순교자이다. 부산의 나병원 교회인 상애원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고 1938년부터는 여수의 나병원 교회인 애양원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해방 이후 출옥하였다. 여순사건 때 자신의 아들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안재선의 구명 운동을 펼쳐 구해 내고 양자로 삼아 사후에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6·25전쟁 중 공산당원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손양원 (孫良源)
손양원은 여순사건 당시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좌익 청년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기독교 목회자이자 순교자이다. 부산의 나병원 교회인 상애원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고 1938년부터는 여수의 나병원 교회인 애양원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해방 이후 출옥하였다. 여순사건 때 자신의 아들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안재선의 구명 운동을 펼쳐 구해 내고 양자로 삼아 사후에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6·25전쟁 중 공산당원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일제강점기 안동교회 장로, 베다니전도교회 건축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육영사업가, 순교자.
김응락 (金應洛)
일제강점기 안동교회 장로, 베다니전도교회 건축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육영사업가, 순교자.
방유룡(方有龍)은 해방 후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에 맞는 한국순교복자가족수도회를 창설한 사제이자 그리스도교 영성을 한국의 정서와 언어로 적합하게 구현한 영성가이다. 해방 후 수녀회(1946년), 성직수도회(1953년), 재속복자회(제3회, 1957년), 빨마수녀회(1962년)를 창설하였다. 가톨릭 신앙을 동양적 정서 속에 녹여낸 고유한 수도 영성을 만들어 한국 문화 안에서 조화로운 토착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겨레 복음화와 한국적 수도회 창설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응답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방유룡 (方有龍)
방유룡(方有龍)은 해방 후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에 맞는 한국순교복자가족수도회를 창설한 사제이자 그리스도교 영성을 한국의 정서와 언어로 적합하게 구현한 영성가이다. 해방 후 수녀회(1946년), 성직수도회(1953년), 재속복자회(제3회, 1957년), 빨마수녀회(1962년)를 창설하였다. 가톨릭 신앙을 동양적 정서 속에 녹여낸 고유한 수도 영성을 만들어 한국 문화 안에서 조화로운 토착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겨레 복음화와 한국적 수도회 창설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응답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