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숭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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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장군유적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을 기리는 유적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기리기 위해 왕건이 공이 숨진 자리에 지묘사와 순절단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 조선 후기 때 후손들이 신숭겸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옛 절터에 표충사를 세우고 단을 중건하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신숭겸 장군 유적 (申崇謙 將軍 遺蹟)
신숭겸장군유적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을 기리는 유적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기리기 위해 왕건이 공이 숨진 자리에 지묘사와 순절단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 조선 후기 때 후손들이 신숭겸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옛 절터에 표충사를 세우고 단을 중건하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고려전기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의 신도비.
춘천 장절공 신숭겸 신도비 (春川 壯節公 申崇謙 神道碑)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고려전기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의 신도비.
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공산전투 (公山戰鬪)
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복지겸 (卜智謙)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고려 전기에, 후백제와의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구하다 전사한 장군·공신.
김락 (金樂)
고려 전기에, 후백제와의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구하다 전사한 장군·공신.
고려 전기에, 대광, 마군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배현경 (裵玄慶)
고려 전기에, 대광, 마군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신장절공묘역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의 묘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하자, 시신을 공이 거주하던 춘천에 안장하였다. 후백제군이 신숭겸의 머리를 잘라 돌아가자 왕건이 공의 두상을 만들게 하여 매장하였는데, 두상이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숭겸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신장절공 묘역 (申壯節公 墓域)
신장절공묘역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의 묘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하자, 시신을 공이 거주하던 춘천에 안장하였다. 후백제군이 신숭겸의 머리를 잘라 돌아가자 왕건이 공의 두상을 만들게 하여 매장하였는데, 두상이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숭겸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조선시대 조산보만호, 도총부도사, 낙안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신호 (申浩)
조선시대 조산보만호, 도총부도사, 낙안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후기에, 영릉·희릉의 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신임사화와 정미환국으로 유배된 유생.
신구 (申球)
조선 후기에, 영릉·희릉의 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신임사화와 정미환국으로 유배된 유생.
조선 전기의 기묘사화 때, 사림파의 구명을 위하여 상소한 문신.
신명인 (申命仁)
조선 전기의 기묘사화 때, 사림파의 구명을 위하여 상소한 문신.
신헌주는 조선 후기에 훈련원첨정, 첨지중추부사, 함종부사를 역임한 무신이다. 무과(武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비변사낭청(備邊司郞廳)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등을 역임하였고, 외방에 제수되어 국방을 강화하고 공무를 공정히 처리하여 조정에서 인정을 받았다.
신헌주 (申憲周)
신헌주는 조선 후기에 훈련원첨정, 첨지중추부사, 함종부사를 역임한 무신이다. 무과(武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비변사낭청(備邊司郞廳)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등을 역임하였고, 외방에 제수되어 국방을 강화하고 공무를 공정히 처리하여 조정에서 인정을 받았다.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었던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유금필 등 4인을 제향한 사당.
태사사 (太師祠)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었던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유금필 등 4인을 제향한 사당.
태조는 고려 전기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18∼943년이다. 이름은 왕건으로 궁예의 휘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시중이 되었다. 궁예의 실정이 거듭되자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새 왕조를 열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문란해진 토지제도 정비와 조세 경감으로 민심을 수습하였으며 호족들과는 정략결혼으로 연대를 강화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신라에 대해 친화정책을 펴는 한편 후백제에는 화전 양면 전술로 대응하여 마침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하였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장려하였고 왕실의 헌장으로 자손들에게 「훈요십조」를 남겼다.
태조 (太祖)
태조는 고려 전기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18∼943년이다. 이름은 왕건으로 궁예의 휘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시중이 되었다. 궁예의 실정이 거듭되자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새 왕조를 열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문란해진 토지제도 정비와 조세 경감으로 민심을 수습하였으며 호족들과는 정략결혼으로 연대를 강화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신라에 대해 친화정책을 펴는 한편 후백제에는 화전 양면 전술로 대응하여 마침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하였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장려하였고 왕실의 헌장으로 자손들에게 「훈요십조」를 남겼다.
고려전기 개국1등공신에 책록된 공신. 무신.
홍유 (洪儒)
고려전기 개국1등공신에 책록된 공신.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