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악학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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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은 조선 전기 『허백당집』, 『악학궤범』, 『용재총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중국 사신을 접대할 정도로 시에 뛰어났다. 오랫동안 관직에 종사하며 홍문관 대제학에 올라 당대의 문장을 담당하였다. 문학뿐만 아니라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났다.
성현 (成俔)
성현은 조선 전기 『허백당집』, 『악학궤범』, 『용재총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중국 사신을 접대할 정도로 시에 뛰어났다. 오랫동안 관직에 종사하며 홍문관 대제학에 올라 당대의 문장을 담당하였다. 문학뿐만 아니라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났다.
당비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궁중에서 쓰인 당악기이다. 일명 사현비파 또는 곡경비파라고 한다. 조선 시대 문헌 『악학궤범』에 악기의 모양과 만드는 법 등이 실려 있다. 총 길이가 약 90㎝ 가량으로 목 부분이 ‘ㄱ’자처럼 굽었으며 넉 줄이 매여 있다. 당비파는 조선 초 세종 때 당악뿐 아니라 향악 연주 때 널리 사용되었다. 성종 때는 종묘의 헌가나 연례악 등을 연주할 때도 쓰였다. 유명했던 당비파의 명수는 송태평의 아들 전수와 도선길이었다. 당비파의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전승되었으며 20세기 초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당비파 (唐琵琶)
당비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궁중에서 쓰인 당악기이다. 일명 사현비파 또는 곡경비파라고 한다. 조선 시대 문헌 『악학궤범』에 악기의 모양과 만드는 법 등이 실려 있다. 총 길이가 약 90㎝ 가량으로 목 부분이 ‘ㄱ’자처럼 굽었으며 넉 줄이 매여 있다. 당비파는 조선 초 세종 때 당악뿐 아니라 향악 연주 때 널리 사용되었다. 성종 때는 종묘의 헌가나 연례악 등을 연주할 때도 쓰였다. 유명했던 당비파의 명수는 송태평의 아들 전수와 도선길이었다. 당비파의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전승되었으며 20세기 초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1393년(태조 2)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축가(頌祝歌).
납씨가 (納氏歌)
1393년(태조 2)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축가(頌祝歌).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사용된 전통적인 악기 분류법.
팔음 (八音)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사용된 전통적인 악기 분류법.
1393년(태조 2)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도가(頌禱歌).
궁수분곡 (窮獸奔曲)
1393년(태조 2)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도가(頌禱歌).
향악기(鄕樂器)의 하나.
소관자 (小管子)
향악기(鄕樂器)의 하나.
한 옥타브 안에 사용된 일곱 음을 가리키는 국악용어. 칠성(七聲).
칠음 (七音)
한 옥타브 안에 사용된 일곱 음을 가리키는 국악용어. 칠성(七聲).
조선전기 예조판서 성현 등과 『악학궤범』 편찬에 참여한 음악인.
박곤 (朴棍)
조선전기 예조판서 성현 등과 『악학궤범』 편찬에 참여한 음악인.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속악가사.
관음찬 (觀音讚)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속악가사.
조선 전기 문소전(文昭殿)의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악장(樂章).
미미곡 (亹亹曲)
조선 전기 문소전(文昭殿)의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악장(樂章).
조선전기 예조판서 성현 등과 『악학궤범』 편찬에 참여한 음악인.
김복근 (金福根)
조선전기 예조판서 성현 등과 『악학궤범』 편찬에 참여한 음악인.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음악관련 서적.
관찬악서 (官撰樂書)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음악관련 서적.
조선후기 장악원에 두었던 잡직.
가전악 (假典樂)
조선후기 장악원에 두었던 잡직.
이마지는 조선 전기 장악원 전악을 역임한 거문고 연주자이다. 『악학궤범』의 저자 성현과 안침, 채수 등의 거문고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마지의 거문고 음악은 자연 현상과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깊은 감정적 호소력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그의 거문고 연주법은 『악학궤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마지의 음악적 업적은 조선 전기 음악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당시 상류층의 풍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마지 (李亇知)
이마지는 조선 전기 장악원 전악을 역임한 거문고 연주자이다. 『악학궤범』의 저자 성현과 안침, 채수 등의 거문고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마지의 거문고 음악은 자연 현상과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깊은 감정적 호소력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그의 거문고 연주법은 『악학궤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마지의 음악적 업적은 조선 전기 음악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당시 상류층의 풍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초적은 풀이나 잎사귀, 나무껍질 등을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피리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악기로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민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향악기로 궁중 연향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는데, 특히 연산군이 그 음악을 사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춘섭이라는 명인이 뛰어난 기량으로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겹서를 가진 관 형태로 연주하는 것과 나뭇잎과 같은 얇은 막을 입으로 진동시키는 것 등이 있다.
초적 (草笛)
초적은 풀이나 잎사귀, 나무껍질 등을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피리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악기로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민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향악기로 궁중 연향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는데, 특히 연산군이 그 음악을 사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춘섭이라는 명인이 뛰어난 기량으로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겹서를 가진 관 형태로 연주하는 것과 나뭇잎과 같은 얇은 막을 입으로 진동시키는 것 등이 있다.
「황하청만」은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들어온 사악이다. 조단례(晁端禮)의 작품으로 글자 수는 모두 98자이다. 곡 이름에 ‘만사’의 뜻인 ‘만’자가 붙어 있어 이 곡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임을 나타내었다. 「황하청만」은 『고려사』 악지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전기에는 전승되지 못하였다.
황하청만 (黃河淸慢)
「황하청만」은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들어온 사악이다. 조단례(晁端禮)의 작품으로 글자 수는 모두 98자이다. 곡 이름에 ‘만사’의 뜻인 ‘만’자가 붙어 있어 이 곡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임을 나타내었다. 「황하청만」은 『고려사』 악지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전기에는 전승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