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빈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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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은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묘에 부장하기 위해 제작한 묘지(墓誌)와 명기이다. 영빈이씨의 묘인 수경원에서 출토되었는데 영빈이씨는 사도세자의 어머니이다. 묘지는 장방형으로,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묘주의 행적과 가계 등을 적어 넣었다. 명기는 모두 20점인데 보·작·준·향로·호·접시 등 제기를 본뜬 작은 부장품이다. 석함은 모두 3개로, 각각 2벌의 묘지와 명기를 담았던 것이다. 조선 후기 왕실 관련 유물로서 묘의 주인과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도자사적·역사적·서지학적가치가 크다.
백자 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 (白磁 靑華 暎嬪李氏 墓誌·明器 및 石函)
백자 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은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묘에 부장하기 위해 제작한 묘지(墓誌)와 명기이다. 영빈이씨의 묘인 수경원에서 출토되었는데 영빈이씨는 사도세자의 어머니이다. 묘지는 장방형으로,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묘주의 행적과 가계 등을 적어 넣었다. 명기는 모두 20점인데 보·작·준·향로·호·접시 등 제기를 본뜬 작은 부장품이다. 석함은 모두 3개로, 각각 2벌의 묘지와 명기를 담았던 것이다. 조선 후기 왕실 관련 유물로서 묘의 주인과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도자사적·역사적·서지학적가치가 크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육상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실의 사당. 왕실사묘.
선희궁 (宣禧宮)
서울특별시 종로구 육상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실의 사당. 왕실사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씨 관련 사당터. 사묘.
선희궁터 (宣禧宮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씨 관련 사당터. 사묘.
「현륭원지」는 1789년 정조가 장헌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이장하고 지은 지문이다. 정조가 장헌세자의 현릉원을 수원부 화산으로 이장하고 지석의 지문을 친히 지었다. 지석은 묘 옆이나 앞에 묻는 것인데 지석에 새긴 글이 지문이다. 지문에는 죽은 사람의 생몰년, 행장, 묘소의 위치 등이 적혀있다. 「현륭원지」에는 원의 위치·작성 경위·가계·행록·추숭·자손 등을 기록하였다. 현륭원 지문은 정조의 『홍재전서』 16권에 수록되어 있다. 글의 작성에 이용된 전거들은 「행록」, 「기주」, 『궁중기문』, 『정원일기』, 『궁원의』 등이다.
현륭원지 (顯隆園誌)
「현륭원지」는 1789년 정조가 장헌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이장하고 지은 지문이다. 정조가 장헌세자의 현릉원을 수원부 화산으로 이장하고 지석의 지문을 친히 지었다. 지석은 묘 옆이나 앞에 묻는 것인데 지석에 새긴 글이 지문이다. 지문에는 죽은 사람의 생몰년, 행장, 묘소의 위치 등이 적혀있다. 「현륭원지」에는 원의 위치·작성 경위·가계·행록·추숭·자손 등을 기록하였다. 현륭원 지문은 정조의 『홍재전서』 16권에 수록되어 있다. 글의 작성에 이용된 전거들은 「행록」, 「기주」, 『궁중기문』, 『정원일기』, 『궁원의』 등이다.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영빈이씨의 의열(義烈)을 기려 1764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어제표의록 (御製表義錄)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영빈이씨의 의열(義烈)을 기려 1764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임오화변은 1762년(영조 38) 영조가 대리청정 중인 사도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임오화변의 배경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이 있다. 세자의 비행을 고발한 일을 계기로 영빈이씨가 영조에게 세자의 심각한 병증과 예측 불가능한 변란 위험을 실토하자 영조는 결국 임오화변을 벌였다. 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에게 왕위를 계승하였다. 임오화변은 영조대 후반부터 순조대까지의 주요 정치적 쟁점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임오화변 (壬午禍變)
임오화변은 1762년(영조 38) 영조가 대리청정 중인 사도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임오화변의 배경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이 있다. 세자의 비행을 고발한 일을 계기로 영빈이씨가 영조에게 세자의 심각한 병증과 예측 불가능한 변란 위험을 실토하자 영조는 결국 임오화변을 벌였다. 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에게 왕위를 계승하였다. 임오화변은 영조대 후반부터 순조대까지의 주요 정치적 쟁점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