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예식원"
검색결과 총 6건
조선 말기 궁중의 제반의식을 담당한 관직.
장례 (掌禮)
조선 말기 궁중의 제반의식을 담당한 관직.
조선 말기의 관직.
찬의 (贊議)
조선 말기의 관직.
박문원은 대한제국시대에 국내외의 도서 · 신문 · 잡지 등을 보관 ·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갑오개혁 때 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설치한 궁내부는 대한제국시대에 오히려 강화된 황제권의 실현기구로 변모하였다. 궁내부가 대폭 확대되는 과정에서 1903년 1월에 박문원이 설립되었다. 1904년 1월, 예식원(禮式院) 박문과(博文課)로 축소 · 개편되었다.
박문원 (博文院)
박문원은 대한제국시대에 국내외의 도서 · 신문 · 잡지 등을 보관 ·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갑오개혁 때 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설치한 궁내부는 대한제국시대에 오히려 강화된 황제권의 실현기구로 변모하였다. 궁내부가 대폭 확대되는 과정에서 1903년 1월에 박문원이 설립되었다. 1904년 1월, 예식원(禮式院) 박문과(博文課)로 축소 · 개편되었다.
조선 말기 궁내부의 관직.
참리관 (參理官)
조선 말기 궁내부의 관직.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은 1906년에 궁내부 소속 관원의 서구식 대례복과 소례복에 관해 규정한 제도이다. 1906년 2월 27일에 제정된 이 「규칙」과 함께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이 공포되어 옷의 상세한 형태가 규정되었고, 이 ‘제식’의 형태대로 그린 ‘도식’이 존재하였다. 국가 사무를 보는 일반 문관과 차별화되는 궁내부만의 복제가 처음 제정되고, 황실 상징 무늬인 이화(李花: 오얏꽃)가 주요 무늬로 사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 (宮內府 本部 及 禮式院 禮服 規則)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은 1906년에 궁내부 소속 관원의 서구식 대례복과 소례복에 관해 규정한 제도이다. 1906년 2월 27일에 제정된 이 「규칙」과 함께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이 공포되어 옷의 상세한 형태가 규정되었고, 이 ‘제식’의 형태대로 그린 ‘도식’이 존재하였다. 국가 사무를 보는 일반 문관과 차별화되는 궁내부만의 복제가 처음 제정되고, 황실 상징 무늬인 이화(李花: 오얏꽃)가 주요 무늬로 사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수장(袖章)은 개항기 이후에 서구식 제복의 소매에 붙여 소속과 등급을 나타낸 계급장이다. 갑오개혁기에 육군복, 경찰복에 도입되었고 대한제국기에 문관대례복, 궁내부 본부와 예식원 대례복 등에 도입되었다. 대한제국기에 대표적인 형태로 육군복은 인자(人字)형, 경찰복은 우자(又字)형으로 소속을 나타내었고 계급이 높아질수록 수놓은 금사선이나 매듭끈의 숫자를 늘려 등급을 표현하였다. 문관대례복에는 무궁화 문양을 금사로 수놓았고, 궁내부 본부와 예식원의 대례복에는 오얏꽃 문양을 금사로 수놓아 소속을 나타냈다.
수장 (袖章)
수장(袖章)은 개항기 이후에 서구식 제복의 소매에 붙여 소속과 등급을 나타낸 계급장이다. 갑오개혁기에 육군복, 경찰복에 도입되었고 대한제국기에 문관대례복, 궁내부 본부와 예식원 대례복 등에 도입되었다. 대한제국기에 대표적인 형태로 육군복은 인자(人字)형, 경찰복은 우자(又字)형으로 소속을 나타내었고 계급이 높아질수록 수놓은 금사선이나 매듭끈의 숫자를 늘려 등급을 표현하였다. 문관대례복에는 무궁화 문양을 금사로 수놓았고, 궁내부 본부와 예식원의 대례복에는 오얏꽃 문양을 금사로 수놓아 소속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