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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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將軍塚)은 중국 지린성 집안시 통구분지 우산하고분군에 있는 고구려시대 5세기 전반경에 조성된 계단식 돌방 돌무지무덤이다. 가장 발달된 기술로 축조된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한 변 길이 30.15~31.25m, 잔존 높이 13.07m 규모이며 묘역과 담장 시설이 있다. 무덤 주변에 딸린무덤 2기와 제대, 서남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서 능묘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무덤은 5세기 전반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광개토왕릉 또는 장수왕릉으로 비정된다. 200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군총 (將軍塚)
장군총(將軍塚)은 중국 지린성 집안시 통구분지 우산하고분군에 있는 고구려시대 5세기 전반경에 조성된 계단식 돌방 돌무지무덤이다. 가장 발달된 기술로 축조된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한 변 길이 30.15~31.25m, 잔존 높이 13.07m 규모이며 묘역과 담장 시설이 있다. 무덤 주변에 딸린무덤 2기와 제대, 서남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서 능묘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무덤은 5세기 전반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광개토왕릉 또는 장수왕릉으로 비정된다. 200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벽돌무덤은 벽돌을 이용하여 일정한 양식으로 축조한 무덤양식이다. 벽돌을 재료로 하여 축조된 무덤으로 전축분이라고 부른다. 덧널무덤[木槨墓] 축조로 산림자원이 감소하여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의 벽돌무덤은 낙랑과 백제에서만 발견되는데 낙랑은 중국 한나라의 양식이고 백제는 남조 양나라의 양식을 모방하였다. 낙랑의 벽돌무덤은 고구려 돌방무덤이 확산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백제의 벽돌무덤은 부여로 천도한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터널형의 널방 형식은 부여고분군 및 대가야세력권의 함안·고령 지역 고분군에 이어졌다.
벽돌무덤 (甓돌무덤)
벽돌무덤은 벽돌을 이용하여 일정한 양식으로 축조한 무덤양식이다. 벽돌을 재료로 하여 축조된 무덤으로 전축분이라고 부른다. 덧널무덤[木槨墓] 축조로 산림자원이 감소하여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의 벽돌무덤은 낙랑과 백제에서만 발견되는데 낙랑은 중국 한나라의 양식이고 백제는 남조 양나라의 양식을 모방하였다. 낙랑의 벽돌무덤은 고구려 돌방무덤이 확산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백제의 벽돌무덤은 부여로 천도한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터널형의 널방 형식은 부여고분군 및 대가야세력권의 함안·고령 지역 고분군에 이어졌다.
무령왕 금제 관식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관식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관식은 왕의 나무널 내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2매가 발견되었다. 금을 두드려 2㎜의 순금판을 만들고 문양의 나머지 부분을 오리는 투각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불꽃 형상을 만들고 날개 장식을 달았다. 관식의 윗부분에는 만개한 측면의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무령왕 금제 관식은 지금까지 백제 왕의 관식으로 발견된 유일한 예이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왕은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쓴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무령왕 금제 관식 (武寧▽王 金製 冠飾)
무령왕 금제 관식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관식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관식은 왕의 나무널 내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2매가 발견되었다. 금을 두드려 2㎜의 순금판을 만들고 문양의 나머지 부분을 오리는 투각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불꽃 형상을 만들고 날개 장식을 달았다. 관식의 윗부분에는 만개한 측면의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무령왕 금제 관식은 지금까지 백제 왕의 관식으로 발견된 유일한 예이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왕은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쓴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
무령왕릉 지석 (武寧王陵 誌石)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公州 武寧王陵과 王陵園)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능. 왕릉.
동명왕릉 (東明王陵)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능. 왕릉.
김포 장릉(金浦 章陵)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쌍릉이다. 1619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사망하자 양주에 안장되었다. 1623년에 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를 정원대원군, 어머니를 연주부부인으로 봉하였으며, 1626년에 연주부부인의 장례를 치른후 정원대원군의 묘를 이장하여 쌍분으로 만들어 흥경원이 되었다. 1632년에 정원대원군을 원종이라 추존하고 흥경원을 장릉(章陵)이라 능호를 올리고 능제로 돌거리를 갖추었다.
김포 장릉 (金浦 章陵)
김포 장릉(金浦 章陵)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쌍릉이다. 1619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사망하자 양주에 안장되었다. 1623년에 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를 정원대원군, 어머니를 연주부부인으로 봉하였으며, 1626년에 연주부부인의 장례를 치른후 정원대원군의 묘를 이장하여 쌍분으로 만들어 흥경원이 되었다. 1632년에 정원대원군을 원종이라 추존하고 흥경원을 장릉(章陵)이라 능호를 올리고 능제로 돌거리를 갖추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왕릉.
전 구형왕릉 (傳 仇衡王陵)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왕릉.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
무령왕비 금제 관식 (武寧▽王妃 金製 冠飾)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현릉 (顯陵)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능원(陵園)은 고대부터 국왕과 왕후의 무덤을 일컫던 능(陵)과 조선 후기 세자 및 후궁들의 묘소를 일컫던 원(園)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능원이라는 용어는 『삼국사기』부터 등장하지만 이때는 왕릉 및 왕실의 묘역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국왕의 능과 세자 및 후궁의 원을 합쳐 능원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능원 (陵園)
능원(陵園)은 고대부터 국왕과 왕후의 무덤을 일컫던 능(陵)과 조선 후기 세자 및 후궁들의 묘소를 일컫던 원(園)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능원이라는 용어는 『삼국사기』부터 등장하지만 이때는 왕릉 및 왕실의 묘역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국왕의 능과 세자 및 후궁의 원을 합쳐 능원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수묘인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왕이나 귀족의 능묘를 지키고 제사 등의 행사에 동원되었던 연호(烟戶)이다. 수묘호(守墓戶)이나 수릉인(守陵人)이라고도 한다. 죽은 뒤에도 죽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는 계세사상(繼世思想)과 조상의 영혼이 후손들을 돌보아 준다는 조상숭배사상의 영향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무덤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수묘인 연호(烟戶)의 편성과 수묘제(守墓制)의 정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에서도 수묘인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묘인 (守墓人)
수묘인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왕이나 귀족의 능묘를 지키고 제사 등의 행사에 동원되었던 연호(烟戶)이다. 수묘호(守墓戶)이나 수릉인(守陵人)이라고도 한다. 죽은 뒤에도 죽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는 계세사상(繼世思想)과 조상의 영혼이 후손들을 돌보아 준다는 조상숭배사상의 영향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무덤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수묘인 연호(烟戶)의 편성과 수묘제(守墓制)의 정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에서도 수묘인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
매금 (寐錦)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
매지권은 돌이나 항아리에 새긴 묘지매입문서이다. 매지첩(買地牒)·매지별(買地?) 또는 총권(?券)이라고 부른다. 중국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장례 풍속으로 묘지에 대한 신의 보호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풍습이다. 지신(地神)에게 무덤으로 쓸 땅을 매입한다는 내용을 새겨서 당시 화폐나 지전(紙錢)을 무덤에 함께 넣었다. 신에게 묘의 안호를 기원하는 것과 묘지소유권을 확인하는 매매계약문서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이후 도교신앙과 융합되면서 지신에게 묘지를 구입하는 형식으로 변하였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무령왕과 왕비의 매지권이 발굴되었고, 고려시대의 매지권은 여러 점 발견되었다.
매지권 (買地券)
매지권은 돌이나 항아리에 새긴 묘지매입문서이다. 매지첩(買地牒)·매지별(買地?) 또는 총권(?券)이라고 부른다. 중국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장례 풍속으로 묘지에 대한 신의 보호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풍습이다. 지신(地神)에게 무덤으로 쓸 땅을 매입한다는 내용을 새겨서 당시 화폐나 지전(紙錢)을 무덤에 함께 넣었다. 신에게 묘의 안호를 기원하는 것과 묘지소유권을 확인하는 매매계약문서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이후 도교신앙과 융합되면서 지신에게 묘지를 구입하는 형식으로 변하였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무령왕과 왕비의 매지권이 발굴되었고, 고려시대의 매지권은 여러 점 발견되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귀걸이.
무령왕 금귀걸이 (武寧▽王 金귀걸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귀걸이.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중화 진파리 고분군 (中和 眞坡里 古墳群)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현릉(玄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능이다. 1365년 2월 노국대장공주의 사후 4월 정릉에 안장하고, 1366년 공민왕은 자신의 수릉을 정릉의 서쪽에 조영토록 하여, 환관 김사행이 4도감 13색을 지휘 감독하여 1372년 쌍릉으로 완공되었다. 1374년 공민왕의 사후 현릉에 안장되었다. 현정릉은 여타의 고려왕릉에 비하여 규모도 월등하고 문무인상도 등신대 이상이며 석양, 석호가 완비되고 조각술 또한 양감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나다. 조선왕릉 조성에 이정표가 된 기념비적인 왕릉이다.
현릉 (玄陵)
현릉(玄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능이다. 1365년 2월 노국대장공주의 사후 4월 정릉에 안장하고, 1366년 공민왕은 자신의 수릉을 정릉의 서쪽에 조영토록 하여, 환관 김사행이 4도감 13색을 지휘 감독하여 1372년 쌍릉으로 완공되었다. 1374년 공민왕의 사후 현릉에 안장되었다. 현정릉은 여타의 고려왕릉에 비하여 규모도 월등하고 문무인상도 등신대 이상이며 석양, 석호가 완비되고 조각술 또한 양감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나다. 조선왕릉 조성에 이정표가 된 기념비적인 왕릉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괘릉의 석인상·석사자상·석주 등의 능묘조각상. 경주괘릉.
경주 괘릉 석상 및 석주 일괄 (慶州 掛陵 石像 및 石柱 一括)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괘릉의 석인상·석사자상·석주 등의 능묘조각상. 경주괘릉.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왕실 제의 관련 사적지. 제사유적.
공주 정지산 유적 (公州 艇止山 遺蹟)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왕실 제의 관련 사적지. 제사유적.
헌릉(憲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삼거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4대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합장릉이다. 광종은 975년 5월, 51세의 나이로 사후 송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헌릉에 안장되었다. 현재 헌릉은 매봉 뒤 동쪽 골짜기의 높지 않은 언덕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고려시대에 헌릉은 산직당상 4명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리가 소홀하였지만, 1662년에도 정자각이나 석물이 유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사를 통해 능제와 구조 및 석물이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상당수 석물들이 유실되어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상태이다.
헌릉 (憲陵)
헌릉(憲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삼거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4대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합장릉이다. 광종은 975년 5월, 51세의 나이로 사후 송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헌릉에 안장되었다. 현재 헌릉은 매봉 뒤 동쪽 골짜기의 높지 않은 언덕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고려시대에 헌릉은 산직당상 4명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리가 소홀하였지만, 1662년에도 정자각이나 석물이 유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사를 통해 능제와 구조 및 석물이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상당수 석물들이 유실되어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