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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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지의 봄」, 「만주」, 「검은 사람」 등을 저술한 시인.
심연수 (沈連洙)
일제강점기 「대지의 봄」, 「만주」, 「검은 사람」 등을 저술한 시인.
『대동청사』는 1910년 황의돈이 중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이다. 단군 조선부터 영·정조 때까지의 한국사를 서술하였다. 상고사·중고사·근고사와 같이 새로운 역사 체계를 도입하였다. 2권 2책(3편 38장)으로, 필사 연도는 1910년이고 간행지는 확인할 수 없다. 표기는 국한문을 혼용하였다. 제1권은 상고사, 중고사, 근고사 제7장까지이며, 제2권은 근고사 제8장부터 제17장으로 구성되었다. 왕조 중심과 편년체의 기술 방식을 탈피하고 역사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시도한 저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동청사 (大東靑史)
『대동청사』는 1910년 황의돈이 중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이다. 단군 조선부터 영·정조 때까지의 한국사를 서술하였다. 상고사·중고사·근고사와 같이 새로운 역사 체계를 도입하였다. 2권 2책(3편 38장)으로, 필사 연도는 1910년이고 간행지는 확인할 수 없다. 표기는 국한문을 혼용하였다. 제1권은 상고사, 중고사, 근고사 제7장까지이며, 제2권은 근고사 제8장부터 제17장으로 구성되었다. 왕조 중심과 편년체의 기술 방식을 탈피하고 역사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시도한 저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간도 용정에 설립된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기독교 병원.
제창병원 (濟昌病院)
간도 용정에 설립된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기독교 병원.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신탄진초등학교 (新灘津初等學校)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공덕흡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대 후반 길림성 연길현 명월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대형 깃발을 들고 수많은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공덕흡 (孔德洽)
공덕흡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대 후반 길림성 연길현 명월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대형 깃발을 들고 수많은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병영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연길현 명동학교에 재학 중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쓰러졌다. 부근의 제창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3월 하순에 순국하였다.
김병영 (金炳榮)
김병영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연길현 명동학교에 재학 중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쓰러졌다. 부근의 제창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3월 하순에 순국하였다.
김승록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봉림동 남구에 거주하며 학교에 재학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승록 (金承祿)
김승록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봉림동 남구에 거주하며 학교에 재학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종묵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길림성 연길현 구승하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이 대거 참여한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가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사격으로 총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순국하였다.
김종묵 (金鍾默)
김종묵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길림성 연길현 구승하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이 대거 참여한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가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사격으로 총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순국하였다.
김태균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길림성 연길현 의란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태균 (金泰均)
김태균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길림성 연길현 의란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흥식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서울에 거주하다가 상업차 중국 연변의 용정을 방문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적극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흥식 (金興植)
김흥식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서울에 거주하다가 상업차 중국 연변의 용정을 방문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적극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문호는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평강의 남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형 깃발의 기수로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들이 대거 참가한 시위대의 선두에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문호 (朴文浩)
박문호는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평강의 남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형 깃발의 기수로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들이 대거 참가한 시위대의 선두에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동흥중학교는 1921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된 민족계 사립 중등교육기관이다. 1921년 10월 1일 천도교 신자 최익룡이 용정에 설립했던 동흥소학에 병설된 중학강습반을 승격해 만들어졌다. 학생들은 연변 각 지역에서 온 천도교인 자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일부는 소련 연해주와 조선, 남만주 및 북만주에서 오기도 하였다.
동흥중학교 (東興中學校)
동흥중학교는 1921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된 민족계 사립 중등교육기관이다. 1921년 10월 1일 천도교 신자 최익룡이 용정에 설립했던 동흥소학에 병설된 중학강습반을 승격해 만들어졌다. 학생들은 연변 각 지역에서 온 천도교인 자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일부는 소련 연해주와 조선, 남만주 및 북만주에서 오기도 하였다.
명신여학교는 1913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캐나다 장로파 선교사 박걸(朴傑, A.H.Barker)과 그의 부인 레베카가 조선인 소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1920년 6월 중학교로 승격되어 명신여자중학교가 되었다. 1941년 설립자들이 용정에서 철수한 후, 1943년 다른 학교와 병합되었다가 1945년 다시 회복되었고, 1946년 다른 5개의 중학교와 함께 길림성립용정중학교가 되었다.
명신여학교 (明新女學敎)
명신여학교는 1913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캐나다 장로파 선교사 박걸(朴傑, A.H.Barker)과 그의 부인 레베카가 조선인 소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1920년 6월 중학교로 승격되어 명신여자중학교가 되었다. 1941년 설립자들이 용정에서 철수한 후, 1943년 다른 학교와 병합되었다가 1945년 다시 회복되었고, 1946년 다른 5개의 중학교와 함께 길림성립용정중학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