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원당"
검색결과 총 14건
조선전기 선교도총섭를 역임한 승려.
신미 (信眉)
조선전기 선교도총섭를 역임한 승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
익산 대관사 (益山 大官寺)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전익희 (全益禧)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봉국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봉국사 대광명전 (奉國寺 大光明殿)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봉국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위패를 봉안한 왕실원당.
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 (報恩 法住寺 宣喜宮 願堂)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위패를 봉안한 왕실원당.
고려후기 요동정벌 당시의 승려. 승병장.
현린 (玄麟)
고려후기 요동정벌 당시의 승려. 승병장.
신라시대의 관서.
원당전 (願堂典)
신라시대의 관서.
건봉사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금강산(金剛山)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염불만일회로 유명한 사찰이다. 사명대사가 봉안했다고 알려진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19세기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왕실에서 시주하여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가 근래에 재건하였다.
금강산 건봉사 (金剛山 乾鳳寺)
건봉사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금강산(金剛山)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염불만일회로 유명한 사찰이다. 사명대사가 봉안했다고 알려진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19세기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왕실에서 시주하여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가 근래에 재건하였다.
법련사는 조선 후기 인선왕후가 창건한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사찰이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선왕후는 죽은 아버지 장유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찰의 절반이 파괴되었고, 이후 대은・복만・도원 등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리산 법련사 (修理山 法蓮寺)
법련사는 조선 후기 인선왕후가 창건한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사찰이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선왕후는 죽은 아버지 장유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찰의 절반이 파괴되었고, 이후 대은・복만・도원 등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종의 넷째 아들 성녕대군이 1418년에 13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태종과 비 원경왕후가 세운 원당이다. 대자암의 토지가 250결에 이르고 120명의 승려를 비롯해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한 왕실 원찰이었다. 태종의 비 원경왕후와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 안평대군·수양대군, 문종과 단종 등이 참여한 왕실 원당이었다. 행호와 무학의 수제자인 진산과 기화, 신미가 주지로 재임하였다. 대자암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사되어 갔다. 그 후 대자암에 인조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의 묘소로 조성되어 곁에 명적암이라 하였다.
대자산 대자암 (大慈山 大慈庵)
태종의 넷째 아들 성녕대군이 1418년에 13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태종과 비 원경왕후가 세운 원당이다. 대자암의 토지가 250결에 이르고 120명의 승려를 비롯해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한 왕실 원찰이었다. 태종의 비 원경왕후와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 안평대군·수양대군, 문종과 단종 등이 참여한 왕실 원당이었다. 행호와 무학의 수제자인 진산과 기화, 신미가 주지로 재임하였다. 대자암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사되어 갔다. 그 후 대자암에 인조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의 묘소로 조성되어 곁에 명적암이라 하였다.
봉국사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영장산에 있는, 조선 후기 현종의 명혜·명선 공주를 위해 창건한 원당 사찰이다. 1674년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명성왕후가 승려 일축에게 명해 절을 세우게 하였다. 두 공주의 묘가 이장되었던 일제강점기까지 매년 추천 의례를 행하였다. 관련 문화유산으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인 봉국사대광명전과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봉국사 (奉國寺)
봉국사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영장산에 있는, 조선 후기 현종의 명혜·명선 공주를 위해 창건한 원당 사찰이다. 1674년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명성왕후가 승려 일축에게 명해 절을 세우게 하였다. 두 공주의 묘가 이장되었던 일제강점기까지 매년 추천 의례를 행하였다. 관련 문화유산으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인 봉국사대광명전과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봉원사는 1748년(영조 24)에 세워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안산(鞍山)에 있는 사찰이다. 1748년(영조)가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봉원사라고 사액하며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무덤인 의소묘의 원당으로 삼았고, 이후 영빈이씨(暎嬪李氏)의 무덤인 수경원(綏慶園)의 원당(願堂)이자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인 효창묘(孝昌墓)의 조포사(造泡寺)가 되었다. 조선 후기 봉원사는 왕실 원당으로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이다.
안산 봉원사 (鞍山 奉元寺)
봉원사는 1748년(영조 24)에 세워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안산(鞍山)에 있는 사찰이다. 1748년(영조)가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봉원사라고 사액하며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무덤인 의소묘의 원당으로 삼았고, 이후 영빈이씨(暎嬪李氏)의 무덤인 수경원(綏慶園)의 원당(願堂)이자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인 효창묘(孝昌墓)의 조포사(造泡寺)가 되었다. 조선 후기 봉원사는 왕실 원당으로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이다.
봉은사는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태조의 원당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951년에 태조의 원당으로 아버지 태조를 위해 세웠다. 951년 무렵에 태조 진전에 태조 왕건 동상이 조성되어 안치되었다. 경내 효사관(공민왕 이후 경명전)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1234년(고종 21)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는 참정 차척의 집을 봉은사로 쓰다가 환도후 중건하였다. 2월 연등회 때와 태조의 기일을 전후로 행차하여 행향하였다. 국사와 왕사의 책봉이 있었으며 중요 고승이 주석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퇴락하였다.
개성 봉은사 (開城 奉恩寺)
봉은사는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태조의 원당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951년에 태조의 원당으로 아버지 태조를 위해 세웠다. 951년 무렵에 태조 진전에 태조 왕건 동상이 조성되어 안치되었다. 경내 효사관(공민왕 이후 경명전)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1234년(고종 21)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는 참정 차척의 집을 봉은사로 쓰다가 환도후 중건하였다. 2월 연등회 때와 태조의 기일을 전후로 행차하여 행향하였다. 국사와 왕사의 책봉이 있었으며 중요 고승이 주석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퇴락하였다.
신계사는 강원도 고산군 외금강면 금강산에 있는 조선시대 왕실 원당 사찰이다. 유점사의 말사였다. 519년에 보운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후대에 가탁된 전승이다. 조선시대에 왕실 원당 사찰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3층 석탑과 만세루의 석주 몇 개와 석조만 남게 되었다. 이후 북측과 남측이 신계사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2004년부터 2007년 10월까지 대웅전과 명부전을 비롯한 나머지 11개 전각을 복원하였다.
신계사 (神溪寺)
신계사는 강원도 고산군 외금강면 금강산에 있는 조선시대 왕실 원당 사찰이다. 유점사의 말사였다. 519년에 보운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후대에 가탁된 전승이다. 조선시대에 왕실 원당 사찰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3층 석탑과 만세루의 석주 몇 개와 석조만 남게 되었다. 이후 북측과 남측이 신계사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2004년부터 2007년 10월까지 대웅전과 명부전을 비롯한 나머지 11개 전각을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