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사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영장산에 있는, 조선 후기 현종의 명혜·명선 공주를 위해 창건한 원당 사찰이다. 1674년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명성왕후가 승려 일축에게 명해 절을 세우게 하였다. 두 공주의 묘가 이장되었던 일제강점기까지 매년 추천 의례를 행하였다. 관련 문화유산으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인 봉국사대광명전과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1028년(고려 현종 19)에 창건되었고 1395년(태조 4) 담화(曇華)가 중수하였다고 하지만, 신뢰할 만한 근거 자료가 없다. 17세기 말에 나온 사찰 사료 『범우고(梵宇攷)』에는, 성부산(星浮山)에 있으며 명혜(明惠)와 명선(明善) 공주를 위해 묘지에서 몇 리 떨어진 곳에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시적으로 억불책을 시행하였던 현종에게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를 올린 백곡(白谷) 처능(處能: 1617~1680)의 문집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에 「봉국사 신창기(奉國寺 新剏記)」가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1673년(현종 14) 두 공주가 요절하자 어머니인 명성왕후(明聖王后)가 크게 상심하였고,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1674년(현종 15) 금강산 승려 일축(日竺)을 시켜 원당으로 절을 세우게 하였다. 묘의 몇 리 밖 성부산 아래에 세운 절에 ‘봉국사(奉國寺)’의 현판을 내려 주었다고 하며, 이후 향불을 올려 추천(推薦) 의례를 하였음을 볼 수 있다.
봉국사에서는 매년 궁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봄가을에 두 공주의 제사를 지냈으며, 이러한 의례는 공주들의 묘가 서삼릉(西三陵)으로 이장된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다. 봉국사는 1920년 대한독립단을 조직하고 항일 문서를 배포한 김교상(金敎爽)의 활동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이 무렵 1924년에 두창(斗昌)이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춘성(春城)이 경성부 삼청동 백악산 동쪽에 절의 부속 암자로 법당을 만들었다. 8·15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인 1958년에 비구니 법운(法雲)이 중수하였고, 1967년에는 혜성(慧星)이 삼성각(三聖閣)을 신축하였다. 1974년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城南 奉國寺 주1을 개금하였고, 1977년 5월에 3층 석탑을 조성하면서 태국에서 가져온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하였다. 봉국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로 관리, 운영되고 있다.
대광명전과 삼성각, 심검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城南 奉國寺 大光明殿)은 1980년 6월 2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22년 12월 28일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에는 원래 목조비로자나불조상이 봉안되어 있었고, 전에 있던 나한전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1939년 이후 각각 서울 지장암과 칠보사로 옮겨졌고, 현재의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지금의 자리에 안치되었다.
조선 현종의 두 공주를 위한 원당 사찰로서, 왕실 불교의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은 불교미술사 측면에서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