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윤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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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구 초상은 윤봉구(1681∼1767)의 초상화이다. 201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132㎝, 가로 93㎝의 큰 초상화이다. 윤봉구는 동파관을 쓰고 검은 깃이 달린 연녹색 난삼을 입고 화문석에 앉아 있다. 이 초상화 외에도 윤봉구 초상은 미국 소장본과 중앙박물관본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 변상벽이 그린 동일한 초본을 범본으로 1750년(영조 26)경에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초본을 사용해 제작한 여러 작품을 비교해 제작 시기의 선후 관계나 이모 여부에 따른 양식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다.
윤봉구 초상 (尹鳳九 肖像)
윤봉구 초상은 윤봉구(1681∼1767)의 초상화이다. 201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132㎝, 가로 93㎝의 큰 초상화이다. 윤봉구는 동파관을 쓰고 검은 깃이 달린 연녹색 난삼을 입고 화문석에 앉아 있다. 이 초상화 외에도 윤봉구 초상은 미국 소장본과 중앙박물관본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 변상벽이 그린 동일한 초본을 범본으로 1750년(영조 26)경에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초본을 사용해 제작한 여러 작품을 비교해 제작 시기의 선후 관계나 이모 여부에 따른 양식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다.
『밀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지행의 시·서(書)·잡저·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8권 9책의 필사본이다. 김지행은 윤봉구의 문인으로 스승과 관련한 시문이 많은 편이다. 생전에 선대의 학술을 계승하여 연구하는 일에 집중한 저자는 인물성동론 등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이와 관련된 저작을 다수 남겼다. 본서는 저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밀암문집 (密庵文集)
『밀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지행의 시·서(書)·잡저·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8권 9책의 필사본이다. 김지행은 윤봉구의 문인으로 스승과 관련한 시문이 많은 편이다. 생전에 선대의 학술을 계승하여 연구하는 일에 집중한 저자는 인물성동론 등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이와 관련된 저작을 다수 남겼다. 본서는 저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조선 후기에, 『최와집』 등을 저술한 학자.
김규오 (金奎五)
조선 후기에, 『최와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시대 문신·학자 이이·김장생·송시열 등의 성리설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유학서.
무기록 (戊己錄)
조선시대 문신·학자 이이·김장생·송시열 등의 성리설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유학서.
앵삼은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放榜儀)에서 착용한 황록색 난삼이다. 난삼에서 비롯되었으나 난삼보다 밝은 색으로 제작하였다. 1747년(영조 23)부터 생 · 진사의 방방복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였다. 김택영(金澤榮)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색 앵삼을 입었다.”라고 한 기록을 통해 앵삼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고 흑색 가선을 두른 앵삼이 소장되어 있다.
앵삼 (鶯衫)
앵삼은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放榜儀)에서 착용한 황록색 난삼이다. 난삼에서 비롯되었으나 난삼보다 밝은 색으로 제작하였다. 1747년(영조 23)부터 생 · 진사의 방방복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였다. 김택영(金澤榮)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색 앵삼을 입었다.”라고 한 기록을 통해 앵삼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고 흑색 가선을 두른 앵삼이 소장되어 있다.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권상하 (權尙夏)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조선 후기에, 『홍범도설』, 『심학천요』, 『중용대학차기』 등을 저술한 학자.
심건영 (沈健永)
조선 후기에, 『홍범도설』, 『심학천요』, 『중용대학차기』 등을 저술한 학자.
위백규는 조선 후기 전라도 장흥에서 활동한 실학자이다. 윤봉구에게서 수학하여 노론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나, 다양한 학문에 대한 탐색 속에서 지방 사회의 현실과 접목하여 다양한 경세론을 제시하였다. 향촌의 자율성을 근거로 향중공론에 입각한 개혁론이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위백규 (魏伯珪)
위백규는 조선 후기 전라도 장흥에서 활동한 실학자이다. 윤봉구에게서 수학하여 노론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나, 다양한 학문에 대한 탐색 속에서 지방 사회의 현실과 접목하여 다양한 경세론을 제시하였다. 향촌의 자율성을 근거로 향중공론에 입각한 개혁론이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옥계서원은 조선 후기 윤봉구와 최남두 등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윤봉구의 문인이자 합천 출신인 최남두가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당에서 발전한 서원이다.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서 소수인 노론계 서원의 설립 과정과 운영 양상 그리고 제향자들도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진 공간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옥계서원 (玉溪書院)
옥계서원은 조선 후기 윤봉구와 최남두 등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윤봉구의 문인이자 합천 출신인 최남두가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당에서 발전한 서원이다.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서 소수인 노론계 서원의 설립 과정과 운영 양상 그리고 제향자들도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진 공간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조선 후기에, 『취정록』 등을 저술한 학자.
송명휘 (宋明輝)
조선 후기에, 『취정록』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학행으로 사헌부지평에 추증된 학자.
정언겸 (鄭彦兼)
조선 후기에, 학행으로 사헌부지평에 추증된 학자.
강문팔학사는 조선시대 학자 수암 권상하 문하에 있던 8인의 충청도 제자이다. 호중팔학사라고도 불렀다. 권상하는 송시열의 수제자로 청풍의 황강 옆에 살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충청도 출신의 저명한 8명의 제자, 즉 한원진, 이간, 윤봉구, 채지홍, 한홍조, 현상벽, 윤혼 등인데 윤봉구, 한홍조, 운혼을 빼고 성징후, 이이근, 최징후를 넣기도 한다. 정통 기호학파의 학설과 정치적 입장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사람과 다른 사물이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토론한 ‘인물성동이론’을 제기하여 조선 성리학의 심성설을 심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강문팔학사 (江門八學士)
강문팔학사는 조선시대 학자 수암 권상하 문하에 있던 8인의 충청도 제자이다. 호중팔학사라고도 불렀다. 권상하는 송시열의 수제자로 청풍의 황강 옆에 살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충청도 출신의 저명한 8명의 제자, 즉 한원진, 이간, 윤봉구, 채지홍, 한홍조, 현상벽, 윤혼 등인데 윤봉구, 한홍조, 운혼을 빼고 성징후, 이이근, 최징후를 넣기도 한다. 정통 기호학파의 학설과 정치적 입장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사람과 다른 사물이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토론한 ‘인물성동이론’을 제기하여 조선 성리학의 심성설을 심화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