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행(金砥行, 1716~1774)은 자 유도(幼道), 호 밀암(密菴), 본관 안동(安東)이다. 윤봉구(尹鳳九)의 문인으로 임성주(任聖周), 윤심위(尹心緯), 김의행(金毅行) 등과 교유하였다.
그는 충청도 덕산(德山: 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나 스무살 때부터 윤봉구에게 글을 배웠고 일찍이 과거 볼 뜻을 버리고 학문을 닦았다. 1755년에는 선영이 있는 공주(公州) 계실(溪室)로 이거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윤봉구에게 나아가 심성강설(心性講說) 등을 들었으며 향사례(鄕射禮)에 참여하는 등 교유하였다. 1765년(영조 41)에 주1로 선공감(繕工監) 가감역(假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글로 여생을 마쳤다.
18권 9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찬 경위는 알 수 없다.
저자의 유문은 아들 김이수(金履脩, 17451788)가 저자의 언행(言行) 140여 칙(則)과 문경(文經) 5권을 채록하고 조카 김이홍(金履弘, 1746?)이 보유(補遺) 42장(章), 시(詩) 90여 수(首), 부(賦)· 제문(祭文)· 잡저(雜著)· 서(書) 40편으로 편차하였다. 그리고 저자의 행적은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 묘지명을, 박윤원(朴胤源, 17341799)이 묘갈명을 지어 정리하였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고, 현재 사본(寫本)으로 남아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하고 있는 것이 유일본으로 책말에 있는 등사기(謄寫記)에 경성(京城)에 거주하던 김인진(金寅鎭, 1899~1951)이 소장한 사본을 1939년 3월 2일 등사 완료하고 정계섭(鄭啓燮)이 교정하였다고 되어 있다. 김인진은 저자의 6대 종손(宗孫)으로 그의 소장본을 등사한 것과 저자의 아들 김이수와 조카 김이홍이 정리한 것의 관계는 확실히 알 수 없다.
18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2는 시 97수로 대체로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대개 서(序)를 붙여 그 시를 짓게 된 동기를 밝혔으며, 성현의 말을 인용할 때는 주2로 전거를 밝혔다. 1753년(영조 29)에 지은 「화정구암선생논심성시(和呈久菴先生論心性詩)」 23수는 스승 윤봉구(尹鳳九)의 심성(心性)을 논한 시에 화답해 지은 것으로 각 수마다 장편의 해설을 덧붙여, 저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송나라의 대학자 주3의 글을 읽고 난 느낌을 시로 표현한 것, 주희의 도설(道說)과 성리학의 인물성(人物性)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 등 저자가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 많다. 이 밖에 1760년 병계( 屛溪)의 향사례(鄕射禮)에 참여하였을 때 윤봉구가 지은 시에 차운한 것과 1767년 봄 서천(舒川)에서 돌아오는 길에 윤봉구의 아들 임천군수(林川郡守) 윤심위(尹心緯)를 방문하였다가 친우들과 뱃놀이를 하며 지은 시가 있다. 만시로는 재종제 김의행(金毅行), 홍장해(洪章海), 종형 김교행(金敎行), 아우 김여행(金礪行), 윤계정(尹啓鼎), 윤봉구 등에 대한 것들이 있다.
권3∼6은 서(書) 68편이다. 서(書)는 윤봉구·윤심위·윤창정(尹昌鼎)·임성주· 임정주(任靖周)·홍주종(洪柱宗) 등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과 교환한 것이 대부분이다. 주4 등 성리학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토론한 장편의 편지가 많다. 「사문질의」는 스승으로부터 성리학을 가르침 받은 내용과 질의·응답한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잡지는 성리학의 중요한 개념들에 관한 주5 등의 설을 인용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내용이다.
권7∼9는 「사문질의(師門質疑)」로 어록조품(語錄條稟)과 어록조대(語錄條對)는 윤봉구의 어록 각 조목을 놓고 이에 대한 의문과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것이고, 강설문대(講說問對)는 1762년 심성에 대한 강설을 들을 때 스승의 가르침과 자신의 의견을 기록한 것으로 모두 심성론(心性論)을 비롯한 성리학의 주요 논제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권10은 잡지(雜識)로 이기(理氣), 심성(心性), 성선(性善), 혼신(鬼神), 오상(五常), 오행(五行),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등 성리학의 주요 논제들에 대한 저자의 견해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권11∼15는 잡저 26편, 제문 4편, 행장 2편 등이다. 『이정전서(二程全書)』·『주서절요(朱書節要)』·『주자어류』 등의 성리학 서적과 만동묘(萬東廟)의 비문의 구절에 해설을 붙이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 권익관(權益寬)의 성설(性說)과 왕양명(王陽明) 등의 글을 읽고 비판한 글, 일상생활 및 학문하는 가운데 꼭 지켜야 할 사항을 모아 놓은 글 등이 있다. 권15의 잡저에는 자서(自序)· 부(賦)· 찬(贊)· 잠(箴)· 명(銘) 등이 있다. 그 가운데 설은 아들 김이수의 이름을 풀이한 글과 송나라 고종(高宗)의 세실(世室)에 대한 주희설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이다. 찬은 심학(心學)과 『주역』에 관한 글이다. 잠은 주6·존덕성(尊德性) 등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을 경계하여 지은 것이다.
권16은 서(書) 1편, 잡저 1편이다. 서는 윤창정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보낸 별지로, 오상에 대해 논하였다. 부록의 「계하견문」은 아들 김이수가 저자에 관해 들은 이야기,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 등을 적어 놓은 글이다.
권17~18은 부록으로 권17의 「계하견문(溪下見聞)」은 아들 김이수가 저자의 언행과 일화들을 정리한 것이다. 권18에는 종중(宗中), 유한준, 임성주가 지은 제문 8편, 박윤원이 지은 만사와 유한준이 지은 묘지명, 박윤원이 지은 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등사기(謄寫記)가 있다.
김지행은 이기(理氣), 심성(心性), 성선(性善), 혼신(鬼神), 오상(五常), 오행(五行),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등 성리학의 주요 논제들에 관한 글이 많아 성리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문헌이고, 윤봉구의 학맥 연구에도 필요한 문헌이다.
『밀암문집』은 유일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저자의 6대 종손 김인진이 소장한 사본을 1939년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에서 등사한 사본을 저본으로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속 83집으로 영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