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근재(近齋),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문인인 야천(冶川) 박소(朴紹, 14931534)의 8대손이다. 할아버지는 박필리(朴弼履)이고, 아버지는 공주 판관을 지낸 박사석(朴師錫, 17131774)이다. 김창협(金昌協, 16511708)에서 김원행(金元行, 17031772), 홍직필(洪直弼, 17761852)로 이어지는 주1 산림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북학파 관계자들과도 인연이 깊은데,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과 동문수학하였고,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는 족친 관계이기도 하다.
1792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선공감 감역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98년 원자를 위한 강학청이 설치될 때 서연관(書筵官)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거절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당시 소개되던 서학의 폐해가 도교와 불교보다 크다고 생각하여 이것들을 배척하고 성리학 연구에만 침잠하였다.
박윤원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은 닭이나 고양이 등의 짐승도 인간과 똑같은 오상(五常)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고, 성범심동론(聖凡心同論)은 성인이든 보통 사람이든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소학』을 중시하였는데,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되는 관혼상제 등의 통과 의례가 수신이라는 자기 수양의 결과가 드러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의 학문적 주요 관심은 예학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박윤원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근재예설(近齋禮說)』이 있다. 『근재예설』은 박윤원의 문집에서 예에 관한 조목을 뽑아 분류하여 만든 일종의 유서(類書)라고 할 수 있는데, 박윤원의 손자인 박운수(朴雲壽, 17971841)와 질손인 박기수(朴岐壽, 17741845)가 중심이 되어 편찬하였다.
죽은 뒤에 대사헌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