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이다. 아버지는 김진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주요 편자인 후손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자는 달민(達民), 호는 척암(拓菴)이다.
불분권 1책의 목판본으로, 표제가 ‘동자례(童子禮)’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자례』와 『거향잡의(居鄕雜儀)』 2편을 묶어 편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권두에는 김도화와 이중곤(李中錕)의 「동자례서(童子禮序)」가 있다. 김도화의 서문은 1900년 9월 중양절[庚子九月重陽節]에 작성된 것이고, 이중곤의 서문은 1910년 7월 하순[庚戌七月下澣]에 작성된 것이다.
권말에는 김발(金潑)과 김종하(金宗夏)의 발문이 있고, 김휘철(金輝轍)의 「서동자례후(書童子禮後)」와 박승진(朴勝振)의 지(誌)가 있다. 김발의 발문은 1582년 2월 상순[萬曆壬午春二月上浣]에 작성된 것이고, 박승진의 지는 1910년에 작성된 것이다. 마지막에 적힌 ‘세임자정월입(歲任子正月入)’으로 미루어, 1912년 전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김성일이 북경에서 구입한 『향교예집(鄕校禮輯)』에서 발췌된 「동자례」는 「거향잡의」와 함께 그의 조카 김용(金涌)과 제자 황유일 등에 의해 필사된 이후, 1912년 전후로 후손 김도화와 김도연(金道淵) 등이 편집하여 간행했다. 『향교예집』은 명대 도희영(屠羲英)이 1567년 편찬한 것이다.
「동자례목록(童子禮目錄)」은 다음과 같다. 관즐(盥櫛), 정복(整服), 차수(叉手), 숙읍(肅揖), 배기(拜起), 궤(跪), 입(立), 좌(坐), 행주(行走), 언어(言語), 시청(視聽), 음식(飮食) 및 쇄소(灑掃), 응대(應對), 진퇴(進退), 온청(溫凊), 정성(定省), 출입(出入), 궤찬(饋饌), 시좌(侍坐), 수행(隨行), 해후(邂逅), 집역(執役) 및 수업(受業), 삭망(朔望), 신혼(晨昏), 거처(居處), 접견(接見), 독서(讀書), 사자(寫字) 등이다. 처음의 7가지 항목은 몸과 마음을 처음 검속하는 예를[以上初檢束身心之禮], 그다음 11가지 항목은 집에 들어가 부형을 섬기고 집을 나가 스승과 어른을 섬기는 데 통행하는 예를[以上入事父兄出事師長通行之禮], 마지막 7가지 항목은 서당에서 학업하는 예를 다룬 것이다[以上書堂肄業之禮].
퇴계학파에서 학교 교육의 규모와 방침 및 초학자들이 예절을 통해 유교적 사회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