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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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에, 조선 후기 문신 정창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문헌/고서
  • 간행 시기1748
  • 권수제만주선생문집
  • 권책수4권 2책
  • 소장처화성시 역사박물관(초계정씨 기증자료)
  • 저자정창주(鄭昌胄)
  • 저자 출생연도1606
  • 판본목판본
  • 표제만주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이연숙 (한국고전번역원)
  • 최종수정 2024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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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만주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창주의 시문집이다. 정창주의 차남 정원상(鄭元詳)이 집안에서 보관하던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백각(白閣) 강현(姜鋧)에게 서문을 청하는 등 『만주집』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도중에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정창주의 손자 정유(鄭維)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1748년에 강현의 서문을 붙여 『만주집』을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했다.

정의

1748년에, 조선 후기 문신 정창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저자 정창주(鄭昌胄, 1606~1664)는 자가 사흥(士興), 호가 만주(晩洲) · 만사(晩沙) · 묵헌(黙軒) · 죽헌(竹軒)이고, 본관이 초계(草溪)이다. 그는 북인 8문장가의 하나로 손꼽혔으며, 강백년(姜栢年) · 남훤(南翧) · 신유(申濡) · 박수현(朴守玄) 등과 교유하였다. 정창주는 1630년에 생원 · 진사시를 거쳐 1637년(인조 15)에 문과에 급제한 다음, 승문원 부정자, 사헌부 지평, 사헌부 · 사간원의 지제교와 연행 사절의 서장관을 지냈다. 1646년(인조 24)에 문과 급제자에게 10년마다 다시 치게 하는 중시에 급제하여 접위관에 임명되었다. 뛰어난 학문과 문장으로 당색이 다른 서인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1652년(효종 3)에 승지를 거쳐 통신사, 동지 연행 사절의 부사, 홍문관 부제학, 평양 · 담양 · 동래 등 외직을 두루 거치었다. 말년에는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퇴하여, 남양에서 강호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1664년(현종 5)에 생을 마쳤다.

서지사항

4권 2책. 목판본. 권수제 ; 만주선생문집 판심제 ; 만주집

편찬 및 간행 경위

정창주의 둘째 아들 정원상(鄭元詳, 1662~1717)이 집안에서 보관하던 초고(草稿)를 모으고 편집하여, 강현(姜鋧, 1650~1733)에게 서문을 받아 『만주집』을 간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정창주의 손자 정유(鄭維, 1691~1761)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1748년에 강현의 서문을 붙여 『만주집』을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구성과 내용

『만주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강현(姜鋧)이 1717년에 쓴 서(序)와 목록이 있다. 강현은 정창주가 교유했던 인물인 강백년(姜栢年)의 아들이다.

권1~2는 시(詩) 480수로 시의 체재〔詩體〕별로 편찬하였으며, 간혹 타인의 원운(元韻)이나 차운시(次韻詩)가 부기된 경우도 있다. 주로 신유(申濡) · 김남중(金南重) · 신득홍(申得洪) · 임선백(任善伯) · 임담(林墰) · 홍흥지(洪興祉) · 최계훈(崔繼勳) · 정석(鄭晳) · 강백년 등과 교유한 시가 많고, 화학루(化鶴樓) · 영남루(嶺南樓) · 부벽루(浮碧樓) · 백상루(百祥樓) · 몰운대(沒雲臺) 등등 저자가 근무했던 지역에 있었던 경치 좋은 곳과 그에 대한 소회를 읊은 시가 있다. 「강도회고(江都懷古)」는 병자호란 때의 비참했던 역사를 생각하며 울분을 토로 한 시이다. 「탕참(湯站)」 · 「태자하(太子河)」 등은 1642년에 저자가 서장관으로서 연경(燕京)에 갔을 때 지은 시이다. 「보의자운기춘호(步依字韻寄春湖)」는 춘호(春湖) 정석(鄭晳)과 수창하면서 지은 시로, 뒤에 정석의 차운시를 덧붙여서 적었다. 이 차운시의 주석에는 저자의 호인 ‘만주(晩洲)’가 강호로 은거하고자 하는 계획을 담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자탄생하율(元子誕生賀律)」은 1661년에 지은 것으로 훗날 숙종이 되는 원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이다.

권3은 시 74제와 부(賦) 3편, 표전(表箋) 10편이다. 목대흠(睦大欽) · 조문수(曺文秀) · 채유후(蔡裕後) · 신득홍을 애도하는 만사인평대군(麟坪大君) · 효종(孝宗)에 대한 만사가 있다.

권4는 조제(詔制) 4편, 잠명(箴銘) 6편, 송(頌) 4편, 전문(箋文) 9편, 소장(疏章) 2편, 서문(序文) 3편, 잡설(雜說) 7편이다. 「구언응지략진시폐소(求言應旨略陳時弊疏)」는 저자가 담양 군수를 지냈던 시기에 군의 삼정(三政)이 지닌 문제점들을 아뢰면서 개혁안을 제시한 글이다. 「개건향교겸서시종지의(改建鄕校兼序始終之義)」는 향교를 이건한 후에 훗날의 군자들이 유종(有終)의 성과를 거두길 바라며 지은 것이다. 그 외에도 저자가 1648년 봄에 접위관이 되어 동래(東萊)에 가서 해운대(海雲臺) · 강선대(降仙臺) 등을 보고 지은 「유선설(遊仙說)」 등이 있다.

권말에는 1748년에 손자 정유(鄭維)가 지은 기(記)가 있다.

현황

4권 2책으로 된 족본(足本: 빠졌거나 삭제한 부분이 없는 책) 목판본과 필사본 『만주집』이 경기도 화성시 역사박물관에 초계 정씨 기증 자료로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2권 1책의 영본(零本) 목판본이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1748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인 10대손 정재길(鄭齋吉)의 소장본을 저본으로 삼아,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속(續) 30집으로 영인하였다. 정재길의 소장본은 화성시 역사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원전

  • - 『善本 古書 해제집』 2(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본)

  • - 「『한국문집총간』 속집 해제」

  • 단행본

  • - 조기대, 「만주집해제(晩洲集解題)」(『만주집(晩洲集)』, 보고사, 1994)

주석

  • 주1

    : 조선 시대에, 왜국 사신이 올 때 영접하던 임시직 벼슬아치. 우리말샘

  • 주2

    : 중국 베이징(北京)의 옛 이름. 옛날 연나라의 도읍이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우리말샘

  • 주3

    : 시가(詩歌)를 서로 주고받으며 부름. 우리말샘

  • 주4

    : 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지은 시. 우리말샘

  • 주5

    : 아직 왕세자에 책봉되지 아니한 임금의 맏아들. 우리말샘

  • 주6

    : 한 질을 이루는 여러 권의 책 중에서 빠진 권이 있음. 또는 그런 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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