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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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충청북도 지방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의병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이 임박하자 단식하여 23일 만에 사망하였다.
박세화 (朴世和)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충청북도 지방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의병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이 임박하자 단식하여 23일 만에 사망하였다.
소모관(召募官)은 군사 또는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직이다. 민란 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해당 지방의 민병대를 임시로 지휘하던 소모사(召募使) 예하의 직책으로, 지역주민을 모으고 적정을 탐지하거나 전투에 참가하였다. 고종 대인 1894~1895년에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체포 및 처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는 의병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소모관 (召募官)
소모관(召募官)은 군사 또는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직이다. 민란 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해당 지방의 민병대를 임시로 지휘하던 소모사(召募使) 예하의 직책으로, 지역주민을 모으고 적정을 탐지하거나 전투에 참가하였다. 고종 대인 1894~1895년에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체포 및 처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는 의병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동의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일 내각이 무너졌고, 고종은 경운궁 환궁 전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아관파천 (俄館播遷)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동의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일 내각이 무너졌고, 고종은 경운궁 환궁 전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개항기 별기군 참령관, 군국기무처 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파.
우범선 (禹範善)
개항기 별기군 참령관, 군국기무처 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파.
서상렬은 을미사변 이후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이후 이필희 의진의 참고가 되었고, 이후 안승우 의진과 회합하여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관찰사 이남규·이중하가 이끄는 정부군과 전투하다가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에서 1896년 9월에 사망하였다.
서상렬 (徐相烈)
서상렬은 을미사변 이후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이후 이필희 의진의 참고가 되었고, 이후 안승우 의진과 회합하여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관찰사 이남규·이중하가 이끄는 정부군과 전투하다가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에서 1896년 9월에 사망하였다.
대한제국기 궁내부협판, 의정부찬정 등을 역임한 관료.
윤정구 (尹定求)
대한제국기 궁내부협판, 의정부찬정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때, 전라도관찰사, 궁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문신.
이경직 (李耕稙)
개항기 때, 전라도관찰사, 궁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문신.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을미사변·임오군란으로 순사(殉死)한 충신·열사를 제사지내던 제단. 공원.
장충단 (奬忠壇)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을미사변·임오군란으로 순사(殉死)한 충신·열사를 제사지내던 제단. 공원.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에 대한 반동으로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閔妃系) 친미·친러파의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사건.
춘생문사건 (春生門事件)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에 대한 반동으로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閔妃系) 친미·친러파의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사건.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홍주의진 (洪州義陣)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