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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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사는 조선 후기에 의승군이 방비하던 남한산성의 수사찰로서 정조 대에 전국의 사원을 관할하고 승풍을 규정하는 오규정소의 하나로 지정된 사찰이다. 1626년 남한산성이 수축되면서 개원사가 지어졌고, 남한산성 의승군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존속되었다.
개원사 (開元寺)
개원사는 조선 후기에 의승군이 방비하던 남한산성의 수사찰로서 정조 대에 전국의 사원을 관할하고 승풍을 규정하는 오규정소의 하나로 지정된 사찰이다. 1626년 남한산성이 수축되면서 개원사가 지어졌고, 남한산성 의승군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존속되었다.
고려 말과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 이후 조선 후기 최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 왕사를 역임한 고승에게 도총섭이라는 직책이 주어진 것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淸虛休靜)이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각각 8도 도총섭을 두었다.
도총섭 (都摠攝)
고려 말과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 이후 조선 후기 최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 왕사를 역임한 고승에게 도총섭이라는 직책이 주어진 것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淸虛休靜)이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각각 8도 도총섭을 두었다.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총섭(摠攝)은 임진왜란 때 의승군이 활동한 이후 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에 도총섭(都摠攝) 직책이 처음 사용되었으나, 총섭직은 임진왜란 때 승군의 통솔을 위해 도별로 두기 시작했다. 총섭은 승군이 배속된 산성, 사고 등에 공식적으로 임명되었다.
총섭 (摠攝)
총섭(摠攝)은 임진왜란 때 의승군이 활동한 이후 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에 도총섭(都摠攝) 직책이 처음 사용되었으나, 총섭직은 임진왜란 때 승군의 통솔을 위해 도별로 두기 시작했다. 총섭은 승군이 배속된 산성, 사고 등에 공식적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