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일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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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일리천전투 (一利川戰鬪)
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일리천전투에 참전한 장수.
명길 (明吉)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일리천전투에 참전한 장수.
고려전기 원윤, 원보, 대광 등을 역임한 무신.
박수경 (朴守卿)
고려전기 원윤, 원보, 대광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전기의 군사 조직.
보천군 (補天軍)
고려 전기의 군사 조직.
후백제의 멸망 당시 일리천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고려 태조에게 항복했던 후백제의 장수.
애술 (哀述)
후백제의 멸망 당시 일리천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고려 태조에게 항복했던 후백제의 장수.
고려 전기에,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이었던 일리천싸움에 참전했던 무신·공신.
연주 (連珠)
고려 전기에,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이었던 일리천싸움에 참전했던 무신·공신.
고려전기 원보, 대상 등을 역임한 장수.
왕렴 (王廉)
고려전기 원보, 대상 등을 역임한 장수.
고려전기 경북 구미의 일리천전투에 참전한 장수.
왕순식 (王順式)
고려전기 경북 구미의 일리천전투에 참전한 장수.
고려 전기의 군사 조직.
우천군 (祐天軍)
고려 전기의 군사 조직.
준량은 고려 전기 후백제와의 일리천전투에서 활약한 고려 태조의 부하 장군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936년(태조 19) 후삼국의 통일을 결정지은 일리천전투에서 보천군대장군 원윤으로서 보천군대장군 삼순 등과 함께 보군 1만 명을 거느리고 우군에 해당하는 우강(右綱)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여하였다.
준량 (俊良)
준량은 고려 전기 후백제와의 일리천전투에서 활약한 고려 태조의 부하 장군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936년(태조 19) 후삼국의 통일을 결정지은 일리천전투에서 보천군대장군 원윤으로서 보천군대장군 삼순 등과 함께 보군 1만 명을 거느리고 우군에 해당하는 우강(右綱)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여하였다.
후백제는 후삼국 시대에 견훤이 세운 나라이다. 견훤이 892년에 무진주에서 자립하였다가 900년에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후삼국의 주도권을 다투었던 나라이다. 견훤이 신라 왕경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시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하였으며, 공산동수에서 고려 태조에게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백제는 고창전투와 운주성전투에서 패하면서 고려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견훤은 아들 신검에게 쫓겨났다가 고려로 귀부하였고, 신검도 일리천전투에서 고려에 항복하였다. 후백제는 2대 45년간 존속하다가 936년에 멸망하였다.
후백제 (後百濟)
후백제는 후삼국 시대에 견훤이 세운 나라이다. 견훤이 892년에 무진주에서 자립하였다가 900년에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후삼국의 주도권을 다투었던 나라이다. 견훤이 신라 왕경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시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하였으며, 공산동수에서 고려 태조에게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백제는 고창전투와 운주성전투에서 패하면서 고려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견훤은 아들 신검에게 쫓겨났다가 고려로 귀부하였고, 신검도 일리천전투에서 고려에 항복하였다. 후백제는 2대 45년간 존속하다가 936년에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