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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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정조 연간에 군영으로 설치·운영한 장용영의 제원을 기록한 법제서.
장용영대절목 (壯勇營大節目)
조선후기 정조 연간에 군영으로 설치·운영한 장용영의 제원을 기록한 법제서.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수원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수원부 (水原府)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수원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세악은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 뒤쪽에서 연주하였다. 세악수는 풍류방 등에서 별도의 음악 활동을 하였고, 근대에 세악수가 장악원에 소속되고, 풍류방 음악이 정악으로 불리면서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세악이 실내악 규모의 악기 편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세피리를 사용하고 대금은 주로 저취와 평취 위주로 연주하며, 장구는 채로 변죽을 울리는 주법을 사용한다. 1980년대까지는 연주할 때 속옷으로 바지저고리를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입었다.
세악 (細樂)
세악은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 뒤쪽에서 연주하였다. 세악수는 풍류방 등에서 별도의 음악 활동을 하였고, 근대에 세악수가 장악원에 소속되고, 풍류방 음악이 정악으로 불리면서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세악이 실내악 규모의 악기 편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세피리를 사용하고 대금은 주로 저취와 평취 위주로 연주하며, 장구는 채로 변죽을 울리는 주법을 사용한다. 1980년대까지는 연주할 때 속옷으로 바지저고리를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입었다.
승호군은 조선 후기에 지역 할당 방식으로 충정된 훈련도감 등의 군사 및 그 선발 제도이다. 처음에는 군직과 녹봉을 지급하여 유능한 자들을 모집하려 하였다. 하지만 방침을 바꿔 각 도에 배정하여 지방관이 책임지고 능력있는 자들을 택하여 올려 보내 충정되도록 하였다.
승호군 (陞戶軍)
승호군은 조선 후기에 지역 할당 방식으로 충정된 훈련도감 등의 군사 및 그 선발 제도이다. 처음에는 군직과 녹봉을 지급하여 유능한 자들을 모집하려 하였다. 하지만 방침을 바꿔 각 도에 배정하여 지방관이 책임지고 능력있는 자들을 택하여 올려 보내 충정되도록 하였다.
「조선장안도형도」는 조선 후기 서울 도성의 구조와 행정구역을 반영하여 그린 필사본 지도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조가 1776년 창경궁 동쪽에 건립한 경모궁과 이현 동쪽의 장용영을 그려 넣어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도로와 하천, 교량 등을 간단하게 표현하였다. 지명은 종로를 중심으로 각 지역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기록하였다. 지도는 정교하지 않지만, 18세기 이후 지도의 대중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선장안도형도 (朝鮮長安圖形圖)
「조선장안도형도」는 조선 후기 서울 도성의 구조와 행정구역을 반영하여 그린 필사본 지도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조가 1776년 창경궁 동쪽에 건립한 경모궁과 이현 동쪽의 장용영을 그려 넣어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도로와 하천, 교량 등을 간단하게 표현하였다. 지명은 종로를 중심으로 각 지역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기록하였다. 지도는 정교하지 않지만, 18세기 이후 지도의 대중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리사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행차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총괄하던 관리이다. 조선 초에는 임시직이었으나 정조 대에는 국왕의 화성(華城) 행차 시에 행궁 및 일정을 담당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소(整理所)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상설 관서가 되었다. 이는 정조 사후 장용영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한편 동일한 명칭의 관직이 대한제국기인 1903년에 평양 풍경궁의 관리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관리로 칙임관을 임명하였다.
정리사 (整理使)
정리사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행차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총괄하던 관리이다. 조선 초에는 임시직이었으나 정조 대에는 국왕의 화성(華城) 행차 시에 행궁 및 일정을 담당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소(整理所)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상설 관서가 되었다. 이는 정조 사후 장용영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한편 동일한 명칭의 관직이 대한제국기인 1903년에 평양 풍경궁의 관리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관리로 칙임관을 임명하였다.
조선 정조 때의 국왕 친위병.
친군위 (親軍衛)
조선 정조 때의 국왕 친위병.
15세 이하의 어린이 세악수(細樂手).
아세악수 (兒細樂手)
15세 이하의 어린이 세악수(細樂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