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절풍"
검색결과 총 6건
상고시대 때 우리나라에서 착용하였던 옛 관모의 하나.
변 (弁)
상고시대 때 우리나라에서 착용하였던 옛 관모의 하나.
천마총 금제 관식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신라시대 무덤인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제 관식이다.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매의 얇은 금판을 나비날개 모양으로 오려 만든 관식으로서 관모의 앞부분에 꽂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형태는 의성 탑리에서도 출토되었다. 나비 모양 관식은 새날개 모양 관식에 비해 크기가 작은 점을 감안하면, 새 날개형 관식의 착용자보다 낮은 계급의 인물이 착용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문양은 신라에서는 금관총 금모관에 시문된 것이 가장 이른 예이며, 통일신라 초기까지 계속 전해지다가 이후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천마총 금제 관식 (天馬塚 金製 冠飾)
천마총 금제 관식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신라시대 무덤인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제 관식이다.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매의 얇은 금판을 나비날개 모양으로 오려 만든 관식으로서 관모의 앞부분에 꽂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형태는 의성 탑리에서도 출토되었다. 나비 모양 관식은 새날개 모양 관식에 비해 크기가 작은 점을 감안하면, 새 날개형 관식의 착용자보다 낮은 계급의 인물이 착용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문양은 신라에서는 금관총 금모관에 시문된 것이 가장 이른 예이며, 통일신라 초기까지 계속 전해지다가 이후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때의 남자 관모.
소골 (蘇骨)
고구려 때의 남자 관모.
책(幘)은 고구려의 고위 관리가 썼던 모자이다. 중국에서 도입되었지만 고구려의 책은 뒤[後]가 없어 중국의 책과 다른 형태를 띤다. 고분벽화를 통한 책의 형태 추정은 견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사료의 부족으로 한계가 있다. 관직의 고하에 따라 책과 절풍으로 나뉘던 제도가 6세기 절풍 하나로 통합되면서 책은 고구려에서 더 이상 착용되지 않았다.
책 (幘)
책(幘)은 고구려의 고위 관리가 썼던 모자이다. 중국에서 도입되었지만 고구려의 책은 뒤[後]가 없어 중국의 책과 다른 형태를 띤다. 고분벽화를 통한 책의 형태 추정은 견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사료의 부족으로 한계가 있다. 관직의 고하에 따라 책과 절풍으로 나뉘던 제도가 6세기 절풍 하나로 통합되면서 책은 고구려에서 더 이상 착용되지 않았다.
조우관은 조우(鳥羽), 즉 새깃을 꽂아 장식한 모자이다. 조우관의 착용 상황이나 새깃의 세부 모양은 서로 달랐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및 가야에서 모두 착용되었다. 모자에 조우를 장식했다는 것만으로도 신분을 드러낼 수 있었고 천연 새깃이 아닌, 화려한 귀금속으로 장식된 조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조우관 (鳥羽冠)
조우관은 조우(鳥羽), 즉 새깃을 꽂아 장식한 모자이다. 조우관의 착용 상황이나 새깃의 세부 모양은 서로 달랐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및 가야에서 모두 착용되었다. 모자에 조우를 장식했다는 것만으로도 신분을 드러낼 수 있었고 천연 새깃이 아닌, 화려한 귀금속으로 장식된 조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집안 우산하 41호분은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향 우산촌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상·연꽃무늬 관련 벽화무덤으로 횡혈식석실분이다. 건축 시대는 고구려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묘실은 기단 중앙부에 거대한 판석들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석실의 벽면에는 횡으로 35m의 간격을 두고 연꽃이 묘사되어 있고 장막이 내려진 가옥 중앙에 남자상이 그려져 있는데 묘주로 보인다. 이 무덤은 고구려 벽화고분 중 유일한 석분으로, 고구려에서는 적석묘에 묘실을 만들면서부터 묘실 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귀중한 유적 자료이다.
집안 우산하 41호분 (集安 禹山下 四十一號墳)
집안 우산하 41호분은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향 우산촌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상·연꽃무늬 관련 벽화무덤으로 횡혈식석실분이다. 건축 시대는 고구려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묘실은 기단 중앙부에 거대한 판석들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석실의 벽면에는 횡으로 35m의 간격을 두고 연꽃이 묘사되어 있고 장막이 내려진 가옥 중앙에 남자상이 그려져 있는데 묘주로 보인다. 이 무덤은 고구려 벽화고분 중 유일한 석분으로, 고구려에서는 적석묘에 묘실을 만들면서부터 묘실 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귀중한 유적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