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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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명 초상」은 조문명이 1728년(영조 4) 3월에 일어난 무신란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녹훈되자 녹훈도감에서 조문명에게 그려 준 초상화이다. 조문명은 표범 가죽이 깔린 교의에 앉아 공수를 하고 발은 족좌대에 둔 채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문명 초상 (趙文命 肖像)
「조문명 초상」은 조문명이 1728년(영조 4) 3월에 일어난 무신란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녹훈되자 녹훈도감에서 조문명에게 그려 준 초상화이다. 조문명은 표범 가죽이 깔린 교의에 앉아 공수를 하고 발은 족좌대에 둔 채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안주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강필신 (姜必愼)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안주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권일형은 숙종~영조대에 의주 부윤, 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와 정희량 등이 밀풍군 이탄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오명항을 따라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이후 의주 부윤, 형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권일형 (權一衡)
권일형은 숙종~영조대에 의주 부윤, 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와 정희량 등이 밀풍군 이탄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오명항을 따라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이후 의주 부윤, 형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조선 후기에, 선산부사, 곡산부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박필건 (朴弼健)
조선 후기에, 선산부사, 곡산부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석명은 조선 후기에 대사헌,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소론 완론으로서 정국 변화에 따라 정치적 부침이 다소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큰 문제 없이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탕평정국을 거치면서 벼슬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으며, 기로소에 들었다.
조석명 (趙錫命)
조석명은 조선 후기에 대사헌,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소론 완론으로서 정국 변화에 따라 정치적 부침이 다소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큰 문제 없이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탕평정국을 거치면서 벼슬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으며, 기로소에 들었다.
『학암집(鶴巖集)』은 조선 후기 문신 조문명(趙文命)의 시문집이다. 다양한 종류의 필사본이 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작자의 문학 세계뿐만 아니라 당시 탕평(蕩平) 정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학암집 (鶴巖集)
『학암집(鶴巖集)』은 조선 후기 문신 조문명(趙文命)의 시문집이다. 다양한 종류의 필사본이 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작자의 문학 세계뿐만 아니라 당시 탕평(蕩平) 정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효순왕후는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이다. 본관은 풍양, 아버지는 풍양 조씨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27년(영조 3) 13세에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고 1751년(영조 27)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었다.
효순왕후 (孝純王后)
효순왕후는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이다. 본관은 풍양, 아버지는 풍양 조씨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27년(영조 3) 13세에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고 1751년(영조 27)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었다.
탕평파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 연간에 탕평을 주도하던 집권 세력이다. 탕당이라고도 한다. 영조는 즉위 초에 조문명과 송인명 등을 발탁하여 소론을 중심으로 탕평을 추진하였다. 점차 노론 내에서 탕평에 동조하는 홍치중과 김재로 등을 규합하였다. 탕평파는 국왕 주도의 탕평을 보좌하며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처리하였다. 1740년에 임인옥사를 소론의 무고로 판정하는 경신처분이 내려졌고, 1741년에 노론의 명분을 인정하는 신유대훈이 반포되었다. 탕평책으로 붕당 체제가 와해되고 정국이 안정되면서 균역법 등 개혁적 법안이 마련되었다.
탕평파 (蕩平派)
탕평파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 연간에 탕평을 주도하던 집권 세력이다. 탕당이라고도 한다. 영조는 즉위 초에 조문명과 송인명 등을 발탁하여 소론을 중심으로 탕평을 추진하였다. 점차 노론 내에서 탕평에 동조하는 홍치중과 김재로 등을 규합하였다. 탕평파는 국왕 주도의 탕평을 보좌하며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처리하였다. 1740년에 임인옥사를 소론의 무고로 판정하는 경신처분이 내려졌고, 1741년에 노론의 명분을 인정하는 신유대훈이 반포되었다. 탕평책으로 붕당 체제가 와해되고 정국이 안정되면서 균역법 등 개혁적 법안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