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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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농군학교는 1962년에 김용기가 설립한 농민 교육과 사회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교육 기관이다. 1973년에 강원도 원주에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설립되었다. 1981년에 농군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영농 후계자 양성을 전문화하였고 이후 교육 대상을 확대하여 일반 사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부터 해외 사업에 나섰으며 2016년에 유엔 공보국(DPI) 협력 엔지오(NGO) 지위를 획득했다. 2022년에 제1 가나안농군학교의 폐교로,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교명을 가나안농군학교로 바꾸며 명맥을 잇고 있다.
가나안농군학교 (Canaan農軍學敎)
가나안농군학교는 1962년에 김용기가 설립한 농민 교육과 사회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교육 기관이다. 1973년에 강원도 원주에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설립되었다. 1981년에 농군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영농 후계자 양성을 전문화하였고 이후 교육 대상을 확대하여 일반 사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부터 해외 사업에 나섰으며 2016년에 유엔 공보국(DPI) 협력 엔지오(NGO) 지위를 획득했다. 2022년에 제1 가나안농군학교의 폐교로,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교명을 가나안농군학교로 바꾸며 명맥을 잇고 있다.
박광호는 개항기 충청도 지방을 대표하여 교조신원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인이다. 1871년 3월 영해에서 최초로 교조신원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교조의 신원과 동학 포교에 대한 공인을 요구하는 공주와 삼례집회가 이어졌다. 동학지도부에서는 서울 복합상소를 결정하였고, 박광호를 소수(疏首)로 임명하였다. 박광호 등 40여 명은 1893년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들로 꾸미고 상경하여 광화문 앞에서 3일 낮밤을 절규하며 상소하였다. 그러나 동학교도에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고, 교조신원운동의 방향은 크게 전환되어 ‘척왜양창의’를 기치로 내건 보은집회가 일어났다.
박광호 (朴光浩)
박광호는 개항기 충청도 지방을 대표하여 교조신원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인이다. 1871년 3월 영해에서 최초로 교조신원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교조의 신원과 동학 포교에 대한 공인을 요구하는 공주와 삼례집회가 이어졌다. 동학지도부에서는 서울 복합상소를 결정하였고, 박광호를 소수(疏首)로 임명하였다. 박광호 등 40여 명은 1893년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들로 꾸미고 상경하여 광화문 앞에서 3일 낮밤을 절규하며 상소하였다. 그러나 동학교도에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고, 교조신원운동의 방향은 크게 전환되어 ‘척왜양창의’를 기치로 내건 보은집회가 일어났다.
『병든 서울』은 1946년 7월 오장환의 시 「8·15의 노래」, 「병든 서울」, 「지도자」 등을 실어 정음사에서 간행한 시집이다. 수록 작품들은 8·15 직후 격변하는 혼란된 상황 의식을 토로하거나, 좌경적 이념과 혁명 사상을 바탕으로 투쟁의 구호를 외치는 특성을 지닌다. 이와 함께 황폐한 현실에서 병든 몸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명력과 윤리성 충만한 육체를 추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를 통해 오염되고 파편화된 세계를 비판함과 동시에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을 약속하는 목소리를 실어냈다.
병든 서울 (病든 서울)
『병든 서울』은 1946년 7월 오장환의 시 「8·15의 노래」, 「병든 서울」, 「지도자」 등을 실어 정음사에서 간행한 시집이다. 수록 작품들은 8·15 직후 격변하는 혼란된 상황 의식을 토로하거나, 좌경적 이념과 혁명 사상을 바탕으로 투쟁의 구호를 외치는 특성을 지닌다. 이와 함께 황폐한 현실에서 병든 몸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명력과 윤리성 충만한 육체를 추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를 통해 오염되고 파편화된 세계를 비판함과 동시에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을 약속하는 목소리를 실어냈다.
일제강점기 대종교 제2대 교주.
김교헌 (金敎獻)
일제강점기 대종교 제2대 교주.
낙양군관학교는 1933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에 설립되었던 국민정부 군관학교이다. 1932년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투탄의거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장개석과 김구는 낙양군관학교 내에 한인훈련반이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모집한 한국인 99명이 입학하여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를 편성하였다. 중국식 훈련이 아니라 한국인 교관이 학생의 정치·군사훈련을 담당하였다. 일본 영사의 해산 요구로 1935년 1기생 65명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졸업생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독립군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낙양군관학교 (洛陽軍官學校)
낙양군관학교는 1933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에 설립되었던 국민정부 군관학교이다. 1932년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투탄의거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장개석과 김구는 낙양군관학교 내에 한인훈련반이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모집한 한국인 99명이 입학하여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를 편성하였다. 중국식 훈련이 아니라 한국인 교관이 학생의 정치·군사훈련을 담당하였다. 일본 영사의 해산 요구로 1935년 1기생 65명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졸업생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독립군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조선 후기에, 박규수, 오경석과 함께 초기 개화파의 스승이 되어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화당 형성에 영향을 준 개화사상가·학자.
유홍기 (劉鴻基)
조선 후기에, 박규수, 오경석과 함께 초기 개화파의 스승이 되어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화당 형성에 영향을 준 개화사상가·학자.
대한제국기 성도주를 역임한 천도교인.
손천민 (孫天民)
대한제국기 성도주를 역임한 천도교인.
조봉암은 해방 이후 농림부장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9년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강화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간 투옥되었다. 일본 유학 시절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의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참여 등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
조봉암 (曺奉岩)
조봉암은 해방 이후 농림부장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9년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강화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간 투옥되었다. 일본 유학 시절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의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참여 등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
남북연석회의는 1948년 4월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평양에서 개최한 정치회담이다. 해방 후 미국·소련, 남·북, 좌·우의 대립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이 좌절되어가자 중도파 정치인들이 남북지도자 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김구·김규식 등 남측 인사가 남북요인회담을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제안하자 북측에서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역제안하여 남북연석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연석회의에서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합의하고 이후 단선단정 반대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실질적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남북연석회의 (南北連席會議)
남북연석회의는 1948년 4월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평양에서 개최한 정치회담이다. 해방 후 미국·소련, 남·북, 좌·우의 대립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이 좌절되어가자 중도파 정치인들이 남북지도자 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김구·김규식 등 남측 인사가 남북요인회담을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제안하자 북측에서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역제안하여 남북연석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연석회의에서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합의하고 이후 단선단정 반대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실질적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조선전기 한성소윤, 중훈검교 첨지내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맹인점복자.
지화 (池和)
조선전기 한성소윤, 중훈검교 첨지내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맹인점복자.
해방 이후 KBS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연주자로 활동한 음악인. 트럼본, 비올라연주자.
이재옥 (李在玉)
해방 이후 KBS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연주자로 활동한 음악인. 트럼본, 비올라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