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선"
검색결과 총 21건
조선시대 단오날 임금이 재상과 시종들에게 하사한 부채.
단오선 (端午扇)
조선시대 단오날 임금이 재상과 시종들에게 하사한 부채.
일제강점기 때, 조선혁명당 군사령부참모장, 조선민족혁명당 국민부장, 한국광복군 총사령참모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학규 (金學奎)
일제강점기 때, 조선혁명당 군사령부참모장, 조선민족혁명당 국민부장, 한국광복군 총사령참모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한청년당 대표,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목사·독립운동가.
송병조 (宋秉祚)
일제강점기 때, 신한청년당 대표,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목사·독립운동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는 1939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아나키즘 계열 청년들이 결성한 항일무장조직이다. 결성 직후 충칭을 떠나 시안[西安]에서 한국청년훈련반(韓國靑年訓練班)을 설치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항일전투에 참여하고, 초모(招募) 공작활동을 벌였다. 1941년 1월 1일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광복군 제5지대로 재편되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韓國靑年戰地工作隊)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는 1939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아나키즘 계열 청년들이 결성한 항일무장조직이다. 결성 직후 충칭을 떠나 시안[西安]에서 한국청년훈련반(韓國靑年訓練班)을 설치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항일전투에 참여하고, 초모(招募) 공작활동을 벌였다. 1941년 1월 1일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광복군 제5지대로 재편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로 활동하며 일본군 내의 한국인 병사에 대한 초모공작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엄기선 (嚴基善)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로 활동하며 일본군 내의 한국인 병사에 대한 초모공작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평안북도 자성군 증강면에 이르는 일반 국도.
국도 5호선 (國道 5號線)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평안북도 자성군 증강면에 이르는 일반 국도.
고려 전기에, 본주의 영군장군을 역임한 호족.
견금 (堅金)
고려 전기에, 본주의 영군장군을 역임한 호족.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동녕의 생가터.
이동녕 선생 생가지 (李東寧 先生 生家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동녕의 생가터.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군무부 군사특파단 청년공작원,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노복선 (盧福善)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군무부 군사특파단 청년공작원,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위덕대학교 (威德大學校)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공진원 (公震遠)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조선시대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종4품 관직.
익선 (翊善)
조선시대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종4품 관직.
경강선(京江船)은 조세 및 물류 운송과 군사 방어를 목적으로 한강에 드나들던 선박을 통칭하는 말이다. 선초부터 경강의 여러 진(津)에 선박을 비치하고 관원을 두어 관리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각 군문에서 한강, 노량, 양화, 송파 등에 군사용 선박을 비치해 두고 별장이 이를 관리하도록 했다. 한편 선초부터 세곡 운송의 일부를 민간용 선박에 맡기면서 경강 일대에 세곡 및 각종 물산을 수송하는 상업용 선박이 드나들었다. 대동법 시행 이후 경강상인들의 사선임운이 확대되고 한강 일대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강선의 왕래 또한 빈번해졌다.
경강선 (京江船)
경강선(京江船)은 조세 및 물류 운송과 군사 방어를 목적으로 한강에 드나들던 선박을 통칭하는 말이다. 선초부터 경강의 여러 진(津)에 선박을 비치하고 관원을 두어 관리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각 군문에서 한강, 노량, 양화, 송파 등에 군사용 선박을 비치해 두고 별장이 이를 관리하도록 했다. 한편 선초부터 세곡 운송의 일부를 민간용 선박에 맡기면서 경강 일대에 세곡 및 각종 물산을 수송하는 상업용 선박이 드나들었다. 대동법 시행 이후 경강상인들의 사선임운이 확대되고 한강 일대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강선의 왕래 또한 빈번해졌다.
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송정헌 (宋靜軒)
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박신애는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애국부인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다. 교사 출신 엘리트 여성으로,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하와이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중국 내 독립운동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였다. 박신애도 애국부인회 대표로 한국광복진선 구축에 참여하였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신애 (朴信愛)
박신애는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애국부인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다. 교사 출신 엘리트 여성으로,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하와이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중국 내 독립운동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였다. 박신애도 애국부인회 대표로 한국광복진선 구축에 참여하였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희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중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푸양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희영 (吳姬英)
오희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중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푸양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희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연극, 노래,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중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그 외,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오희옥 (吳姬玉)
오희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연극, 노래,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중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그 외,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영준 (朴英俊)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민영숙 (閔泳淑)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순호 (申順浩)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