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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는 조선전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사망했다.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20세에 하산해 유학에 전념했다. 이후 총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다. 1568년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고,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이 (李珥)
이이는 조선전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사망했다.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20세에 하산해 유학에 전념했다. 이후 총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다. 1568년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고,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조선책략』은 청나라 황준헌이 개항기 한국이 당면한 국제적 지위를 논하고 그 대외책을 시사한 역사서이다.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홍집이 청국의 주일공사관 참찬관 황준헌으로부터 기증받아 고종에게 바친 책이다.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러시아에 대한 방어책으로 친중국·결일본·연미국 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청국의 대한간섭정책을 지원하고 일본의 대한침투전략을 시인하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지만 조선의 문호 개방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유림을 중심으로 위정척사운동이 강하게 일어나 개화파와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조선책략 (朝鮮策略)
『조선책략』은 청나라 황준헌이 개항기 한국이 당면한 국제적 지위를 논하고 그 대외책을 시사한 역사서이다.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홍집이 청국의 주일공사관 참찬관 황준헌으로부터 기증받아 고종에게 바친 책이다.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러시아에 대한 방어책으로 친중국·결일본·연미국 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청국의 대한간섭정책을 지원하고 일본의 대한침투전략을 시인하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지만 조선의 문호 개방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유림을 중심으로 위정척사운동이 강하게 일어나 개화파와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제너럴셔먼호사건은 1866년(고종 3)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군민의 화공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자자하던 때 정체불명의 이양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교역을 강요했다. 미국 상선 셔먼호였다. 조선관리가 통상교역은 국법에 위배되며 대동강 항행은 영토침략·주권침해 행위임을 통보하며 강력 만류했으나 만경대까지 올라왔다. 갑자기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운항이 어려워지자 난폭하게 대포까지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평양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몰살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GeneralSherman號 事件)
제너럴셔먼호사건은 1866년(고종 3)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군민의 화공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자자하던 때 정체불명의 이양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교역을 강요했다. 미국 상선 셔먼호였다. 조선관리가 통상교역은 국법에 위배되며 대동강 항행은 영토침략·주권침해 행위임을 통보하며 강력 만류했으나 만경대까지 올라왔다. 갑자기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운항이 어려워지자 난폭하게 대포까지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평양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몰살했다.
안중근이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논책.
동양평화론 (東洋平和論)
안중근이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논책.
무령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1∼523년이며, 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자 그를 이어 즉위했다. 북방정책에 몰두하여 고구려·말갈 등의 침략을 무찌르고 대비책을 강화했으며, 중국 남조의 양과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지배귀족들의 전횡을 막고자 좌평제를 폐지하고 22부사제로 행정체제를 바꾸었고,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는 한편 수리시설 정비·확충과 호적체계 정비로 안정적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평가된다.
무령왕 (武寧王)
무령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1∼523년이며, 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자 그를 이어 즉위했다. 북방정책에 몰두하여 고구려·말갈 등의 침략을 무찌르고 대비책을 강화했으며, 중국 남조의 양과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지배귀족들의 전횡을 막고자 좌평제를 폐지하고 22부사제로 행정체제를 바꾸었고,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는 한편 수리시설 정비·확충과 호적체계 정비로 안정적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평가된다.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점자 (點字)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조웅전」은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주인공이 초기 고난을 겪고 조력자를 만나 영웅성을 갖춘 후 위기에 처한 국가와 임금을 구하여 높은 벼슬을 얻어 가문의 번영을 이루는 서사를 갖춘 영웅소설이다. 「조웅전」은 영웅적 인물이 그러하듯 초기 고난을 겪은 인물이 영웅적 능력을 완성하고, 국가의 흥망을 두고 군담이 펼쳐진다. 개인의 영웅적 투쟁과 지향 가치 획득보다는 천명의 실현을 가치에 둔 작품이다.
조웅전 (趙雄傳)
「조웅전」은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주인공이 초기 고난을 겪고 조력자를 만나 영웅성을 갖춘 후 위기에 처한 국가와 임금을 구하여 높은 벼슬을 얻어 가문의 번영을 이루는 서사를 갖춘 영웅소설이다. 「조웅전」은 영웅적 인물이 그러하듯 초기 고난을 겪은 인물이 영웅적 능력을 완성하고, 국가의 흥망을 두고 군담이 펼쳐진다. 개인의 영웅적 투쟁과 지향 가치 획득보다는 천명의 실현을 가치에 둔 작품이다.
기정진은 조선 후기에「정자설」, ?이통설?, 『노사집』, 『답문유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이다. 1798년(정조 22)에 태어나 1879년(고종 16) 사망했다. 이황·이이 이후, 독자적 궁리와 사색을 통해 이일분수의 이론에 의한 이(理)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우주 현상과 인간 심성 내지 도덕의 문제를 가치상 우위에 있는 이의 작용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또한 인물성동이의 문제도 이의 완전·불완전으로 설명하여 주리 또는 주기의 심성론과 인물성동이론을 종합하였다. 1927년 고산서원에 조성가 등 문인 6인과 함께 봉안되었다.
기정진 (奇正鎭)
기정진은 조선 후기에「정자설」, ?이통설?, 『노사집』, 『답문유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이다. 1798년(정조 22)에 태어나 1879년(고종 16) 사망했다. 이황·이이 이후, 독자적 궁리와 사색을 통해 이일분수의 이론에 의한 이(理)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우주 현상과 인간 심성 내지 도덕의 문제를 가치상 우위에 있는 이의 작용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또한 인물성동이의 문제도 이의 완전·불완전으로 설명하여 주리 또는 주기의 심성론과 인물성동이론을 종합하였다. 1927년 고산서원에 조성가 등 문인 6인과 함께 봉안되었다.
고려시대 불법(佛法)을 배우는 사람들을 위하여 설치한 일종의 장학재단.
광학보 (廣學寶)
고려시대 불법(佛法)을 배우는 사람들을 위하여 설치한 일종의 장학재단.
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왕인 (王仁)
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봉사십조(封事十條)는 1196년(명종 26)에 무인 집정자 최충헌이 정변의 정당성 및 정책 방향을 담아 국왕에게 올린 시무책이다.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토지, 조세, 관직자, 향리 등과 관련하여 10개 항의 폐정 개혁안을 제시한 것으로, 정변의 정당화 및 향후 정책 방향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무신 정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봉사십조 (封事十條)
봉사십조(封事十條)는 1196년(명종 26)에 무인 집정자 최충헌이 정변의 정당성 및 정책 방향을 담아 국왕에게 올린 시무책이다.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토지, 조세, 관직자, 향리 등과 관련하여 10개 항의 폐정 개혁안을 제시한 것으로, 정변의 정당화 및 향후 정책 방향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무신 정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최승로 (崔承老)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이가환은 영조~정조 대에 성균관 대사성, 승문원 정자, 예조정랑, 사간원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남인 채제공에 의해 발탁되고, 정조로부터 학자로서 인정을 받아 대사간·대사성까지 올랐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공격을 받고 신유박해 때에 심문을 받다가 죽었다.
이가환 (李家煥)
이가환은 영조~정조 대에 성균관 대사성, 승문원 정자, 예조정랑, 사간원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남인 채제공에 의해 발탁되고, 정조로부터 학자로서 인정을 받아 대사간·대사성까지 올랐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공격을 받고 신유박해 때에 심문을 받다가 죽었다.
부여와 고구려시대의 부족장(部族長).
대가 (大加)
부여와 고구려시대의 부족장(部族長).
삼국시대 백제학자 고흥이 제13대 근초고왕 때 편찬한 역사서.
서기 (書記)
삼국시대 백제학자 고흥이 제13대 근초고왕 때 편찬한 역사서.
조선전기 의관 전순의가 음식의 다양한 조리법에 관해 기록한 조리서.
산가요록 (山家要錄)
조선전기 의관 전순의가 음식의 다양한 조리법에 관해 기록한 조리서.
산성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험준한 산성으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성을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를 체결한 이후로도 몽고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지방관 통솔 하에 입보하였는데 산성방호별감, 산성겸권농별감 등이 파견되어 입보민을 지휘 통제하였다. 지역 방어 방식이 개별적 군현의 치소성에서 복수의 군현을 포괄하는 광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성입보책 (山城入保策)
산성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험준한 산성으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성을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를 체결한 이후로도 몽고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지방관 통솔 하에 입보하였는데 산성방호별감, 산성겸권농별감 등이 파견되어 입보민을 지휘 통제하였다. 지역 방어 방식이 개별적 군현의 치소성에서 복수의 군현을 포괄하는 광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시파 (時派)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층층나무과 층층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말채나무
층층나무과 층층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둔전병은 평상시에는 둔전 경작 및 군수와 군량을 공급하고 유사시에는 전투에 동원되는 병사이다. 병농일치의 이념에 입각하여 둔전을 기반으로 군사적 업무에 종사하는 병종을 통칭한다. 고려시대 양계에 주진둔전군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각급 군사기관에 예속되어 군역을 매개로 둔전 경작에 동원되었고, 응모군, 포수, 살수, 초병, 승병 등과 같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병종은 둔전 경작자 가운데 선발하여 군사력에 충당된 아병(牙兵) 또는 둔아병(屯牙兵)이다. 국역체제가 해체되고 재정운영 방식이 변화하면서 형식만 남게 되었다.
둔전병 (屯田兵)
둔전병은 평상시에는 둔전 경작 및 군수와 군량을 공급하고 유사시에는 전투에 동원되는 병사이다. 병농일치의 이념에 입각하여 둔전을 기반으로 군사적 업무에 종사하는 병종을 통칭한다. 고려시대 양계에 주진둔전군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각급 군사기관에 예속되어 군역을 매개로 둔전 경작에 동원되었고, 응모군, 포수, 살수, 초병, 승병 등과 같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병종은 둔전 경작자 가운데 선발하여 군사력에 충당된 아병(牙兵) 또는 둔아병(屯牙兵)이다. 국역체제가 해체되고 재정운영 방식이 변화하면서 형식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