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천은사"
검색결과 총 11건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인도 승려 덕운이 창건한 사찰.
지리산 천은사 (智異山 泉隱寺)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인도 승려 덕운이 창건한 사찰.
「천은사 영산회상도」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본래 천은사 팔상전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1715년에 제작되었다. 하단의 화기가 잘려 나가고 화면 상태도 좋지 않아 2022년 긴급 보존 처리가 실시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현재 크기는 세로 170.3㎝, 가로 199.9㎝이다.
천은사 영산회상도 (泉隱寺 靈山會上圖)
「천은사 영산회상도」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본래 천은사 팔상전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1715년에 제작되었다. 하단의 화기가 잘려 나가고 화면 상태도 좋지 않아 2022년 긴급 보존 처리가 실시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현재 크기는 세로 170.3㎝, 가로 199.9㎝이다.
천은사 「칠성도」는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천은사에 봉안되었던 조선 후기 불화이다. 1749년 제작되었으며, 현재 소장처는 미상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세로 105㎝, 가로 136㎝이다. 북극성과 북두칠성 등 밤하늘의 별을 불격화하여 그렸다. 북극성은 중앙의 치성광불로 형상화하였으며, 북두칠성은 화면 상단에 칠여래로 나타내었다. 그 주위와 화면 아래쪽에는 28수를 비롯한 여러 별을 권속으로 배치하였다.
천은사 칠성도 (泉隱寺 七星圖)
천은사 「칠성도」는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천은사에 봉안되었던 조선 후기 불화이다. 1749년 제작되었으며, 현재 소장처는 미상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세로 105㎝, 가로 136㎝이다. 북극성과 북두칠성 등 밤하늘의 별을 불격화하여 그렸다. 북극성은 중앙의 치성광불로 형상화하였으며, 북두칠성은 화면 상단에 칠여래로 나타내었다. 그 주위와 화면 아래쪽에는 28수를 비롯한 여러 별을 권속으로 배치하였다.
구례 천은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求禮 泉隱寺 木造觀世音菩薩坐像 및 大勢至菩薩坐像)은 전라남도 구례군 천은사 극락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보살좌상이다. 극락전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아미타삼존불좌상의 두 협시보살로 보이는데, 현재 주존인 본존불상은 전하지 않는다. 1614년(광해군 6)에 현진을 비롯한 조각승 5명이 함께 조성하였다. 전형적인 현진의 작풍이 확립되기 이전의 초기작으로, 현진의 조각 양식과 조선 후기 불교미술사 및 조각승 계보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구례 천은사 목조 관세음보살 좌상 및 대세지보살 좌상 (求禮 泉隱寺 木造 觀世音菩薩 坐像 및 大勢至菩薩 坐像)
구례 천은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求禮 泉隱寺 木造觀世音菩薩坐像 및 大勢至菩薩坐像)은 전라남도 구례군 천은사 극락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보살좌상이다. 극락전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아미타삼존불좌상의 두 협시보살로 보이는데, 현재 주존인 본존불상은 전하지 않는다. 1614년(광해군 6)에 현진을 비롯한 조각승 5명이 함께 조성하였다. 전형적인 현진의 작풍이 확립되기 이전의 초기작으로, 현진의 조각 양식과 조선 후기 불교미술사 및 조각승 계보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성우 (惺牛)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의겸은 조선 후기 「청곡사괘불」, 「운흥사괘불」, 「다보사괘불」 등을 그린 승려이다. 숙종조부터 영조조까지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천은사 등 많은 사찰에 영산회상도·팔상도·나한도·감로왕도 등 다양한 주제의 불화를 그렸다. 특히 경상남도 고성 운흥사에 머물면서 그의 집단을 형성하였다. 그의 초본이 여러 사찰의 불화 조성에 사용되었다. 문하생으로 긍척·비현·쾌윤·사신 등의 화사들이 배출되어 그의 화풍을 이어나갔다. 현재 남아 있는 의겸의 작품은 약 25여 점으로 「개암사괘불도」 등이 유명하다.
의겸 (義謙)
의겸은 조선 후기 「청곡사괘불」, 「운흥사괘불」, 「다보사괘불」 등을 그린 승려이다. 숙종조부터 영조조까지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천은사 등 많은 사찰에 영산회상도·팔상도·나한도·감로왕도 등 다양한 주제의 불화를 그렸다. 특히 경상남도 고성 운흥사에 머물면서 그의 집단을 형성하였다. 그의 초본이 여러 사찰의 불화 조성에 사용되었다. 문하생으로 긍척·비현·쾌윤·사신 등의 화사들이 배출되어 그의 화풍을 이어나갔다. 현재 남아 있는 의겸의 작품은 약 25여 점으로 「개암사괘불도」 등이 유명하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승기신론사번취묘」, 『화엄경개종결의』 등을 저술한 승려.
연기 (緣起)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승기신론사번취묘」, 『화엄경개종결의』 등을 저술한 승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청심사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후기 목조여래좌상이다. 도금이 거의 벗겨져 검은 옻칠이 전면에 걸쳐 드러나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는 반구형의 머리에 흙으로 별도 제작한 나발을 촘촘히 부착하였다. 동그란 얼굴은 턱이 짧고 가운데를 약간 뾰족하게 처리하여 살이 오른 앳된 소년의 형상이다. 불의(佛衣)는 이중으로 걸쳤으며, 양쪽 무릎 앞에는 몇 가닥의 사선 주름이 펼쳐져 있다.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84년)이나 구례 천은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93년), 일본 고려미술관 목조아미타삼존불감(1689년) 등과 양식적으로 상통한다.
하동 청심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河東 淸心寺 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청심사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후기 목조여래좌상이다. 도금이 거의 벗겨져 검은 옻칠이 전면에 걸쳐 드러나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는 반구형의 머리에 흙으로 별도 제작한 나발을 촘촘히 부착하였다. 동그란 얼굴은 턱이 짧고 가운데를 약간 뾰족하게 처리하여 살이 오른 앳된 소년의 형상이다. 불의(佛衣)는 이중으로 걸쳤으며, 양쪽 무릎 앞에는 몇 가닥의 사선 주름이 펼쳐져 있다.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84년)이나 구례 천은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93년), 일본 고려미술관 목조아미타삼존불감(1689년) 등과 양식적으로 상통한다.
서울 지장암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시대 목조비로자나불상.
서울 지장암 목조 비로자나불 좌상 (서울 地藏庵 木造 毘盧遮▽那佛 坐像)
서울 지장암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시대 목조비로자나불상.
663년(문무왕 3) 남산신성(南山新城)에 설치한 창고.
장창 (長倉)
663년(문무왕 3) 남산신성(南山新城)에 설치한 창고.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봉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신중도.
고흥 봉래사 신중탱화 (高興 蓬來寺 神衆幀▽畫)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봉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신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