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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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한글 편지.
인선왕후 언간 (仁宣王后 諺簡)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한글 편지.
조선 후기에 위백규(魏伯珪)가 지은 시조.
농가 (農歌)
조선 후기에 위백규(魏伯珪)가 지은 시조.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명필인 박태유가 여러 수의 당시를 쓴 글씨와 회소 「자서첩」의 일부를 임서(臨書)한 것을 모아놓은 서첩이다. 해서, 행초, 초서, 예서, 행서 등 다양한 서체로 9수의 당시와 22개의 단구가 쓰여 있다. 글씨 학습을 위한 법서 제작을 목적으로 쓴 것으로 여겨진다. 당나라 성가 회소가 쓴 「자서첩」의 글씨를 따라 쓴 것이 남아 있는 매우 드문 자료이다. 박태유의 다양한 서체가 실려 있고 글씨의 크기도 다양해 그의 글씨의 면모를 한 눈에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 (朴泰維 筆蹟 白石遺墨帖)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명필인 박태유가 여러 수의 당시를 쓴 글씨와 회소 「자서첩」의 일부를 임서(臨書)한 것을 모아놓은 서첩이다. 해서, 행초, 초서, 예서, 행서 등 다양한 서체로 9수의 당시와 22개의 단구가 쓰여 있다. 글씨 학습을 위한 법서 제작을 목적으로 쓴 것으로 여겨진다. 당나라 성가 회소가 쓴 「자서첩」의 글씨를 따라 쓴 것이 남아 있는 매우 드문 자료이다. 박태유의 다양한 서체가 실려 있고 글씨의 크기도 다양해 그의 글씨의 면모를 한 눈에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87년(정조 11) 위백규(魏伯珪)가 지은 가사.
자회가 (自悔歌)
1787년(정조 11) 위백규(魏伯珪)가 지은 가사.
1690년(숙종 16)경에 노명선(盧明善)이 지은 기행가사.
천풍가 (天風歌)
1690년(숙종 16)경에 노명선(盧明善)이 지은 기행가사.
1898년김기호(金起浩)가 지은 천주가사.
성당가 (聖堂歌)
1898년김기호(金起浩)가 지은 천주가사.
관첩은 고려시대, 관아에서 동급 이하의 관아 또는 개인에게 하달하는 관문서의 일종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고려시대 관첩에는 이두를 사용하였다. 조선의 『경국대전』에는 관첩의 양식이 수록되었고 7품 이하에 보낼 때 사용한다고 하였다.
관첩 (官帖)
관첩은 고려시대, 관아에서 동급 이하의 관아 또는 개인에게 하달하는 관문서의 일종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고려시대 관첩에는 이두를 사용하였다. 조선의 『경국대전』에는 관첩의 양식이 수록되었고 7품 이하에 보낼 때 사용한다고 하였다.
조선후기 예조에서 왕실의 각종 의식 행사에 쓰이던 의장 및 의식의 반차(班次)를 도식으로 설명한 의례서. 첩.
의장반차도 (儀仗班次圖)
조선후기 예조에서 왕실의 각종 의식 행사에 쓰이던 의장 및 의식의 반차(班次)를 도식으로 설명한 의례서. 첩.
조선시대 무신 황진의 후손가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
황진가 고문서 (黃進家 古文書)
조선시대 무신 황진의 후손가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
첩정은 조선시대 하급 관서에서 상급 관서에 직무에 관한 사항의 보고 및 청원을 위해 올린 관문서이다. 중앙 아문에서 지방관과 향촌 사회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되었으며, 지휘 관계에 있는 관서 간에는 첩정과 함께 내용을 요약한 서목을 첨부하여 올렸다. 첩정을 통해 조선시대 관문서 보고 체계와 처리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첩정 (牒呈)
첩정은 조선시대 하급 관서에서 상급 관서에 직무에 관한 사항의 보고 및 청원을 위해 올린 관문서이다. 중앙 아문에서 지방관과 향촌 사회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되었으며, 지휘 관계에 있는 관서 간에는 첩정과 함께 내용을 요약한 서목을 첨부하여 올렸다. 첩정을 통해 조선시대 관문서 보고 체계와 처리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