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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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무안로에 있는 사립 일반대학교로 초당산업대학교의 후신.
초당대학교 (草堂大學校)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무안로에 있는 사립 일반대학교로 초당산업대학교의 후신.
강릉 초당두부는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초당마을의 향토음식이다. 강릉 초당두부는 다른 지역과 달리 두부를 만들 때 간수 대신 바닷물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당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두부 마을은 1000년 이상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 공동체 기반의 생활 장소이며, 1990년대 이후 순두부를 매개로 한 상업 활동이 증가하면서 외지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
강릉 초당두부 (江陵 草堂豆腐)
강릉 초당두부는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초당마을의 향토음식이다. 강릉 초당두부는 다른 지역과 달리 두부를 만들 때 간수 대신 바닷물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당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두부 마을은 1000년 이상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 공동체 기반의 생활 장소이며, 1990년대 이후 순두부를 매개로 한 상업 활동이 증가하면서 외지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
조선 후기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백발가 (白髮歌)
조선 후기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역대가 (歷代歌)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조선 전기의 문인, 권응인의 시·만록·전·상량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송계집 (松溪集)
조선 전기의 문인, 권응인의 시·만록·전·상량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작자·연대 미상의 동학가사(東學歌辭).
채지가 (採芝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작자·연대 미상의 동학가사(東學歌辭).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뜰 아래 한편에 지어 기거하게 한 공부방. 서방.
책방 (冊房)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뜰 아래 한편에 지어 기거하게 한 공부방. 서방.
주곡동 옥천종택은 17세기 말에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의 주실마을에 건립된 옥천 조덕린의 옛 가옥이다. 경상북도 주거 건축의 역사적 유산이며, 조덕린과 그 후손들이 주실마을 내에서 분가하고 조덕린이 향불천위로 옹립되면서 성립된 소종가로 씨족마을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소박한 안사랑과 별도로 큰사랑 역할을 하는 초당이 건립되었고 정침의 안방이 오른쪽에 배치되고 안방 뒤에 별도의 마루방이 설치된 것 등은 다른 경북 ㅁ자집에서 흔치 않은 점이다.
주곡동 옥천종택 (注谷洞 玉川宗宅)
주곡동 옥천종택은 17세기 말에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의 주실마을에 건립된 옥천 조덕린의 옛 가옥이다. 경상북도 주거 건축의 역사적 유산이며, 조덕린과 그 후손들이 주실마을 내에서 분가하고 조덕린이 향불천위로 옹립되면서 성립된 소종가로 씨족마을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소박한 안사랑과 별도로 큰사랑 역할을 하는 초당이 건립되었고 정침의 안방이 오른쪽에 배치되고 안방 뒤에 별도의 마루방이 설치된 것 등은 다른 경북 ㅁ자집에서 흔치 않은 점이다.
조선시대 문신 이원익이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친필로 작성한 문서. 교훈문서.
이원익 계자손서 (李元翼 戒子孫書)
조선시대 문신 이원익이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친필로 작성한 문서. 교훈문서.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 다산초당의 사경(四景)을 읊은 시와 외척 윤규로의 아들에게 준 시문 등을 쓴 서첩이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다산초당의 경물들 가운데 차 끓이던 부뚜막인 다조, 약을 달일 때 사용하던 샘인 약천, 자신의 성을 새긴 바위인 정석, 연못에 조성한 석가산 등 네 가지에 대해 칠언율시를 짓고 행서로 써서 서첩을 만들었다. 시 뒤에는 윤종진에게 호를 지어주며 써준 호기 등이 있으며, 마지막에 소식의 오언율시 「권야」를 행초로 썼다. 대부분 연대가 기록되어 있어 정약용의 글씨체 변천과정을 살피기에 좋은 자료이다.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 (丁若鏞 行草 茶山四景帖)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 다산초당의 사경(四景)을 읊은 시와 외척 윤규로의 아들에게 준 시문 등을 쓴 서첩이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다산초당의 경물들 가운데 차 끓이던 부뚜막인 다조, 약을 달일 때 사용하던 샘인 약천, 자신의 성을 새긴 바위인 정석, 연못에 조성한 석가산 등 네 가지에 대해 칠언율시를 짓고 행서로 써서 서첩을 만들었다. 시 뒤에는 윤종진에게 호를 지어주며 써준 호기 등이 있으며, 마지막에 소식의 오언율시 「권야」를 행초로 썼다. 대부분 연대가 기록되어 있어 정약용의 글씨체 변천과정을 살피기에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