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하와이_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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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공진회 (共進會)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동회 (洞會)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은 멕시코 한인을 미국 하와이나 본토로 이주시키려고 하였던 운동이다. 1905년에 한인들은 멕시코의 유카탄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왔지만 1910년경 멕시코에 내란이 일어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19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는 멕시코 한인들을 하와이사탕수수농장으로 집단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1911년 9월에 멕시코를 떠나 9월 19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미국 이민조례에 위반이 되어 하와이로 가지 못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다. 이 운동은 해외 한인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 (Mexico 移住民 救出運動)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은 멕시코 한인을 미국 하와이나 본토로 이주시키려고 하였던 운동이다. 1905년에 한인들은 멕시코의 유카탄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왔지만 1910년경 멕시코에 내란이 일어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19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는 멕시코 한인들을 하와이사탕수수농장으로 집단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1911년 9월에 멕시코를 떠나 9월 19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미국 이민조례에 위반이 되어 하와이로 가지 못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다. 이 운동은 해외 한인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김형순 (金衡珣)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192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합자하여 만든 채소와 과일 중간도매를 위한 농산조합.
남가주농산조합 (南加州農産組合)
192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합자하여 만든 채소와 과일 중간도매를 위한 농산조합.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미주한인의 날 (美州韓人의 날)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공립협회, 대한신민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고, 노동으로 번 수입의 일부를 기부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실업가·독립운동가.
이재수 (李在洙)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공립협회, 대한신민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고, 노동으로 번 수입의 일부를 기부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실업가·독립운동가.
『재미한인 50년사』는 김원용이 하와이 초기 이민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미주 한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59년에 간행한 역사서이다.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역사를 후대가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호가 김원용에게 의뢰해 편찬되었다. 1959년 필사본으로 출간되었으며 2004년에 현대어로 교정하고 사진 자료를 포함하여 재출간되었다. 한인들의 이민과 생활상, 정치, 교육 및 교회 활동 등 미주 한인사회의 전반적인 활동을 7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미주 한인의 전 영역을 최초로 정리한 중요한 역사서로 의의가 있으나 반이승만적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
재미한인 50년사 (在美韓人 五十年事)
『재미한인 50년사』는 김원용이 하와이 초기 이민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미주 한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59년에 간행한 역사서이다.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역사를 후대가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호가 김원용에게 의뢰해 편찬되었다. 1959년 필사본으로 출간되었으며 2004년에 현대어로 교정하고 사진 자료를 포함하여 재출간되었다. 한인들의 이민과 생활상, 정치, 교육 및 교회 활동 등 미주 한인사회의 전반적인 활동을 7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미주 한인의 전 영역을 최초로 정리한 중요한 역사서로 의의가 있으나 반이승만적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길수 (韓吉洙)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
황마리아 (黃Maria)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