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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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부터 1893년까지 조선 해관에 관련된 보고와 통계를 수록한 보고서.
조선해관연보 (朝鮮海關年報)
1885년부터 1893년까지 조선 해관에 관련된 보고와 통계를 수록한 보고서.
인천해관에서 1883년부터 1885년까지 기록한 관찬 문서이다. 해관원들이 육필로 기록하였다. 이 자료에는 121건의 문건이 수록되었는데, 199장의 영문 필기체로 작성된 양장본이다. 2009년 11월 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문서의 내용은 인천제일국립은행과 인천해관간 대출계약 관련 문서, 조선내 미개항지(군산, 법성포, 목포) 조사보고서, 인천해관 화재피해 관련문서 등이다. 해관사 연구는 물론이고, 1880년(고종 17) 중반 경제 · 외교 · 해운 · 기후 등에 관한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인천해관문서 (仁川海關文書)
인천해관에서 1883년부터 1885년까지 기록한 관찬 문서이다. 해관원들이 육필로 기록하였다. 이 자료에는 121건의 문건이 수록되었는데, 199장의 영문 필기체로 작성된 양장본이다. 2009년 11월 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문서의 내용은 인천제일국립은행과 인천해관간 대출계약 관련 문서, 조선내 미개항지(군산, 법성포, 목포) 조사보고서, 인천해관 화재피해 관련문서 등이다. 해관사 연구는 물론이고, 1880년(고종 17) 중반 경제 · 외교 · 해운 · 기후 등에 관한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개항장 (開港場)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1908년 항로표지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등대국 (燈臺局)
1908년 항로표지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1880년대에 조선사절 남정철과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 외교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수록한 역사서. 필담기록물.
북양대신아문필담 (北洋大臣衙門筆談)
1880년대에 조선사절 남정철과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 외교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수록한 역사서. 필담기록물.
세관감시서는 개항기에 빈번하던 밀무역을 감시하기 위하여 각지의 세관 산하에 설치되었던 행정관서이다. 1909년에 ‘세관 관제’가 제정되면서 정식 관서로 출범하게 되었으며, 밀무역 감시 외에 수출입과 관련된 기타 각종 업무들도 취급하였다. 부산 · 인천 · 원산 · 진남포(鎭南浦) 등 각 세관에 부속되어 1910년 한일합병 때까지 전국 각지에 총 10여 곳이 개설되었다.
세관감시서 (稅關監視署)
세관감시서는 개항기에 빈번하던 밀무역을 감시하기 위하여 각지의 세관 산하에 설치되었던 행정관서이다. 1909년에 ‘세관 관제’가 제정되면서 정식 관서로 출범하게 되었으며, 밀무역 감시 외에 수출입과 관련된 기타 각종 업무들도 취급하였다. 부산 · 인천 · 원산 · 진남포(鎭南浦) 등 각 세관에 부속되어 1910년 한일합병 때까지 전국 각지에 총 10여 곳이 개설되었다.
조선 말기 개항장의 해관(海關)을 지휘·관리하는 관직.
총세무사 (總稅務司)
조선 말기 개항장의 해관(海關)을 지휘·관리하는 관직.
통리아문은 1882년 11월 17일, 외교 통상 전문가인 묄렌도르프가 고빙된 것을 계기로, 외교 통상 사무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 관청이다. 창설 당시 조영하가 판리, 김홍집이 협판, 묄렌도르프가 참의 등에 각각 임명되었다. 1882년 12월 4일에 통리아문은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하게 표명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리아문 (統理衙門)
통리아문은 1882년 11월 17일, 외교 통상 전문가인 묄렌도르프가 고빙된 것을 계기로, 외교 통상 사무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 관청이다. 창설 당시 조영하가 판리, 김홍집이 협판, 묄렌도르프가 참의 등에 각각 임명되었다. 1882년 12월 4일에 통리아문은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하게 표명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