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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 내로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이 이설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우병영성과 일시 합치되었다.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병마절제사영이 되었으며, 1584년(선조 17)에 다시 병영이 설치되었다. 잔존 성 둘레는 2,120m이다. 사적 제320호이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蔚山 慶尙左道兵營城)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 내로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이 이설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우병영성과 일시 합치되었다.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병마절제사영이 되었으며, 1584년(선조 17)에 다시 병영이 설치되었다. 잔존 성 둘레는 2,120m이다. 사적 제320호이다.
울주 언양읍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성벽 몸체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1966년 1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최초 지정 면적은 40,972㎡이다. 2011년 8월 18일 남쪽 성곽과 성곽 외벽에 접한 주변 지역 26,997㎡이 사적 지정 구역으로 추가되어, 총 면적이 84,493㎡로 지정되었다.
울주 언양읍성 (蔚州 彦陽邑城)
울주 언양읍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성벽 몸체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1966년 1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최초 지정 면적은 40,972㎡이다. 2011년 8월 18일 남쪽 성곽과 성곽 외벽에 접한 주변 지역 26,997㎡이 사적 지정 구역으로 추가되어, 총 면적이 84,493㎡로 지정되었다.
기장읍성(機張邑城)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는 조선 전기의 석축 읍성이다. 현재 둘레 약 1000m, 높이 최고 약 4m 정도의 돌로 된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문 2개소, 치성 2개소, 서벽과 남벽을 둘러싼 해자가 확인된다. 주형의 평산성으로 북쪽은 낮은 동산을 끼고 있고 남쪽은 평지이다. 성내 동헌 및 객사지 등이 일부 확인되었고 장관청은 복원되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이다.
기장읍성 (機張邑城)
기장읍성(機張邑城)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는 조선 전기의 석축 읍성이다. 현재 둘레 약 1000m, 높이 최고 약 4m 정도의 돌로 된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문 2개소, 치성 2개소, 서벽과 남벽을 둘러싼 해자가 확인된다. 주형의 평산성으로 북쪽은 낮은 동산을 끼고 있고 남쪽은 평지이다. 성내 동헌 및 객사지 등이 일부 확인되었고 장관청은 복원되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이다.
남원읍성(南原邑城)은 1477년 성종의 명에 의해 축성하기 시작하여 1530년 이전에 완성되었다. 1593년 7월 임진왜란 때 파손된 남원읍성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와 양원(楊元)이 옹성과 치성, 양마장과 해자 등을 설치하며 증축하였다. 남원읍성은 평지성으로, 4벽의 중간에 문이 개설되었으며, 지대석을 놓고 대형의 석재를 20cm 정도 들여쌓기한 조선시대의 축성법을 잘 보여주는 성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양마장 시설도 발견된다.
남원읍성 (南原邑城)
남원읍성(南原邑城)은 1477년 성종의 명에 의해 축성하기 시작하여 1530년 이전에 완성되었다. 1593년 7월 임진왜란 때 파손된 남원읍성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와 양원(楊元)이 옹성과 치성, 양마장과 해자 등을 설치하며 증축하였다. 남원읍성은 평지성으로, 4벽의 중간에 문이 개설되었으며, 지대석을 놓고 대형의 석재를 20cm 정도 들여쌓기한 조선시대의 축성법을 잘 보여주는 성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양마장 시설도 발견된다.
제주성지(濟州城址)는 제주목 읍성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목 읍성의 둘레를 4,394척, 높이 11척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수차의 개축과 증축을 거쳐 『탐라지』, 『동국여지지』 등 조선 후기 읍지에 이르면 읍성의 둘레가 5,489척으로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읍성은 1910년대 이전까지 중축, 개축, 신축 등을 통해 읍성과 내부 관아 시설을 유지하다가 1926년 이후 일제의 정책으로 제주읍성의 성돌을 바다에 매립하면서 체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제주성지 (濟州城址)
제주성지(濟州城址)는 제주목 읍성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목 읍성의 둘레를 4,394척, 높이 11척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수차의 개축과 증축을 거쳐 『탐라지』, 『동국여지지』 등 조선 후기 읍지에 이르면 읍성의 둘레가 5,489척으로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읍성은 1910년대 이전까지 중축, 개축, 신축 등을 통해 읍성과 내부 관아 시설을 유지하다가 1926년 이후 일제의 정책으로 제주읍성의 성돌을 바다에 매립하면서 체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남포읍성(藍浦邑城)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이 읍성은 고려 말 · 조선 초에 지어진 다른 읍성과 마찬가지로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이 성에는 동문, 남문, 서문 3개의 성문이 있고, 성문 바깥쪽으로는 옹성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남포읍성 (藍浦邑城)
남포읍성(藍浦邑城)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이 읍성은 고려 말 · 조선 초에 지어진 다른 읍성과 마찬가지로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이 성에는 동문, 남문, 서문 3개의 성문이 있고, 성문 바깥쪽으로는 옹성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영산읍성지(靈山邑城址)는 조선 성종 8년(1477)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산성이다. 읍성 북쪽의 정상부에는 과거 신라 태자묘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태자각이 남아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읍성의 둘레는 3,810척, 체성의 높이 12척 5촌으로 성종 8년(1477)에 시축하였고 이후에 피폐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사 결과 성의 둘레는 약 1,465m, 높이는 약 4m, 너비는 6.6m~7.1m이다. 성의 부대시설로 동 · 서 · 남문지 3개소, 치성 6개소, 수구가 확인되었다.
영산읍성지 (靈山邑城址)
영산읍성지(靈山邑城址)는 조선 성종 8년(1477)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산성이다. 읍성 북쪽의 정상부에는 과거 신라 태자묘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태자각이 남아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읍성의 둘레는 3,810척, 체성의 높이 12척 5촌으로 성종 8년(1477)에 시축하였고 이후에 피폐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사 결과 성의 둘레는 약 1,465m, 높이는 약 4m, 너비는 6.6m~7.1m이다. 성의 부대시설로 동 · 서 · 남문지 3개소, 치성 6개소, 수구가 확인되었다.
수력지명각석편(首力知銘刻石片)은 삼국시대 신라 인명과 관등을 새긴 각석 조각이다. 발견한 수로 주변에 월성해자 시설이 있기에, ‘월성해자비(月城垓字碑)’라고도 부른다. "작인 거정차 급벌차 도인 수력지나말 차3인야(作人 居丁次 及伐車 徒人 首力知奈末 此三人也)"로 석독할 수 있으며, "작인 거정차 급벌차 도인 수력지나말 이들 3인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6세기 후반~7세기 중반에 축조된 월성이나 월성해자 등 토목공사를 완료한 뒤 그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보인다.
수력지명 각석편 (首力知銘 刻石片)
수력지명각석편(首力知銘刻石片)은 삼국시대 신라 인명과 관등을 새긴 각석 조각이다. 발견한 수로 주변에 월성해자 시설이 있기에, ‘월성해자비(月城垓字碑)’라고도 부른다. "작인 거정차 급벌차 도인 수력지나말 차3인야(作人 居丁次 及伐車 徒人 首力知奈末 此三人也)"로 석독할 수 있으며, "작인 거정차 급벌차 도인 수력지나말 이들 3인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6세기 후반~7세기 중반에 축조된 월성이나 월성해자 등 토목공사를 완료한 뒤 그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