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화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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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은 건축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미술을 말한다. 예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목조건축은 내후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특히 주 건축재로 사용된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지만,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 이에 고대인들은 목조건축의 내후성 강화를 위해 부재 표면에 채료(彩料)를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원시 단청의 출발이다. 건축 부재에 칠을 하는 작업에도 인간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시대 발달과 변천에 따라 권위·종교·기복·내세의 각종 상징 문양이 채색됐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단청이 파생된 것이다.
단청 (丹靑)
단청은 건축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미술을 말한다. 예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목조건축은 내후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특히 주 건축재로 사용된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지만,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 이에 고대인들은 목조건축의 내후성 강화를 위해 부재 표면에 채료(彩料)를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원시 단청의 출발이다. 건축 부재에 칠을 하는 작업에도 인간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시대 발달과 변천에 따라 권위·종교·기복·내세의 각종 상징 문양이 채색됐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단청이 파생된 것이다.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승려. 화사·용면·경화·불모.
금어 (金魚)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승려. 화사·용면·경화·불모.
개항기 보현사 「십육나한도」, 경국사 「현왕도」 등을 그린 화가. 승려.
철유 (喆侑)
개항기 보현사 「십육나한도」, 경국사 「현왕도」 등을 그린 화가. 승려.
약효는 개항기 해인사 「석가모니불도」, 화장사 「감로도」 등을 그린 화가이자 승려이다. 마곡사의 화승으로 속성은 김씨이고 호는 약효이다. 1840년대에 태어나 1928년에 입적하였는데 1860년대 후반부터 1924년경까지 활동하였다. 알려진 것만 100여 점에 달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불화는 둥근 얼굴, 작은 이목구비, 뾰족한 육계, 덥수룩한 검은 수염의 사천왕, 날카롭게 뻗치는 옷자락, 원색적인 청색 사용 등이 특징적이다. 대표작으로는 진안 천황사 「대웅전 삼세불도」(1893년), 예산 정혜사 「관음암 치성광불도」(1911년) 등이 있다.
약효 (若效)
약효는 개항기 해인사 「석가모니불도」, 화장사 「감로도」 등을 그린 화가이자 승려이다. 마곡사의 화승으로 속성은 김씨이고 호는 약효이다. 1840년대에 태어나 1928년에 입적하였는데 1860년대 후반부터 1924년경까지 활동하였다. 알려진 것만 100여 점에 달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불화는 둥근 얼굴, 작은 이목구비, 뾰족한 육계, 덥수룩한 검은 수염의 사천왕, 날카롭게 뻗치는 옷자락, 원색적인 청색 사용 등이 특징적이다. 대표작으로는 진안 천황사 「대웅전 삼세불도」(1893년), 예산 정혜사 「관음암 치성광불도」(1911년) 등이 있다.
조선후기 동화사 아미타불회도, 파계사 영산회상도 등의 불화를 제작한 승려. 화승.
의균 (義均)
조선후기 동화사 아미타불회도, 파계사 영산회상도 등의 불화를 제작한 승려. 화승.
천신은 조선 후기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 등의 불화를 제작한 승려이다. 생애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초기에는 불상 조성에 참여했으며 17세기 후반부터는 수화승으로 불화 제작을 주도했다. 화승으로서 천신의 양식적인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1688년),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1693년), 부안 내소사 영산회괘불탱(1700년) 등이다. 천신이 그린 불화의 문양이나 채색법 등의 양식적 특징은 화엄사 괘불도(1653), 천은사 괘불도(1673) 등 전라권역에서 조성된 괘불도와 유사하다.
천신 (天信)
천신은 조선 후기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 등의 불화를 제작한 승려이다. 생애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초기에는 불상 조성에 참여했으며 17세기 후반부터는 수화승으로 불화 제작을 주도했다. 화승으로서 천신의 양식적인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1688년),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1693년), 부안 내소사 영산회괘불탱(1700년) 등이다. 천신이 그린 불화의 문양이나 채색법 등의 양식적 특징은 화엄사 괘불도(1653), 천은사 괘불도(1673) 등 전라권역에서 조성된 괘불도와 유사하다.
지연은 조선 후기 은해사 거조암 영산회상도, 문수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기림사 삼세불회도 등을 그린 승려이다. 1778년부터 1824년까지 주로 경상도 일대의 불화 제작과 단청을 주도하였으며, 은해사 보문암을 창건하였다. 1786년 은해사 거조암의 후불도인 영산회상도를 제작하면서 수화승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790년대에는 활동 범위를 통도사로 넓혀 사찰의 불화 및 단청 불사를 전담하였다. 지연은 임한, 두훈, 포관 등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선배 화승의 불화 형식을 따르는 한편 자신만의 특징적인 화풍을 구축하였다.
지연 (指演)
지연은 조선 후기 은해사 거조암 영산회상도, 문수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기림사 삼세불회도 등을 그린 승려이다. 1778년부터 1824년까지 주로 경상도 일대의 불화 제작과 단청을 주도하였으며, 은해사 보문암을 창건하였다. 1786년 은해사 거조암의 후불도인 영산회상도를 제작하면서 수화승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790년대에는 활동 범위를 통도사로 넓혀 사찰의 불화 및 단청 불사를 전담하였다. 지연은 임한, 두훈, 포관 등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선배 화승의 불화 형식을 따르는 한편 자신만의 특징적인 화풍을 구축하였다.
개항기 봉은사 「십육나한도」·「신중도」 등을 그린 화가. 승려.
상규 (尙奎)
개항기 봉은사 「십육나한도」·「신중도」 등을 그린 화가. 승려.
대한제국기 영지사 「지장보살도」·「신중도」 등을 그린 화가. 승려.
긍엽 (亘曄)
대한제국기 영지사 「지장보살도」·「신중도」 등을 그린 화가. 승려.
조선후기 신원사 괘불화, 수덕사 괘불화 등을 그린 승려. 화승.
학전 (學全)
조선후기 신원사 괘불화, 수덕사 괘불화 등을 그린 승려. 화승.
직지사 대웅전 삼세불회도, 성주사 감로도, 남장사 아미타불회도 등을 그린 조선후기의 화승이다. 세관은 수화승 성징(性澄)이 주관하는 지장사 괘불도(1722년)과 직지사 감로도(1724년) 제작에서 말단 화원으로 시작하였다. 성주사 감로도(1729년) 때에는 중간 화승으로 성장하였다. 1744년에 제작한 직지사 대웅전 삼세불회도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불화로 손꼽힌다. 생몰년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1722년부터 1747년까지 경상북도, 경상남도, 충청북도에 주유하며 불화와 불상 개금 등의 화적(畵跡)을 남겼다.
세관 (世冠)
직지사 대웅전 삼세불회도, 성주사 감로도, 남장사 아미타불회도 등을 그린 조선후기의 화승이다. 세관은 수화승 성징(性澄)이 주관하는 지장사 괘불도(1722년)과 직지사 감로도(1724년) 제작에서 말단 화원으로 시작하였다. 성주사 감로도(1729년) 때에는 중간 화승으로 성장하였다. 1744년에 제작한 직지사 대웅전 삼세불회도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불화로 손꼽힌다. 생몰년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1722년부터 1747년까지 경상북도, 경상남도, 충청북도에 주유하며 불화와 불상 개금 등의 화적(畵跡)을 남겼다.
조선후기 구례 화엄사 괘불도를 제작한 화승이다. 1653년 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의 조성에서 수화승으로 확인된다. 화엄사 괘불도는 안정된 구도와 섬세한 필선, 차분한 색조로 17세기 불화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불화이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현종(顯宗)의 비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숭릉 조성이나 단종 사후 추복(追復)하여 그 원묘(園墓)를 능으로 추봉(追封)한 기록에도 조성소 화원으로 지영이 기입되어 있다. 지영은 ‘순천(順天) 동리산(桐裡山) 대흥사(大興寺)에서 온 신유생(辛酉生)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영 (智英)
조선후기 구례 화엄사 괘불도를 제작한 화승이다. 1653년 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의 조성에서 수화승으로 확인된다. 화엄사 괘불도는 안정된 구도와 섬세한 필선, 차분한 색조로 17세기 불화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불화이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현종(顯宗)의 비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숭릉 조성이나 단종 사후 추복(追復)하여 그 원묘(園墓)를 능으로 추봉(追封)한 기록에도 조성소 화원으로 지영이 기입되어 있다. 지영은 ‘순천(順天) 동리산(桐裡山) 대흥사(大興寺)에서 온 신유생(辛酉生)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방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백마산에 있는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1㎞ 떨어진 곳인데, 빈대가 많아서 보광전을 헐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1923년 벽암이 중창하였고, 1981년부터 법전이 감로당을 이전하였으며 관음전·삼성각·향로실·사천왕문·범종각·청원루를 새로 짓고 보광명전을 복원하였다. 보광명전 안에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백마산 고방사 (白馬山 古方寺)
고방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백마산에 있는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1㎞ 떨어진 곳인데, 빈대가 많아서 보광전을 헐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1923년 벽암이 중창하였고, 1981년부터 법전이 감로당을 이전하였으며 관음전·삼성각·향로실·사천왕문·범종각·청원루를 새로 짓고 보광명전을 복원하였다. 보광명전 안에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긍척은 조선 후기 흥국사 팔상전 「석가모니후불도」, 흥국사 대웅전 「삼장보살도」 등을 그린 화승이다. 의겸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약 18년간의 활동 이력이 있으며, 이 기간 동안 20점가량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12점은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흥국사의 불화이다.
긍척 (亘陟)
긍척은 조선 후기 흥국사 팔상전 「석가모니후불도」, 흥국사 대웅전 「삼장보살도」 등을 그린 화승이다. 의겸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약 18년간의 활동 이력이 있으며, 이 기간 동안 20점가량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12점은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흥국사의 불화이다.
도일은 조선 후기 전라도를 중심으로 불화를 제작한 화승이다. 1796년부터 전라도 지역에서 30여 년간 활동하였다. 1801년부터 수화승으로 활동하였으며, 1828년 순천 송광사 부도전 「신중도」를 끝으로 더 이상의 작품은 알려진 바 없다. 1835년 순천 선암사 원통전 「아미타불도」 화기에 도일의 이름이 보여 당시 선암사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일 (道鎰)
도일은 조선 후기 전라도를 중심으로 불화를 제작한 화승이다. 1796년부터 전라도 지역에서 30여 년간 활동하였다. 1801년부터 수화승으로 활동하였으며, 1828년 순천 송광사 부도전 「신중도」를 끝으로 더 이상의 작품은 알려진 바 없다. 1835년 순천 선암사 원통전 「아미타불도」 화기에 도일의 이름이 보여 당시 선암사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묘영은 조선 후기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 쌍계사 국사암 「치성광여래도」 등을 그린 화승이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전라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866년의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와 대흥사 진불암 「지장시왕도」부터 1907년의 흥국사 보광전 「아미타불도」에 이르기까지 40여 점의 작품이 전한다.
묘영 (妙英)
묘영은 조선 후기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 쌍계사 국사암 「치성광여래도」 등을 그린 화승이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전라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866년의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와 대흥사 진불암 「지장시왕도」부터 1907년의 흥국사 보광전 「아미타불도」에 이르기까지 40여 점의 작품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