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3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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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무산계 명칭.
관군대장군 (冠軍大將軍)
고려시대 무산계 명칭.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과 용호군에 소속된 상장군.
근장상장군 (近仗上將軍)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과 용호군에 소속된 상장군.
순문사는 조선 초기에 주로 군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파견된 3품의 외방 사신 또는 2품 이상의 도순문사까지 포함한 범칭이다. 민사적 기능보다 군사적 기능이 중요했던 북방의 양계 지역에 파견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전국 8도의 장관을 도관찰출척사로 일원화하면서 소멸되었다. 이후 세조 대에 도순문진휼사가 외방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선조 대에는 당하관을 순문관이라는 명칭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순문사 (巡問使)
순문사는 조선 초기에 주로 군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파견된 3품의 외방 사신 또는 2품 이상의 도순문사까지 포함한 범칭이다. 민사적 기능보다 군사적 기능이 중요했던 북방의 양계 지역에 파견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전국 8도의 장관을 도관찰출척사로 일원화하면서 소멸되었다. 이후 세조 대에 도순문진휼사가 외방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선조 대에는 당하관을 순문관이라는 명칭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안무사는 조선시대에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위로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하였던 당상관 외방 사신이다. 조선 초기에는 제사(諸使)의 하나로 3품 품계의 안무사를 파견하였으며, 임진왜란과 무신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백성들을 위무하고, 의병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재상급 관료를 파견하였다. 고종대에는 함경도와 평안도에 사안이 발생했을 때 안무사를 파견하여 지역민을 어루만져 달래고 해당 지역 통치 업무도 수행하였다.
안무사 (安撫使)
안무사는 조선시대에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위로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하였던 당상관 외방 사신이다. 조선 초기에는 제사(諸使)의 하나로 3품 품계의 안무사를 파견하였으며, 임진왜란과 무신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백성들을 위무하고, 의병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재상급 관료를 파견하였다. 고종대에는 함경도와 평안도에 사안이 발생했을 때 안무사를 파견하여 지역민을 어루만져 달래고 해당 지역 통치 업무도 수행하였다.
상례(相禮)는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좌 · 우통례 아래에서 국가 의례를 담당하였다. 각종 국가 의례 시 주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상례 (相禮)
상례(相禮)는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좌 · 우통례 아래에서 국가 의례를 담당하였다. 각종 국가 의례 시 주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찰리사는 조선시대 3품 당상관이 왕명을 받들고 외방에 파견된 사신의 명칭이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외방에 파견된 다양한 사신의 명칭 가운데 하나였으나, 관계 중심의 관료제가 운영되면서 성종 대 이후에는 3품 당상관 외방 사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찰리사는 원칙적으로 3품 재상이 군무를 맡아 외방에 나가는 사신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찰리사 (察理使)
찰리사는 조선시대 3품 당상관이 왕명을 받들고 외방에 파견된 사신의 명칭이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외방에 파견된 다양한 사신의 명칭 가운데 하나였으나, 관계 중심의 관료제가 운영되면서 성종 대 이후에는 3품 당상관 외방 사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찰리사는 원칙적으로 3품 재상이 군무를 맡아 외방에 나가는 사신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