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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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 경찰·서북청년단의 검속·탄압, 남로당의 무장봉기, 계엄령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검속 및 즉결처분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되었다. 사건은 1954년에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제주4·3사건 (濟州四三事件)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 경찰·서북청년단의 검속·탄압, 남로당의 무장봉기, 계엄령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검속 및 즉결처분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되었다. 사건은 1954년에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1948년 10월, 여수 주둔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ㆍ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 (麗水·順天 10·19事件)
1948년 10월, 여수 주둔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ㆍ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
이기붕은 해방 이후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6년 서울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23년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1934년 귀국해 광산 산업을 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비서를 지냈고, 서울특별시 시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이승만의 지시로 자유당을 창당하였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사사오입을 강행하였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피신해 있다가 4월 28일 전가족이 자살하였다.
이기붕 (李起鵬)
이기붕은 해방 이후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6년 서울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23년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1934년 귀국해 광산 산업을 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비서를 지냈고, 서울특별시 시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이승만의 지시로 자유당을 창당하였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사사오입을 강행하였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피신해 있다가 4월 28일 전가족이 자살하였다.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면 (張勉)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1948년 6월 18일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9연대의 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강경진압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박진경 암살사건 (朴珍經 暗殺事件)
1948년 6월 18일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9연대의 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강경진압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정치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장 등을 역임한 학자. 정치학자.
신도성 (愼道晟)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정치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장 등을 역임한 학자. 정치학자.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홍동에 있는 폭포이다. 정방폭포는 하천수가 바다로 직접 낙하하는 국내 유일의 해안 폭포로, 조면안산암 주상절리 위에 형성되어 높이 23m, 너비 10m에 이른다. 명칭은 조선시대 ‘정방연’ 또는 ‘정모연’에서 유래했으며,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곳은 천제연·천지연과 함께 제주 3대 폭포 중 하나로, 2008년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4·3사건 당시 집단 학살지로도 기록되어 현재는 위령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 (濟州 西歸浦 正房瀑布)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홍동에 있는 폭포이다. 정방폭포는 하천수가 바다로 직접 낙하하는 국내 유일의 해안 폭포로, 조면안산암 주상절리 위에 형성되어 높이 23m, 너비 10m에 이른다. 명칭은 조선시대 ‘정방연’ 또는 ‘정모연’에서 유래했으며,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곳은 천제연·천지연과 함께 제주 3대 폭포 중 하나로, 2008년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4·3사건 당시 집단 학살지로도 기록되어 현재는 위령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공원이다. 제주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1995년 8월 위령공원 조성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2003년부터 순차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주요 시설로서 위패봉안실, 위령제단·위령광장, 봉안관, 제주4·3평화기념관, 제주4·3평화교육센터·어린이체험관 등이 있다.
제주 4·3평화공원 (濟州 4·3平和公園)
제주 4·3평화공원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공원이다. 제주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1995년 8월 위령공원 조성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2003년부터 순차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주요 시설로서 위패봉안실, 위령제단·위령광장, 봉안관, 제주4·3평화기념관, 제주4·3평화교육센터·어린이체험관 등이 있다.
이덕구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이후 제주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를 그만둔 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라산으로 입산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봉기에 참여하였고,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들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사살되었다.
이덕구 (李德九)
이덕구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이후 제주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를 그만둔 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라산으로 입산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봉기에 참여하였고,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들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