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헌(尹民獻)
1617년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으로 재기용되어 그 해 가을 사성에 올랐으나, 부당한 인사라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1618년 대동찰방(大同察訪)이 되었으나 얼마 뒤 파직당하였으며, 이때부터 안산(安山) 선묘하에 퇴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군자감정에 임명되고, 장령·내섬시정(內贍寺正)을 거쳐 평안도절도사로 나갔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한 공으로 통정대부에 오르고,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공조참의에 이르러 병으로 사직하였으며, 안산으로 돌아와 죽었다. 자질과 성품이 순정(純正)하고, 일을 당하여 스스로 지킬 줄 알았으며, 경사(經史)에 밝고 시문에 능하였다. 특히, 조맹부(趙孟頫)를 사숙(私淑)하여 해서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