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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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朴鍾和)가 지은 장편 역사소설. 이 작품은 작가가 암담한 일제하에서는 소설화할 수 없었던 임진왜란을 그것과 역사상 흡사한 한국전쟁을 체험하고 나서 형상화하였던 역작이다. # 내용 우리 민족사상 일대수난이었던 임진왜란을 소재로 침략자와 우리 민족 사이에 벌어지는 선악의 대결을 대하소설로 엮어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애국애족의 상징으로 이순신(李舜臣)·계월향(桂月香)·논개(論介) 등 세 주인공의 영웅적인 호국정신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간악한 왜적의 침략이 7, 8년에 걸쳤던 임진왜란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조선 정계의 정황과 여기에 겹친 포악한 침략상, 전민족적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민족수난의 일대 서사시를 펼쳤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이 지녔던 애족과 호국정신을 오늘의 우리가 올바르게...
임진왜란 (壬辰倭亂)
박종화(朴鍾和)가 지은 장편 역사소설. 이 작품은 작가가 암담한 일제하에서는 소설화할 수 없었던 임진왜란을 그것과 역사상 흡사한 한국전쟁을 체험하고 나서 형상화하였던 역작이다. # 내용 우리 민족사상 일대수난이었던 임진왜란을 소재로 침략자와 우리 민족 사이에 벌어지는 선악의 대결을 대하소설로 엮어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애국애족의 상징으로 이순신(李舜臣)·계월향(桂月香)·논개(論介) 등 세 주인공의 영웅적인 호국정신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간악한 왜적의 침략이 7, 8년에 걸쳤던 임진왜란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조선 정계의 정황과 여기에 겹친 포악한 침략상, 전민족적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민족수난의 일대 서사시를 펼쳤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이 지녔던 애족과 호국정신을 오늘의 우리가 올바르게...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끈질긴 저항으로 이겨내고 각성과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민족의 운명을 새로 개척해나간 계기가 된 전쟁이다. 명의 원조도 있었지만 승리의 가장 큰 원동력은 거족적인 저항으로, 이순신에 의한 제해권의 장악과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의 활동은 불리했던 전쟁 국면을 전환시킨 결정적인 힘이었다. 이 전란은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를 크게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명과 청이 교체되면서 병자호란이라는 시련을 예고하기도 했다.# 개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임진왜란 (壬辰倭亂)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끈질긴 저항으로 이겨내고 각성과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민족의 운명을 새로 개척해나간 계기가 된 전쟁이다. 명의 원조도 있었지만 승리의 가장 큰 원동력은 거족적인 저항으로, 이순신에 의한 제해권의 장악과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의 활동은 불리했던 전쟁 국면을 전환시킨 결정적인 힘이었다. 이 전란은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를 크게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명과 청이 교체되면서 병자호란이라는 시련을 예고하기도 했다.# 개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피로·피로조선인·부로·부인. 절의를 강조했던 가치관에서 조선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또한 양반 중심의 신분제사회에 쇄환된 평민이나 천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 점에서 조선왕조의 피로인 쇄환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1]: 조선 시대에, 외국에서 유랑하는 동포를 데리고 돌아오던 일.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79385) - 「조선통신사의 피로인 쇄환과 그 한계」(손승철, 『전북사학』42호, 2013) - 「임진왜란 중의 납치된 조선인문제」(민덕기,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5) - 「임진 정유재란기의 조선 피로인 문제」(김문자, 『중앙사론』19집, 2004) - 『朝鮮被虜人と壬辰倭亂』(仲尾宏, 明石書店, 2000)
임진왜란 피로인 (壬辰倭亂 捕虜人)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피로·피로조선인·부로·부인. 절의를 강조했던 가치관에서 조선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또한 양반 중심의 신분제사회에 쇄환된 평민이나 천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 점에서 조선왕조의 피로인 쇄환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1]: 조선 시대에, 외국에서 유랑하는 동포를 데리고 돌아오던 일.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79385) - 「조선통신사의 피로인 쇄환과 그 한계」(손승철, 『전북사학』42호, 2013) - 「임진왜란 중의 납치된 조선인문제」(민덕기,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5) - 「임진 정유재란기의 조선 피로인 문제」(김문자, 『중앙사론』19집, 2004) - 『朝鮮被虜人と壬辰倭亂』(仲尾宏, 明石書店, 2000)
조선시대 문신·의병장 우배선의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에 관하여 저술한 의병록. 이 자료는 대구광역시 달서구단양우씨 열락당 종중과 경기도 의왕시우국일이 소유하고 있다. # 의의와 평가 이 자료는 임진왜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의병군공책」은 유일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戰功) 보고서로서 우배선의 의병활동에 대한 구체적 전개과정, 그의 전투 기술적인 양상, 그의 의병진(義兵陣)이 대구지역의 의병활동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 『대구시사』(대구광역시사편찬위원회, 1995) - 『월곡 우배선의 의병활동』(장동익, 『역사교육논집』18, 1993) - 『월곡 우배선의 임진왜란 의병활동』(이수건, 『민족문화논총』 13, 1992)
월곡 우배선 임진왜란 창의유록 및 관련 문서 (月谷 禹拜善 壬辰倭亂 倡義遺錄 및 關聯 文書)
조선시대 문신·의병장 우배선의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에 관하여 저술한 의병록. 이 자료는 대구광역시 달서구단양우씨 열락당 종중과 경기도 의왕시우국일이 소유하고 있다. # 의의와 평가 이 자료는 임진왜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의병군공책」은 유일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戰功) 보고서로서 우배선의 의병활동에 대한 구체적 전개과정, 그의 전투 기술적인 양상, 그의 의병진(義兵陣)이 대구지역의 의병활동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 『대구시사』(대구광역시사편찬위원회, 1995) - 『월곡 우배선의 의병활동』(장동익, 『역사교육논집』18, 1993) - 『월곡 우배선의 임진왜란 의병활동』(이수건, 『민족문화논총』 13, 1992)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병장(僧兵將) 유정(惟政)을 주인공으로 한 작자·연대 미상의 고소설. 「사명당전」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병장 유정을 주인공으로 한 작자·연대 미상의 고소설이다. 실존 인물인 사명당 유정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실제 행적과 허구적인 내용을 적절히 배합해서 만들었지만 허구적인 측면이 훨씬 강하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는 유정이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회의를 느껴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유정은 13세에 출가했다. 이밖에도 사명당의 신이한 능력을 보여주는 설화나, 가정 비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복수 모티프를 적극 수용했는데, 이것은 흥미 위주의 통속성에 기댄 상업주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영화출판사본(1954) 「임진왜란 사명당전」(1954)는 후처에 대한 복수를 중심적 서사로 삼고 있다....
사명당전 (泗溟堂傳)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병장(僧兵將) 유정(惟政)을 주인공으로 한 작자·연대 미상의 고소설. 「사명당전」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병장 유정을 주인공으로 한 작자·연대 미상의 고소설이다. 실존 인물인 사명당 유정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실제 행적과 허구적인 내용을 적절히 배합해서 만들었지만 허구적인 측면이 훨씬 강하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는 유정이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회의를 느껴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유정은 13세에 출가했다. 이밖에도 사명당의 신이한 능력을 보여주는 설화나, 가정 비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복수 모티프를 적극 수용했는데, 이것은 흥미 위주의 통속성에 기댄 상업주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영화출판사본(1954) 「임진왜란 사명당전」(1954)는 후처에 대한 복수를 중심적 서사로 삼고 있다....
17세기 전반기에, 생활했던 장흥임씨(長興任氏)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장흥임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 장군의 동생 덕보(德普)의 며느리로, 남편은 휘(諱)가 거취(璩醉), 자(字)가 휴서(休瑞)로 1593년생이라 한다....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 (長興任氏 墓 出土服飾)
17세기 전반기에, 생활했던 장흥임씨(長興任氏)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장흥임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 장군의 동생 덕보(德普)의 며느리로, 남편은 휘(諱)가 거취(璩醉), 자(字)가 휴서(休瑞)로 1593년생이라 한다....
1928년에, 임진왜란의 기록인 『임진록』과 병자호란의 기록인 『병자록』을 합본하여 간행한 역사서. 『임진급병자록(壬辰及丙子錄)』은 1928년에 임진왜란의 기록인 『임진록』과 병자호란의 기록인 『병자록』을 합본하여 간행한 역사서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과정을 일기체로 각각 기록하였다.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문장에 현토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편저자는 김유동(金逌東)이다.먼저 「임진록」은 임진왜란과 관련한 기록들을 여러 문헌에서 뽑아내어 항목별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임진년 병란으로 임금의 어가가 서쪽으로 순행하다〔壬辰兵亂 大駕西守〕’라는 항목으로 시작하며, ‘이순신이 해로를 막아내다〔李舜臣扼遏海路〕’, ‘삼도에서 모인 근왕병이 용인에서 패전한 일...
임진급병자록 (壬辰及丙子錄)
1928년에, 임진왜란의 기록인 『임진록』과 병자호란의 기록인 『병자록』을 합본하여 간행한 역사서. 『임진급병자록(壬辰及丙子錄)』은 1928년에 임진왜란의 기록인 『임진록』과 병자호란의 기록인 『병자록』을 합본하여 간행한 역사서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과정을 일기체로 각각 기록하였다.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문장에 현토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편저자는 김유동(金逌東)이다.먼저 「임진록」은 임진왜란과 관련한 기록들을 여러 문헌에서 뽑아내어 항목별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임진년 병란으로 임금의 어가가 서쪽으로 순행하다〔壬辰兵亂 大駕西守〕’라는 항목으로 시작하며, ‘이순신이 해로를 막아내다〔李舜臣扼遏海路〕’, ‘삼도에서 모인 근왕병이 용인에서 패전한 일...
조선 중기에 안인수(安仁壽)가 지은 가사. 임진왜란 때 왜국의 포로로 끌려갔던 백수회(白受繪)와 일본의 경도(京都)에 와 있던 안인수가 가사(歌辭)로 화답하면서 사귀었을 때의 작품이다. 형식은 4음보 1행 기준으로 9행의 짤막한 작품이다. 포로신세가 된 슬픈 마음을 토로한 것으로 보아 작자도 포로로 끌려간 신세임을 추정할 수 있으나 신원은 미상이다. # 내용 및 평가 내용은, 낯선 땅 먼 곳으로 끌려와서 혼자 외로이 잠 못이루는 슬픈 신세를 야단스럽게 부는 바람과 비스듬히 비추어주는 외로운 달에 감정을 이입시켜 처연히 노래하였다. 슬픈 감정을 절제 없이 표출함으로써 강렬한 서정성을 드러내었으며, 고국에 두고 온 임(가족)을 그리는 마음이 실감 있게 형상화되었다. - 『가사문학논고』(이동영...
안인수가 (安仁壽歌)
조선 중기에 안인수(安仁壽)가 지은 가사. 임진왜란 때 왜국의 포로로 끌려갔던 백수회(白受繪)와 일본의 경도(京都)에 와 있던 안인수가 가사(歌辭)로 화답하면서 사귀었을 때의 작품이다. 형식은 4음보 1행 기준으로 9행의 짤막한 작품이다. 포로신세가 된 슬픈 마음을 토로한 것으로 보아 작자도 포로로 끌려간 신세임을 추정할 수 있으나 신원은 미상이다. # 내용 및 평가 내용은, 낯선 땅 먼 곳으로 끌려와서 혼자 외로이 잠 못이루는 슬픈 신세를 야단스럽게 부는 바람과 비스듬히 비추어주는 외로운 달에 감정을 이입시켜 처연히 노래하였다. 슬픈 감정을 절제 없이 표출함으로써 강렬한 서정성을 드러내었으며, 고국에 두고 온 임(가족)을 그리는 마음이 실감 있게 형상화되었다. - 『가사문학논고』(이동영...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지역의 옛 지명.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남원 진관(鎭管)에 속하였고, 1600년(선조 33)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인구가 격감되자 수령을 폐지하고 남원도호부의 임내로 편입하였다가 1611년(광해군 3)에 복구시켰다. 1709년(숙종 35) 전라도 좌영(左營)이 남원에서 이설되어 현감이 영장(營將)을 겸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군(郡)이 되어 남원부에 속하였다가 이듬해 전라북도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원군에 병합되었다. 1995년에는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가 되었다. 운봉이라는 지명은 소백산맥의 동쪽 사면에 위치한 이곳에서 구름에 가려진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를 보게 된 데서 생긴 것이다. 당시에는 인월역(引月驛)이 있어 함양과 연결되었고, 남원 · 구례 · 곡성...
운봉 (雲峰)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지역의 옛 지명.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남원 진관(鎭管)에 속하였고, 1600년(선조 33)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인구가 격감되자 수령을 폐지하고 남원도호부의 임내로 편입하였다가 1611년(광해군 3)에 복구시켰다. 1709년(숙종 35) 전라도 좌영(左營)이 남원에서 이설되어 현감이 영장(營將)을 겸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군(郡)이 되어 남원부에 속하였다가 이듬해 전라북도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원군에 병합되었다. 1995년에는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가 되었다. 운봉이라는 지명은 소백산맥의 동쪽 사면에 위치한 이곳에서 구름에 가려진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를 보게 된 데서 생긴 것이다. 당시에는 인월역(引月驛)이 있어 함양과 연결되었고, 남원 · 구례 · 곡성...
조선 인조 때 유진(柳袗)이 지은 일록류(日錄類)의 산문. 이를 통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과 사회상을 비롯해 백성들의 인심소재(人心所在)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왜병의 만행과 잔학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임진왜란의 민족적 치욕을 되새기고 일깨워 주게 하는 작품이다. 구사된 말씨의 예스러움이나 말투의 지역적 특성 등을 잘 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초의 안동지방 말을 그대로 담아 내려오므로 말씨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내용과 생동적인 표현, 생생한 묘사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자조적인 수기 문학의 백미편이라 할 수 있다. - 『수암문집(修巖文集)』 - 「임진록」(홍재휴, 『국문학연구』7, 효성여자대학교, 1983)
임진록 (壬辰錄)
조선 인조 때 유진(柳袗)이 지은 일록류(日錄類)의 산문. 이를 통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과 사회상을 비롯해 백성들의 인심소재(人心所在)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왜병의 만행과 잔학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임진왜란의 민족적 치욕을 되새기고 일깨워 주게 하는 작품이다. 구사된 말씨의 예스러움이나 말투의 지역적 특성 등을 잘 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초의 안동지방 말을 그대로 담아 내려오므로 말씨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내용과 생동적인 표현, 생생한 묘사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자조적인 수기 문학의 백미편이라 할 수 있다. - 『수암문집(修巖文集)』 - 「임진록」(홍재휴, 『국문학연구』7, 효성여자대학교, 1983)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지역의 옛 지명. 특히, 사진포에는 해창(海倉)이 있어 이곳의 세곡을 모아 황해로 내보냈다. 현의 치소는 본래 배풍치(陪風峙) 위 성내에 있었는데 정유재란 후 성의 남문 밖으로 옮겨졌다. 해변의 염창은 소금을 모은 곳이었고, 백제 때 만들었다는 눌제호(訥堤湖)는 이 지역에 관개용수를 공급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채홍국(蔡弘國)이 이끈 의병이 이곳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흥덕남당창의(興德南塘倡義)와 채씨일문(蔡氏一門)의 의병운동(義兵運動)」(조원래, 『한국사연구』42, 1983)
흥덕 (興德)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지역의 옛 지명. 특히, 사진포에는 해창(海倉)이 있어 이곳의 세곡을 모아 황해로 내보냈다. 현의 치소는 본래 배풍치(陪風峙) 위 성내에 있었는데 정유재란 후 성의 남문 밖으로 옮겨졌다. 해변의 염창은 소금을 모은 곳이었고, 백제 때 만들었다는 눌제호(訥堤湖)는 이 지역에 관개용수를 공급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채홍국(蔡弘國)이 이끈 의병이 이곳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흥덕남당창의(興德南塘倡義)와 채씨일문(蔡氏一門)의 의병운동(義兵運動)」(조원래, 『한국사연구』42, 1983)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정청을 지칭하는 용어.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원주 강원감영 포정루는 임진왜란 후 1667년(현종 8)에 중건된 것으로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단층팔작지붕 건물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내에 있는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1807년(순조 7)에 중건된 것으로 2021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6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내에 있는 선화당은 1937년 공주사적현창회에 의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1980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며, 정면 8칸, 측면 4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 건물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선화당 (宣化堂)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정청을 지칭하는 용어.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원주 강원감영 포정루는 임진왜란 후 1667년(현종 8)에 중건된 것으로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단층팔작지붕 건물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내에 있는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1807년(순조 7)에 중건된 것으로 2021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6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내에 있는 선화당은 1937년 공주사적현창회에 의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1980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며, 정면 8칸, 측면 4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 건물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효동에 있는 조선의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양산숙 일가 6명의 충효열 삼강문. # 내용 1동. 1985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삼강문은 원래 1635년(인조 13)에 건립하여 양산숙과 효자·열녀·절부 각 두명씩 7위를 표창하였으나 그 뒤 나주임씨 문중에 출가하여 순절한 양산룡(梁山龍)의 딸은 따로 정려를 모시고 있어 6위가 표창되고 있다. 양산숙 외에 형제인 양산룡과 양산수(梁山岫), 어머니 죽산박씨, 누이인 김광운(金光運)의 처 양씨, 양산숙의 처 광산이씨 등이다. 이곳은 생장지인 박뫼(博山)마을 앞 산기슭으로 삼강문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각 기둥 사이에 홍살문을 달았고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1803년에 이헌중(李憲中)이 ‘양씨삼강문(梁氏三綱門)’이란 현판을...
양씨 삼강문 (梁氏 三綱門)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효동에 있는 조선의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양산숙 일가 6명의 충효열 삼강문. # 내용 1동. 1985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삼강문은 원래 1635년(인조 13)에 건립하여 양산숙과 효자·열녀·절부 각 두명씩 7위를 표창하였으나 그 뒤 나주임씨 문중에 출가하여 순절한 양산룡(梁山龍)의 딸은 따로 정려를 모시고 있어 6위가 표창되고 있다. 양산숙 외에 형제인 양산룡과 양산수(梁山岫), 어머니 죽산박씨, 누이인 김광운(金光運)의 처 양씨, 양산숙의 처 광산이씨 등이다. 이곳은 생장지인 박뫼(博山)마을 앞 산기슭으로 삼강문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각 기둥 사이에 홍살문을 달았고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1803년에 이헌중(李憲中)이 ‘양씨삼강문(梁氏三綱門)’이란 현판을...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을 그린 조선시대의 초상화. 임진왜란 후 이모한 작품으로서 당시 사대부 화가였던 허의(許懿)와 화원이었던 김명국(金明國)이 그렸다고 전해 온다. 이 초상화는 게 발처럼 옆으로 뻗은 사모를 쓰고 오른쪽을 바라보는 우안구분면(右顔九分面)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공신도상을 보여 준다. 이 위에는 권근(權近)의 찬문과 아울러 그 아래에 ‘숭정 병자후19년 을미8월 상순 후손 이조좌랑 정기가 공경하여 쓰다[崇禎丙子後十九年乙未八月上澣後孫吏曹佐郞廷夔敬書]’라는 글이 쓰여 있다. 이 초상화의 제작 연대가 1655년(효종 6)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비록 남의 그림을 본떠 그린 이모본(移模本)이기는 하지만, 복제(服制)는 물론 안면 처리 역시 원본에 상당히 충실하였다....
이색 초상 (李穡 肖像)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을 그린 조선시대의 초상화. 임진왜란 후 이모한 작품으로서 당시 사대부 화가였던 허의(許懿)와 화원이었던 김명국(金明國)이 그렸다고 전해 온다. 이 초상화는 게 발처럼 옆으로 뻗은 사모를 쓰고 오른쪽을 바라보는 우안구분면(右顔九分面)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공신도상을 보여 준다. 이 위에는 권근(權近)의 찬문과 아울러 그 아래에 ‘숭정 병자후19년 을미8월 상순 후손 이조좌랑 정기가 공경하여 쓰다[崇禎丙子後十九年乙未八月上澣後孫吏曹佐郞廷夔敬書]’라는 글이 쓰여 있다. 이 초상화의 제작 연대가 1655년(효종 6)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비록 남의 그림을 본떠 그린 이모본(移模本)이기는 하지만, 복제(服制)는 물론 안면 처리 역시 원본에 상당히 충실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후기 임경업 관련 사당.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의 은의를 생각하여 숭명배청운동을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청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몇 년간 옥고를 치른 뒤 본국으로 소환되었으나, 김자점(金自點) 등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피살되었다. 그 뒤 그의 충절이 밝혀지면서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민(忠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있어 인근 선비들이 그의 덕망을 추모하여 1697년(숙종 23)에 충렬사를 건립하여 매년 봄ㆍ가을에 제향하였다. 평택임씨 문중에서 사우를 관리해오다가 1978년 국가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경내에 조경사업을 실시하였다. 사당 앞에는 충주 충렬사비와 그의 부인 이씨의 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충주 충렬사비는 200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임충민공 충렬사 (林忠愍公 忠烈祠)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후기 임경업 관련 사당.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의 은의를 생각하여 숭명배청운동을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청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몇 년간 옥고를 치른 뒤 본국으로 소환되었으나, 김자점(金自點) 등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피살되었다. 그 뒤 그의 충절이 밝혀지면서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민(忠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있어 인근 선비들이 그의 덕망을 추모하여 1697년(숙종 23)에 충렬사를 건립하여 매년 봄ㆍ가을에 제향하였다. 평택임씨 문중에서 사우를 관리해오다가 1978년 국가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경내에 조경사업을 실시하였다. 사당 앞에는 충주 충렬사비와 그의 부인 이씨의 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충주 충렬사비는 200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정발의 무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부산첨사를 지내다가 임진왜란 때에 부산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묘역은 민간인 통제선 안쪽의 야산 중턱에 있는데, 봉분은 단분(單墳)이며 부인 풍천임씨(豊川任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의 규모는 높이 180㎝, 둘레 13m이고 주위는 높이 45㎝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봉분 앞으로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놓여져 있고, 상석 아래에 석축이 좌우로 길게 늘여져 있다.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이 장명등을 중심으로 무인석과 망주석(望柱石)이 각각 1쌍씩 좌우로 배치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묘비가 있었다고 전하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1982년에 오석(烏石)으로 다시 묘비를 건립하여...
정발 장군 묘 (鄭撥 將軍 墓)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정발의 무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부산첨사를 지내다가 임진왜란 때에 부산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묘역은 민간인 통제선 안쪽의 야산 중턱에 있는데, 봉분은 단분(單墳)이며 부인 풍천임씨(豊川任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의 규모는 높이 180㎝, 둘레 13m이고 주위는 높이 45㎝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봉분 앞으로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놓여져 있고, 상석 아래에 석축이 좌우로 길게 늘여져 있다.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이 장명등을 중심으로 무인석과 망주석(望柱石)이 각각 1쌍씩 좌우로 배치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묘비가 있었다고 전하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1982년에 오석(烏石)으로 다시 묘비를 건립하여...
조선시대 문신 유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실기. 『광사(廣史)』 3집에는 『징비록』과 『녹후잡기』가 합쳐 4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1957년과 1958년에는 이민수(李民樹)의 번역이 『현대문학』 제3·4권에 연재되었고, 1975년에는 이동환(李東歡)이 『징비록』 1·2권과 『녹후잡기』를 번역해 삼중당(三中堂)에서 출간하였다. # 의의와 평가 유성룡은 이 책자를 가리켜 “비록 볼만한 것은 없으나 역시 모두 당시의 사적(事蹟)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위치나 책의 내용으로 보아, 이 책은 임진 전란사를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 「징비록해제」(박종화, 『서애문집』,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58)
징비록 (懲毖錄)
조선시대 문신 유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실기. 『광사(廣史)』 3집에는 『징비록』과 『녹후잡기』가 합쳐 4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1957년과 1958년에는 이민수(李民樹)의 번역이 『현대문학』 제3·4권에 연재되었고, 1975년에는 이동환(李東歡)이 『징비록』 1·2권과 『녹후잡기』를 번역해 삼중당(三中堂)에서 출간하였다. # 의의와 평가 유성룡은 이 책자를 가리켜 “비록 볼만한 것은 없으나 역시 모두 당시의 사적(事蹟)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위치나 책의 내용으로 보아, 이 책은 임진 전란사를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 「징비록해제」(박종화, 『서애문집』,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58)
조선 숙종 때 임준원(林俊元)이 중심이 된 문인들의 모임. # 연원 및 변천 시회의 결성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유희경(劉希慶)이 주축이 된 ‘풍월향도(風月香徒)’와 맥락을 같이하는 위항인(委巷人)들의 시사로서 임준원의 사망시까지 활동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인으로는 임준원을 비롯하여 최승태(崔承太)·유찬홍(庾纘弘)·김부현(金富賢)·최대립(崔大立)·김충렬(金忠烈)·홍세태(洪世泰) 등이 있다. # 기능과 역할 이들은 중인들로서 역관·서리 등의 세업에 종사하는 미천한 신분에서 오는 불만과 한탄을 시로 표현하였다. 집단의식을 가지고 동병상련하는 가운데 더욱 공고한 동류의식을 결집하였다. 임준원은 내수사(內需司)에 근무하며 부를 축적하여 이 시회를 주관하였고, 홍세태는 뛰어난 시재로써 모임의 중추적...
낙사시사 (洛社詩社)
조선 숙종 때 임준원(林俊元)이 중심이 된 문인들의 모임. # 연원 및 변천 시회의 결성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유희경(劉希慶)이 주축이 된 ‘풍월향도(風月香徒)’와 맥락을 같이하는 위항인(委巷人)들의 시사로서 임준원의 사망시까지 활동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인으로는 임준원을 비롯하여 최승태(崔承太)·유찬홍(庾纘弘)·김부현(金富賢)·최대립(崔大立)·김충렬(金忠烈)·홍세태(洪世泰) 등이 있다. # 기능과 역할 이들은 중인들로서 역관·서리 등의 세업에 종사하는 미천한 신분에서 오는 불만과 한탄을 시로 표현하였다. 집단의식을 가지고 동병상련하는 가운데 더욱 공고한 동류의식을 결집하였다. 임준원은 내수사(內需司)에 근무하며 부를 축적하여 이 시회를 주관하였고, 홍세태는 뛰어난 시재로써 모임의 중추적...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옛 지명. 조선시대에는 선산과 칠곡 사이의 작은 현에 불과하던 인동이 도호부라는 높은 품계를 받은 것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왜적을 크게 무찔렀기 때문이다. 지형상 금오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건대산(件代山)ㆍ옥산(玉山)ㆍ천생산(天生山)ㆍ유악산(流嶽山)ㆍ황학산(黃鶴山) 등에 이어지면서 인동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인동의 중앙부를 낙동강이 관류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건대산과 박집산(朴執山)에 봉수가 있어 성주와 상주 지역을 연결하였다. 보발로 양원참(楊原站)이 있었고, 양원역과 동안역(東安驛)을 통하여 대구ㆍ군위ㆍ개령 등지와 연결되었다. 강변에는 인풍루(仁風樓)ㆍ망호루(望湖樓) 등의 누정이 있었고, 중지창(中旨倉)은 인동의 세곡을 모아 낙동강 하류로 실어 날랐다. 지금의...
인동 (仁同)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옛 지명. 조선시대에는 선산과 칠곡 사이의 작은 현에 불과하던 인동이 도호부라는 높은 품계를 받은 것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왜적을 크게 무찔렀기 때문이다. 지형상 금오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건대산(件代山)ㆍ옥산(玉山)ㆍ천생산(天生山)ㆍ유악산(流嶽山)ㆍ황학산(黃鶴山) 등에 이어지면서 인동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인동의 중앙부를 낙동강이 관류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건대산과 박집산(朴執山)에 봉수가 있어 성주와 상주 지역을 연결하였다. 보발로 양원참(楊原站)이 있었고, 양원역과 동안역(東安驛)을 통하여 대구ㆍ군위ㆍ개령 등지와 연결되었다. 강변에는 인풍루(仁風樓)ㆍ망호루(望湖樓) 등의 누정이 있었고, 중지창(中旨倉)은 인동의 세곡을 모아 낙동강 하류로 실어 날랐다. 지금의...
전라남도담양지역의 옛 지명. 현의 치소(治所)는 본래 서쪽 고산(高山) 부근에 있었는데 1793년(정조 17) 동북쪽의 현 위치로 옮겼다. 창평을 중심으로 광주ㆍ담양ㆍ동복ㆍ장성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하였고, 동강유역에는 외창(外倉)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김천일(金千鎰)이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숙종 때 세워진 해곡리의 송강서원(松江書院)에는 이곳에서 성장한 정철(鄭澈)을 배향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유허비 등이 남아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창평 (昌平)
전라남도담양지역의 옛 지명. 현의 치소(治所)는 본래 서쪽 고산(高山) 부근에 있었는데 1793년(정조 17) 동북쪽의 현 위치로 옮겼다. 창평을 중심으로 광주ㆍ담양ㆍ동복ㆍ장성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하였고, 동강유역에는 외창(外倉)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김천일(金千鎰)이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숙종 때 세워진 해곡리의 송강서원(松江書院)에는 이곳에서 성장한 정철(鄭澈)을 배향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유허비 등이 남아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