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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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부제학, 동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시지(始之). 정언의(鄭彦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승지 정척(鄭惕)이고, 아버지는 정문영(鄭文英)이며, 어머니는 홍순(洪純)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60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이첨(李爾瞻)의 주구가 되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죽이려 하였으나 박승종(朴承宗)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1617년 다시 폐모론을 제기하여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키는 데 적극 가담하였고, 다음해 부제학·대사성을 거쳐 1619년에는 대사간이 되었다. 1621년 형조참판을 지내고, 1622년 부제학·동지의금부사로 있다가 인조반정으로 정국이 역전되면서 원흉으로 지목되어 1623년...
정조 (鄭造)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부제학, 동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시지(始之). 정언의(鄭彦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승지 정척(鄭惕)이고, 아버지는 정문영(鄭文英)이며, 어머니는 홍순(洪純)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60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이첨(李爾瞻)의 주구가 되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죽이려 하였으나 박승종(朴承宗)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1617년 다시 폐모론을 제기하여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키는 데 적극 가담하였고, 다음해 부제학·대사성을 거쳐 1619년에는 대사간이 되었다. 1621년 형조참판을 지내고, 1622년 부제학·동지의금부사로 있다가 인조반정으로 정국이 역전되면서 원흉으로 지목되어 1623년...
조선의 제22대(재위: 1776년~1800년) 왕. 정조는 조선후기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776~1800년이며, 영조의 둘째아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아들이다.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임금이자 스승임을 자부하며 당파적 분쟁을 뛰어넘어 개혁과 통합을 이루어냈다. 규장각을 정권의 핵심기구로 삼고 실학파와 북학파 등 제학파의 장점을 수용하여 문화정치를 완성해갔으며, 문물제도의 정비사업 완결, 사고전서 수입과 각종 서적 편찬, 친위군인 장용영 설치, 신도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강한 왕권으로 왕도정치의 모범을 보이며 조선후기 문화부흥을 이루었다.1775년에 대리청정을 하다가 다음해 영조가 죽자 25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생부인 장헌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또한 세손으로 갖은 위험 속에서...
정조 (正祖)
조선의 제22대(재위: 1776년~1800년) 왕. 정조는 조선후기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776~1800년이며, 영조의 둘째아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아들이다.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임금이자 스승임을 자부하며 당파적 분쟁을 뛰어넘어 개혁과 통합을 이루어냈다. 규장각을 정권의 핵심기구로 삼고 실학파와 북학파 등 제학파의 장점을 수용하여 문화정치를 완성해갔으며, 문물제도의 정비사업 완결, 사고전서 수입과 각종 서적 편찬, 친위군인 장용영 설치, 신도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강한 왕권으로 왕도정치의 모범을 보이며 조선후기 문화부흥을 이루었다.1775년에 대리청정을 하다가 다음해 영조가 죽자 25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생부인 장헌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또한 세손으로 갖은 위험 속에서...
마진국(摩震國)의 관계(官階). # 내용 904년궁예(弓裔)가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武泰)라 칭하고 광평성(廣評省) 등 관부(官府)를 설치할 때 이루어진 문무관의 9품계 가운데 제6위의 관계이다. - 『고려사(高麗史)』 -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 『朝鮮學報』41, 1966)
정조 (正朝)
마진국(摩震國)의 관계(官階). # 내용 904년궁예(弓裔)가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武泰)라 칭하고 광평성(廣評省) 등 관부(官府)를 설치할 때 이루어진 문무관의 9품계 가운데 제6위의 관계이다. - 『고려사(高麗史)』 -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 『朝鮮學報』41, 1966)
고려 전기의 관계(官階). # 내용 왕건(王建)이 고려를 창건한 직후에 태봉(泰封)의 관계를 이어받아 919년(태조 2)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고려 초기의 독자적인 공적 질서체제로서 태조 왕건의 직속 부하를 중심으로 하고, 고려왕권에 복속한 친고려적 정치집단인 호족세력을 조직한 문무관의 위계였다. 이 관계는 936년(태조 19) 후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완성되었으며, 정조는 총16관계 가운데 제12위로 중국식 관품으로 정6품에 해당된다. 그 뒤 광종 때 중국의 문산계(文散階)가 들어와 관계와 같이 사용되었는데, 주로 비관인층(非官人層)·지방호족들에게는 관계만 적용되었고, 중앙관인층은 문산계와 관계를 병용하게 되었다. - 『고려사(高麗史)』 -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 『朝鮮學報』41, 1966)
정조 (正朝)
고려 전기의 관계(官階). # 내용 왕건(王建)이 고려를 창건한 직후에 태봉(泰封)의 관계를 이어받아 919년(태조 2)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고려 초기의 독자적인 공적 질서체제로서 태조 왕건의 직속 부하를 중심으로 하고, 고려왕권에 복속한 친고려적 정치집단인 호족세력을 조직한 문무관의 위계였다. 이 관계는 936년(태조 19) 후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완성되었으며, 정조는 총16관계 가운데 제12위로 중국식 관품으로 정6품에 해당된다. 그 뒤 광종 때 중국의 문산계(文散階)가 들어와 관계와 같이 사용되었는데, 주로 비관인층(非官人層)·지방호족들에게는 관계만 적용되었고, 중앙관인층은 문산계와 관계를 병용하게 되었다. - 『고려사(高麗史)』 -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 『朝鮮學報』41, 1966)
고려시대의 향직(鄕職). # 내용 995년(성종 14) 고려 초 고유의 문무관의 관계(官階)가 중국식 문산계로 대치되자 이 관계는 향직으로 변하였다. 정조는 16위계의 향직 가운데 7품 상위의 품계로 제12위에 해당된다. 정조의 관계는 원윤 이하에 속하여 그 이상의 관계 소유자와는 뚜렷한 구별과 차이가 있었다. 이는 국가 왕실에 대한 유공자와 무산계 소유자를 비롯하여 군인·서리(胥吏)·양반·장리(長吏 : 향리) 및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어졌는데, 이는 실직(實職)이 아닌 작(爵)과 같은 위계질서체제였다.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 『朝鮮學報』41, 1966) - 「高麗時代の鄕職」(武田幸男, 『東洋學報』47-2, 1964)
정조 (正朝)
고려시대의 향직(鄕職). # 내용 995년(성종 14) 고려 초 고유의 문무관의 관계(官階)가 중국식 문산계로 대치되자 이 관계는 향직으로 변하였다. 정조는 16위계의 향직 가운데 7품 상위의 품계로 제12위에 해당된다. 정조의 관계는 원윤 이하에 속하여 그 이상의 관계 소유자와는 뚜렷한 구별과 차이가 있었다. 이는 국가 왕실에 대한 유공자와 무산계 소유자를 비롯하여 군인·서리(胥吏)·양반·장리(長吏 : 향리) 및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어졌는데, 이는 실직(實職)이 아닌 작(爵)과 같은 위계질서체제였다.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 『朝鮮學報』41, 1966) - 「高麗時代の鄕職」(武田幸男, 『東洋學報』47-2, 1964)
박종화(朴鍾和)가 지은 단편소설. 드디어 개루에게 아랑은 끌려갔지만, 끝까지 정조를 지킨 아랑을 미화시킨 내용이다.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정조만을 고수하고 끝내는 도미를 찾아 탈출하는 아랑의 아름다운 부덕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미인 아내를 둔 탓으로 눈알을 뽑히면서도 자기의 아내만은 결코 변심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목수 도미, 장님이 된 남편을 극적으로 만나 부축하여 걸식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아내 아랑의 사랑은 이 나라 여성의 갸륵한 정조의식의 상징으로 승화되었다. 끝 장면에서 아랑은 눈먼 남편 도미의 손을 이끌고 원수의 백제땅을 버린 뒤에 거지가 되어 고구려땅으로 들어간다는 비화로 엮고 있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 말까지 우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지속적으로 창작했다. 따라서 이 작품...
아랑의 정조 (아랑의 貞操)
박종화(朴鍾和)가 지은 단편소설. 드디어 개루에게 아랑은 끌려갔지만, 끝까지 정조를 지킨 아랑을 미화시킨 내용이다.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정조만을 고수하고 끝내는 도미를 찾아 탈출하는 아랑의 아름다운 부덕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미인 아내를 둔 탓으로 눈알을 뽑히면서도 자기의 아내만은 결코 변심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목수 도미, 장님이 된 남편을 극적으로 만나 부축하여 걸식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아내 아랑의 사랑은 이 나라 여성의 갸륵한 정조의식의 상징으로 승화되었다. 끝 장면에서 아랑은 눈먼 남편 도미의 손을 이끌고 원수의 백제땅을 버린 뒤에 거지가 되어 고구려땅으로 들어간다는 비화로 엮고 있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 말까지 우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지속적으로 창작했다. 따라서 이 작품...
조선 후기에 정조(正祖)가 그린 국화 그림.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된 「정조 필 파초도(正祖 筆 芭蕉圖)」와 쌍폭[對聯]으로 간주된다. 이 둘은 여러 폭으로 된 병풍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 수도 있다. # 내용 정조는 시(詩)·서(書)·화(畵)에 두루 능했던 조선 22대 왕이다. 정조연간은 사회·경제·문화의 발전이 크게 진작되어 여러 문인화가 및 뛰어난 화원(畵員)들의 활동이 두드러져 화단이 자못 융성한 때였다. 정조 자신도 묵희(墨戱)를 즐겼다. 현재 전하는 정조의 그림으로는 서울대학교에 소장된 대폭의 「묵매(墨梅)」,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전칭작인 「니금사군자병(泥金四君子屛)」, 1987년 일본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에서 개최된 조선의 병풍 특별전에 출품된 「군자화목도병풍 君子花木圖屛風)」등이 있다. 국화는 서기전...
정조 필 국화도 (正祖 筆 菊花圖)
조선 후기에 정조(正祖)가 그린 국화 그림.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된 「정조 필 파초도(正祖 筆 芭蕉圖)」와 쌍폭[對聯]으로 간주된다. 이 둘은 여러 폭으로 된 병풍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 수도 있다. # 내용 정조는 시(詩)·서(書)·화(畵)에 두루 능했던 조선 22대 왕이다. 정조연간은 사회·경제·문화의 발전이 크게 진작되어 여러 문인화가 및 뛰어난 화원(畵員)들의 활동이 두드러져 화단이 자못 융성한 때였다. 정조 자신도 묵희(墨戱)를 즐겼다. 현재 전하는 정조의 그림으로는 서울대학교에 소장된 대폭의 「묵매(墨梅)」,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전칭작인 「니금사군자병(泥金四君子屛)」, 1987년 일본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에서 개최된 조선의 병풍 특별전에 출품된 「군자화목도병풍 君子花木圖屛風)」등이 있다. 국화는 서기전...
조선 후기의 정조가 그린 파초도.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된 「정조 필 국화도(正祖 筆 菊花圖)」와 재질이나 크기가 같아서 처음부터 쌍폭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 내용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묘사한 그림으로, 왼편 위쪽에 정조의 호인 ‘弘齋(홍재)’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어 정조의 작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균형잡힌 포치(布置), 은은히 풍기는 문자향(文字香), 농담을 달리한 세련된 묵법(墨法) 등이 돋보인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히 세련된 면모를 보여준다. 먹의 농담과 흑백 대조에 의하여 바위의 괴량감과 질감 및 파초잎의 변화감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농담을 달리하여 파초잎을 대강 나타낸 뒤 잎 가장자리에 꼬불꼬불한 선들을 덧대듯이 구사하여...
정조 필 파초도 (正祖 筆 芭蕉圖)
조선 후기의 정조가 그린 파초도.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된 「정조 필 국화도(正祖 筆 菊花圖)」와 재질이나 크기가 같아서 처음부터 쌍폭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 내용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묘사한 그림으로, 왼편 위쪽에 정조의 호인 ‘弘齋(홍재)’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어 정조의 작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균형잡힌 포치(布置), 은은히 풍기는 문자향(文字香), 농담을 달리한 세련된 묵법(墨法) 등이 돋보인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히 세련된 면모를 보여준다. 먹의 농담과 흑백 대조에 의하여 바위의 괴량감과 질감 및 파초잎의 변화감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농담을 달리하여 파초잎을 대강 나타낸 뒤 잎 가장자리에 꼬불꼬불한 선들을 덧대듯이 구사하여...
조선 후기, 제22대 왕 정조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정조실록(正祖實錄)』은 1800년(순조 즉위)부터 1805년(순조 5)까지, 정조 재위 25년간의 국정 및 사회, 문화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56권 56책이며, 활자본이다. 『정조실록』은 『일성록(日省錄)』의 27개조 편찬 범례가 실록 편찬에 적용된 특징을 지닌다.# 서지 사항 정조의 본래 묘호는 정종(正宗)이었으므로 그 실록의 본래 이름도 『정종문성무열성인장효대왕실록(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實錄)』 약칭 『정종대왕실록(正宗大王實錄)』이라고 하였다. 광무(光武) 3년(1899)에 묘호를 추존 개정(改定)함으로써 그 실록도 『정조실록』으로 부르게 되었다. 본서 54권과 부록 2권을 합쳐 모두 56권 56책이며, 활자로 간행되었다. # 편찬...
정조실록 (正祖實錄)
조선 후기, 제22대 왕 정조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정조실록(正祖實錄)』은 1800년(순조 즉위)부터 1805년(순조 5)까지, 정조 재위 25년간의 국정 및 사회, 문화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56권 56책이며, 활자본이다. 『정조실록』은 『일성록(日省錄)』의 27개조 편찬 범례가 실록 편찬에 적용된 특징을 지닌다.# 서지 사항 정조의 본래 묘호는 정종(正宗)이었으므로 그 실록의 본래 이름도 『정종문성무열성인장효대왕실록(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實錄)』 약칭 『정종대왕실록(正宗大王實錄)』이라고 하였다. 광무(光武) 3년(1899)에 묘호를 추존 개정(改定)함으로써 그 실록도 『정조실록』으로 부르게 되었다. 본서 54권과 부록 2권을 합쳐 모두 56권 56책이며, 활자로 간행되었다. # 편찬...
정월 초하룻날 조신(朝臣)이 임금에게 올리는 하례. 이러한 정조하례에 대한 분명한 왕권국가다운 기록은 7세기의 『수서(隋書)』·『당서(唐書)』들에 보이는 신라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다. 즉, “매년 정월 원단에는 서로 경하하고, 왕이 연회를 베풀어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 8월 15일이 되면 또 연악을 베푼다(每正月旦 相賀 王設宴會 班賓群官 其日拜日月神 至八月十五日設樂).”고 하였다. 조선시대로 내려와서 『동국세시기』(1849)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의정대신(議政大臣)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신년을 하례하는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가서 조하(朝賀)를 올린다. 8도의 관찰사, 병사(兵使)나 수사(水使), 주(州)...
정조하례 (正朝賀禮)
정월 초하룻날 조신(朝臣)이 임금에게 올리는 하례. 이러한 정조하례에 대한 분명한 왕권국가다운 기록은 7세기의 『수서(隋書)』·『당서(唐書)』들에 보이는 신라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다. 즉, “매년 정월 원단에는 서로 경하하고, 왕이 연회를 베풀어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 8월 15일이 되면 또 연악을 베푼다(每正月旦 相賀 王設宴會 班賓群官 其日拜日月神 至八月十五日設樂).”고 하였다. 조선시대로 내려와서 『동국세시기』(1849)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의정대신(議政大臣)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신년을 하례하는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가서 조하(朝賀)를 올린다. 8도의 관찰사, 병사(兵使)나 수사(水使), 주(州)...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 개설 정조(正祖)가 동궁(東宮)의 지위에 오른 1762년(영조 38) 8월부터 즉위하기 전인 1776년 3월까지 동궁의 교육을 담당한 세자시강원에서 기록한 동궁일기이다. # 편찬/발간 경위 1762년 7월 사도세자(思悼世子: 후에 장조로 추존)가 사망한 후, 영조는 세손정조]을 동궁으로 칭하게 하고 강서원(講書院)을 시강원으로, 위종사(衛從司)를 익위사(翊衛司)로 고쳐 동궁을 보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시강원에서는 같은 해 8월부터 동궁의 [서연 학습과 일상생활을 기록한 동궁일기를 작성하였다. 본서는 그가 왕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작성되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일실되고 7책만 남아 전하고 있다. # 서지적 사항 7책. 필사본. 책 크기는 세로33.6㎝ 가로 23.2...
정조동궁일기 (正祖東宮日記)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 개설 정조(正祖)가 동궁(東宮)의 지위에 오른 1762년(영조 38) 8월부터 즉위하기 전인 1776년 3월까지 동궁의 교육을 담당한 세자시강원에서 기록한 동궁일기이다. # 편찬/발간 경위 1762년 7월 사도세자(思悼世子: 후에 장조로 추존)가 사망한 후, 영조는 세손정조]을 동궁으로 칭하게 하고 강서원(講書院)을 시강원으로, 위종사(衛從司)를 익위사(翊衛司)로 고쳐 동궁을 보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시강원에서는 같은 해 8월부터 동궁의 [서연 학습과 일상생활을 기록한 동궁일기를 작성하였다. 본서는 그가 왕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작성되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일실되고 7책만 남아 전하고 있다. # 서지적 사항 7책. 필사본. 책 크기는 세로33.6㎝ 가로 23.2...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1년에 쓴 칠언율시.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민시는 1790년 12월 27일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는데, 한 달을 넘긴 이때서야 떠난 것은 이전부터 맡아온 주교사(舟橋司) 제조의 직분 때문이었던 듯하다. 주교사는 정조의 화성능행(華城陵幸) 때 노량진에 배다리를 설치하는 일을 맡아본 관서인데, 정조는 1791년 1월 18일에야 화성능행을 마치고 환궁하였다. 어제시는 『홍재전서』권6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에 실려 있다. 정조는 “정성 어린 이별자리 여러 순배 돌았는데, 그대 보내는 명일에 동작진(銅雀津)을 나가겠지. 지금 어려운 일은 모름지기 민부(民部:호조)이니, 예부터 관찰사 직은 근신(近臣)에게 의지했네. 가벼운 옷차림의 새 관찰사를 다투어 보고, 대부인의 기거에도 탈이 없으리라....
정조 어필 -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 (正祖 御筆 - 贐提學鄭民始出按湖南)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1년에 쓴 칠언율시.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민시는 1790년 12월 27일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는데, 한 달을 넘긴 이때서야 떠난 것은 이전부터 맡아온 주교사(舟橋司) 제조의 직분 때문이었던 듯하다. 주교사는 정조의 화성능행(華城陵幸) 때 노량진에 배다리를 설치하는 일을 맡아본 관서인데, 정조는 1791년 1월 18일에야 화성능행을 마치고 환궁하였다. 어제시는 『홍재전서』권6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에 실려 있다. 정조는 “정성 어린 이별자리 여러 순배 돌았는데, 그대 보내는 명일에 동작진(銅雀津)을 나가겠지. 지금 어려운 일은 모름지기 민부(民部:호조)이니, 예부터 관찰사 직은 근신(近臣)에게 의지했네. 가벼운 옷차림의 새 관찰사를 다투어 보고, 대부인의 기거에도 탈이 없으리라....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 『정조 어찰첩』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이다. 1796년(정조 20) 8월 20일부터 1800년(정조 24) 6월 16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엮었다. 6첩, 필사본. 총 297편으로 글자 수는 5만 2천여 자이다. 정조의 어찰은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제작 및 발급 경위 정조가 재위 말년에 해당하는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6일까지 심환지(沈煥之)에게 보낸 어찰(御札)^1] 297편을 엮은 책이다. 수신자는 삼청동문(三淸洞門), 단규(端揆) 등으로 되어 있는데, 삼청동에 거주한 [우의정 심환지임을 알 수 있다. 정조는 누설을 염려한 탓에 어찰을 받는 즉시 없애라고 누차...
정조 어찰첩 (正祖 御札牒)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 『정조 어찰첩』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이다. 1796년(정조 20) 8월 20일부터 1800년(정조 24) 6월 16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엮었다. 6첩, 필사본. 총 297편으로 글자 수는 5만 2천여 자이다. 정조의 어찰은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제작 및 발급 경위 정조가 재위 말년에 해당하는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6일까지 심환지(沈煥之)에게 보낸 어찰(御札)^1] 297편을 엮은 책이다. 수신자는 삼청동문(三淸洞門), 단규(端揆) 등으로 되어 있는데, 삼청동에 거주한 [우의정 심환지임을 알 수 있다. 정조는 누설을 염려한 탓에 어찰을 받는 즉시 없애라고 누차...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짓고 쓴 어제어필 칠언절구. 정조(正祖)가 47세 때인 1798년 9월에 정와(靜窩) 정민시(鄭民始)의 문상정사(汶上精舍)에 대해 짓고 쓴 어제어필 칠언절구이다. 당시 정민시는 의정부 좌참찬으로 선혜청 당상·검교 제학·예문관 제학·장용위 제조를 겸직했다. 그는 도성 동쪽 십리쯤 되는 강가 물굽이에 자신의 정사를 마련하였는데, 이곳은 정민시가 말년에 신병을 요양하던 농막으로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1800년 3월에 사망하였다. 어제시는 『홍재전서』권7 「제문상정사」에 실려 있다. 내용은 “성 동쪽 십리는 배회하기 좋은데[城東十里好盤桓], 그윽한 마을 모습 푸른 나무 물굽이네[窈窕村容碧樹灣]. 알건대 문수는 제나라 노나라 사이이니[汶水知爲齊魯半], 대숲 바람 불게 두고 붙잡을 것 없다네...
정조 어필 - 제문상정사 (正祖 御筆 - 題汶上精舍)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짓고 쓴 어제어필 칠언절구. 정조(正祖)가 47세 때인 1798년 9월에 정와(靜窩) 정민시(鄭民始)의 문상정사(汶上精舍)에 대해 짓고 쓴 어제어필 칠언절구이다. 당시 정민시는 의정부 좌참찬으로 선혜청 당상·검교 제학·예문관 제학·장용위 제조를 겸직했다. 그는 도성 동쪽 십리쯤 되는 강가 물굽이에 자신의 정사를 마련하였는데, 이곳은 정민시가 말년에 신병을 요양하던 농막으로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1800년 3월에 사망하였다. 어제시는 『홍재전서』권7 「제문상정사」에 실려 있다. 내용은 “성 동쪽 십리는 배회하기 좋은데[城東十里好盤桓], 그윽한 마을 모습 푸른 나무 물굽이네[窈窕村容碧樹灣]. 알건대 문수는 제나라 노나라 사이이니[汶水知爲齊魯半], 대숲 바람 불게 두고 붙잡을 것 없다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쓴 어필. 시험과목은 증광전시(增廣殿試) 때처럼 대책(對策) · 표(表) · 전(箋) · 잠(箴) · 송(頌) · 제(制) · 조(詔)에서 하나를 골라서 지었는데, 이 정조어필은 특별한 경우이다. 정조가 낸 문제는 “포촉불언(抱蜀不言) 홍곡장장(鴻鵠鏘鏘)”이었다. 정조는 “임금이 공경스럽게 촉(蜀:제사 그릇)을 지키고 예로써 백관을 통솔하면,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어도 묘당(廟堂)의 정사가 자연스럽게 가다듬어지고, 그러면 그 덕에 감응되고 교화가 행해져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 큰기러기와 고니가 장장 울고 백성들이 노래하며 찬미한다는 뜻이다. 이르기를 ‘제사그릇을 안고 말하지 않아도 묘당이 가다듬어지며, 큰기러기 고니가 장장 울고 백성들이 노래한다(抱蜀不言...
정조 어필 - 시국제입장제생 (正祖 御筆 - 示菊製入場諸生)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쓴 어필. 시험과목은 증광전시(增廣殿試) 때처럼 대책(對策) · 표(表) · 전(箋) · 잠(箴) · 송(頌) · 제(制) · 조(詔)에서 하나를 골라서 지었는데, 이 정조어필은 특별한 경우이다. 정조가 낸 문제는 “포촉불언(抱蜀不言) 홍곡장장(鴻鵠鏘鏘)”이었다. 정조는 “임금이 공경스럽게 촉(蜀:제사 그릇)을 지키고 예로써 백관을 통솔하면,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어도 묘당(廟堂)의 정사가 자연스럽게 가다듬어지고, 그러면 그 덕에 감응되고 교화가 행해져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 큰기러기와 고니가 장장 울고 백성들이 노래하며 찬미한다는 뜻이다. 이르기를 ‘제사그릇을 안고 말하지 않아도 묘당이 가다듬어지며, 큰기러기 고니가 장장 울고 백성들이 노래한다(抱蜀不言...
조선시대 원단(元旦)에 명나라나 청나라에 보내던 사절 또는 그 사신. 이 정례사행은 원래 별도로 엄격히 지켜지다가 1645년(인조 23)부터 피차의 편의를 보아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정조(正朝)에 보내기로 하였다. 그 뒤 1723년(경종 3)에 다시 강조되어 이후로는 동시에 시행되었다. 이 정례사행을 삼절 겸 연공사(三節兼年貢使) 혹은 줄여서 동지사·절사라 불렀다. 이 사행은 매년 10월말이나 12월초에 떠나서 그 해가 지나기 전에 북경(北京)에 도착해 40∼60일 오랫동안 머무른 다음 2월중에 떠나서 3월말이나 4월초에 돌아오는 것이 통례였다. 사행의 구성은 정사·부사·서장관(書狀官)은 각 1인, 대통관(大通官) 3인(首譯堂上官 1인, 上通事 2인), 호공관(護貢官, 일명 押物官) 24인, 도합 30인은 이른바 정관(正官)이라 하여 숫자가...
정조사 (正朝使)
조선시대 원단(元旦)에 명나라나 청나라에 보내던 사절 또는 그 사신. 이 정례사행은 원래 별도로 엄격히 지켜지다가 1645년(인조 23)부터 피차의 편의를 보아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정조(正朝)에 보내기로 하였다. 그 뒤 1723년(경종 3)에 다시 강조되어 이후로는 동시에 시행되었다. 이 정례사행을 삼절 겸 연공사(三節兼年貢使) 혹은 줄여서 동지사·절사라 불렀다. 이 사행은 매년 10월말이나 12월초에 떠나서 그 해가 지나기 전에 북경(北京)에 도착해 40∼60일 오랫동안 머무른 다음 2월중에 떠나서 3월말이나 4월초에 돌아오는 것이 통례였다. 사행의 구성은 정사·부사·서장관(書狀官)은 각 1인, 대통관(大通官) 3인(首譯堂上官 1인, 上通事 2인), 호공관(護貢官, 일명 押物官) 24인, 도합 30인은 이른바 정관(正官)이라 하여 숫자가...
국회가 특정한 국정 사안을 조사하기 위하여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의 제출,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과 증언, 의견의 진술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 국정조사권은 국회가 특정한 국정 사안을 조사하기 위하여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의 제출,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과 증언, 의견의 진술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국정조사는 제헌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국정감사와 달리 헌법과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가, 1975년에 개정된 「국회법」에 의하여 처음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1980년 헌법에서 국정조사권을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하여, 「국회법」상에 규정되었던 국정조사 제도를 헌법상의 제도로 격상시켰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1988년 8월에 제정되었다.# 내용 국정조사라 할 때 ‘국정’...
국정조사권 (國政調査權)
국회가 특정한 국정 사안을 조사하기 위하여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의 제출,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과 증언, 의견의 진술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 국정조사권은 국회가 특정한 국정 사안을 조사하기 위하여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의 제출,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과 증언, 의견의 진술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국정조사는 제헌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국정감사와 달리 헌법과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가, 1975년에 개정된 「국회법」에 의하여 처음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1980년 헌법에서 국정조사권을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하여, 「국회법」상에 규정되었던 국정조사 제도를 헌법상의 제도로 격상시켰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1988년 8월에 제정되었다.# 내용 국정조사라 할 때 ‘국정’...
조선 후기 광주부윤, 개성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가환은 영조~정조 대에 성균관 대사성, 승문원 정자, 예조정랑, 사간원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남인 채제공에 의해 발탁되고, 정조로부터 학자로서 인정을 받아 대사간·대사성까지 올랐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공격을 받고 신유박해 때에 심문을 받다가 죽었다.# 가계 및 인적 사항 이가환(李家煥)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 · 정헌(貞軒)이다. 5대조는 좌찬성을 지낸 이상의(李尙毅)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지평을 지낸 이지안(李志安),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하진(李夏鎭)이다. 할아버지는 이침(李沉), 아버지는 이용휴(李用休)이다. 어머니 진주류씨는 류헌장(柳憲章)의 딸이며...
이가환 (李家煥)
조선 후기 광주부윤, 개성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가환은 영조~정조 대에 성균관 대사성, 승문원 정자, 예조정랑, 사간원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남인 채제공에 의해 발탁되고, 정조로부터 학자로서 인정을 받아 대사간·대사성까지 올랐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공격을 받고 신유박해 때에 심문을 받다가 죽었다.# 가계 및 인적 사항 이가환(李家煥)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 · 정헌(貞軒)이다. 5대조는 좌찬성을 지낸 이상의(李尙毅)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지평을 지낸 이지안(李志安),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하진(李夏鎭)이다. 할아버지는 이침(李沉), 아버지는 이용휴(李用休)이다. 어머니 진주류씨는 류헌장(柳憲章)의 딸이며...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 설날·원일·원단·원정·원신·원조·정조·세수·세초·연두·연수·연시·신일·달도·구정.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원일·원단·정조 등 여러 명칭이 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의례, 민간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 또한 풍성했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았고, 세시풍속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元朝) · 정조(正朝) · 세수...
설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 설날·원일·원단·원정·원신·원조·정조·세수·세초·연두·연수·연시·신일·달도·구정.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원일·원단·정조 등 여러 명칭이 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의례, 민간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 또한 풍성했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았고, 세시풍속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元朝) · 정조(正朝) · 세수...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 보덕(輔德)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2명이었다. 세종 대에 1명으로 인원이 축소되었다가 선조 대 이후 겸보덕(兼輔德)이 1명 증치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으로 시강원의 상번(上番)이었고, 실무를 총괄하였다. 서연을 담당하여 세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보덕은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이때 겸보덕도 역시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그리고 홍문관 직제학(直提學)부터 부응교(副應敎)까지 겸임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조는 문효세자(文孝世子)가 탄생한 후 세자 책봉에 즈음하여 시강원의 위상을...
보덕 (輔德)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 보덕(輔德)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2명이었다. 세종 대에 1명으로 인원이 축소되었다가 선조 대 이후 겸보덕(兼輔德)이 1명 증치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으로 시강원의 상번(上番)이었고, 실무를 총괄하였다. 서연을 담당하여 세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보덕은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이때 겸보덕도 역시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그리고 홍문관 직제학(直提學)부터 부응교(副應敎)까지 겸임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조는 문효세자(文孝世子)가 탄생한 후 세자 책봉에 즈음하여 시강원의 위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