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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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4월∼8월 사이에 박진·박의장·이장손 등이 경주에서 네 차례에 걸쳐 싸운 전투.
경주전투 (慶州戰鬪)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4월∼8월 사이에 박진·박의장·이장손 등이 경주에서 네 차례에 걸쳐 싸운 전투.
조선 중기에, 경상도병마좌별장, 충청도방어사, 경상도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의병장.
권응수 (權應銖)
조선 중기에, 경상도병마좌별장, 충청도방어사, 경상도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의병장.
김시민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에 참전한 무신이다. 1554년(명종 9)에 태어나 1592년(선조 25)에 사망했다. 1578년 무과에 급제해 군기시에 입사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판관이던 김시민은 인근 지역의 군사와 의병과 연합하여 여러 차례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 공으로 진주목사로 승진하고 다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왜적이 2만여 명의 대군을 편성하여 요충지 진주성을 포위하고 본격적으로 공격해오자 3800여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7일간의 공방전을 벌여 물리쳤다(진주대첩). 이 전투에서 이마에 맞은 탄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김시민 (金時敏)
김시민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에 참전한 무신이다. 1554년(명종 9)에 태어나 1592년(선조 25)에 사망했다. 1578년 무과에 급제해 군기시에 입사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판관이던 김시민은 인근 지역의 군사와 의병과 연합하여 여러 차례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 공으로 진주목사로 승진하고 다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왜적이 2만여 명의 대군을 편성하여 요충지 진주성을 포위하고 본격적으로 공격해오자 3800여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7일간의 공방전을 벌여 물리쳤다(진주대첩). 이 전투에서 이마에 맞은 탄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조선 후기에, 통영군관, 훈련원첨정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김시약 (金時若)
조선 후기에, 통영군관, 훈련원첨정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형조판서,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신국 (金藎國)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형조판서,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천일은 조선시대 수원부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1537년(중종 32)에 태어나 1593년(1593)에 사망했다. 1573년 학행으로 발탁되어 군기시주부, 용안현감, 임실현감 등을 역임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수원의 독성산성을 거점으로 군사활동을 전개하였다. 1593년 강화협상에 반대하며 행주산성 전투 등에 참가하였다. 서울에서 철수한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할 때 관군과 합세하여 항전하다가 순사하였다. 나주의 정렬사, 진주의 창렬사, 순창의 화산서원, 태인의 남고서원, 임실의 학정서원에 제향되었다.
김천일 (金千鎰)
김천일은 조선시대 수원부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1537년(중종 32)에 태어나 1593년(1593)에 사망했다. 1573년 학행으로 발탁되어 군기시주부, 용안현감, 임실현감 등을 역임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수원의 독성산성을 거점으로 군사활동을 전개하였다. 1593년 강화협상에 반대하며 행주산성 전투 등에 참가하였다. 서울에서 철수한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할 때 관군과 합세하여 항전하다가 순사하였다. 나주의 정렬사, 진주의 창렬사, 순창의 화산서원, 태인의 남고서원, 임실의 학정서원에 제향되었다.
조선 중기에, 밀양부사, 울산군수, 당상관,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김태허 (金太虛)
조선 중기에, 밀양부사, 울산군수, 당상관,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조선 중기에, 승문원정자, 예문관검열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항쟁한 문신·의병장.
김해 (金垓)
조선 중기에, 승문원정자, 예문관검열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항쟁한 문신·의병장.
임진왜란 때인 1592년 4월에 서예원(徐禮元) 등이 김해에서 일본군과 벌인 전투.
김해성전투 (金海城戰鬪)
임진왜란 때인 1592년 4월에 서예원(徐禮元) 등이 김해에서 일본군과 벌인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5일 송상현 등이 경상도 동래에서 일본군과의 싸운 전투.
동래전투 (東萊戰鬪)
1592년(선조 25) 4월 15일 송상현 등이 경상도 동래에서 일본군과의 싸운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정발(鄭撥) 등이 부산진에서 일본군과 싸운 전투.
부산진전투 (釜山鎭戰鬪)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정발(鄭撥) 등이 부산진에서 일본군과 싸운 전투.
임진왜란 때인 1592년 4월 23일 권길(權吉) 등이 상주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상주전투 (尙州戰鬪)
임진왜란 때인 1592년 4월 23일 권길(權吉) 등이 상주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조선 중기에, 성주목사,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산도해전, 행주산성전투 등에서 활약한 무신·공신.
선거이 (宣居怡)
조선 중기에, 성주목사,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산도해전, 행주산성전투 등에서 활약한 무신·공신.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순위로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으며, 웅천현감, 훈련원정 등을 역임한 관리·의병장.
성천희 (成天禧)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순위로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으며, 웅천현감, 훈련원정 등을 역임한 관리·의병장.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예, 사헌부장령,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송상인 (宋象仁)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예, 사헌부장령,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송상현은 조선전기 사헌부지평, 배천군수,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51년(명종 6)에 태어나 1592년(선조 25)에 사망했다. 1584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종계변무사의 질정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1년에 동래부사가 되어 왜침의 소문 속에 방비를 굳게 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당하게 되자 조복을 덮어입고 단좌한 채 순사했다. 왜장들이 그의 충렬을 기려 동문 밖에 장사지내주었다고 한다. 뒤에 이조판서·좌찬성에 추증되었고 부산 충렬사, 개성 숭절사 등에 제향되었다.
송상현 (宋象賢)
송상현은 조선전기 사헌부지평, 배천군수,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51년(명종 6)에 태어나 1592년(선조 25)에 사망했다. 1584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종계변무사의 질정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1년에 동래부사가 되어 왜침의 소문 속에 방비를 굳게 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당하게 되자 조복을 덮어입고 단좌한 채 순사했다. 왜장들이 그의 충렬을 기려 동문 밖에 장사지내주었다고 한다. 뒤에 이조판서·좌찬성에 추증되었고 부산 충렬사, 개성 숭절사 등에 제향되었다.
조선 중기에, 행용양위부사직, 충청도관찰사,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신감 (申鑑)
조선 중기에, 행용양위부사직, 충청도관찰사,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창녕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신방집 (辛邦楫)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창녕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조선 중기에,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신익성 (申翊聖)
조선 중기에,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현풍현감, 보성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해 곽재우군과 연합하여 항쟁한 무신·의병장.
신초 (辛礎)
조선 중기에, 현풍현감, 보성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해 곽재우군과 연합하여 항쟁한 무신·의병장.